스파티필름과 작은 위안
어쩌면 우리 동네 꽃대궐을 외치며 안양천변에
개나리와 벚꽃이 깜짝 이벤트를 펼치며 봄이
차츰 무르익어가는 계절부터 기다리는지 모른다.
다만 기다림에 지쳐버리기를 수년 한 경험이 있어
이제는 조바심치지 않겠다고 결심에 결심을 할 뿐이다.
몇 년 동안 손을 봐주지 않은 화초는 빼곡히 들어 찬 잎들로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듯했다.
흙 포함 30kg이 훨씬 넘는 화분은 들을 수 조차 없어
화원에 가서 화원 사장님과 분갈이 출장을 의논했지만
출장은 못 오신다고 했다.
대책은 시급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는 다 죽일 것
같아 세상만사 오지랖 넓은 죽마고우 친구를 모셨다.
뭐든 대충대충 하는 친구라 신뢰는 할 수 없었지만
어쩌겠어.
정 많은 친구가 분갈이 한 스파티필름은 마치 솜씨 없는
엄마가 아들 머리 숭덩숭덩 밀어놓은 것 같아 웃음이 툭 터졌다.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
가엽기도 하고 잘 살아 날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작년에 분갈이를 했던 스파티필름의 화분 한쪽이 가뭄에 콩 나듯 듬성듬성한
이파리가 오늘내일 죽음을 목전에 있는 것처럼 시들시들 다 죽어가고 있었다.
집안에 유일하게 있는 화초가 그나마 없어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어 심각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속삭인다.
"어쩌자는 건데..."
갑자기 울꺽했다.
그렇게 애간장을 녹이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차츰차츰 새로운 이파리들이 자라면서 다시금
풍성한 스파티필름 화분이 되었다.
그리고 벚꽃이 흐트러지게 피는 4월이 되면 기다린다
이따금씩 가끔은 조바심치면서....
꽃과 향기의 여왕 장미가 피는 5월이 오면 거실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스파티필름 화분을 가만히 들여 다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혹시나 피지 않으면 어떡하지 기다림에 지쳐 의심도 하면서.
어느 날 문득 스파티필름 화분을 들여다보는 순간 초록빛
잎사귀 사이로 새하얀 꽃망울이 볼록하게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꽃이 피는구나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알 수 없는 설렘으로 일순간 마음이 흔들린다.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꽃망울을 바라보았다.
줄 것은 온통 내 사랑밖에 없다는 듯.
초록빛 잎사귀 사이에 있던 새하얀 꽃망울은
콩나물 자라듯 하루가 다르게 자라더니
기다란 목을 쑥 내밀고 꽃망울을 뚝 터트리며
세상구경에 나섰다 아니 집안 구경에 나섰다.
실내 공기정화 식물로 인기가 많은 스파티필름은
거실에서 유일하게 몇 년 동안 동거동락하며 때론 쓸쓸함을
설렘으로 가득 채워 주웠기에 그의 매력에 폭 빠졌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처음에는 겁도 없이 목을 기다랗게 내민 키다리 아가씨가
커다란 꽃잎 또한 떡하니 벌어져 나도 모르게 손으로 꽃잎을 오므려 주었지만
두 번째 꽃은 이파리 위로 고개를 살포시 내밀고 돛단배처럼 자그마한 꽃잎도 예쁘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어렵다.
6월 초까지 무던히도 기다리게 하더니
7월이 되자 자그마치 7개나 꽃이 피었다.
그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니
그들은 도대제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과히 예쁘지도 않고 향기 또한 맡은 적이 없지만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초 새하얀 꽃으로 피어나 긴 장마와 무더위를 견뎌내며
초록빛으로 변신한 꽃이 어느덧 8월이 되어도 여전히 내 곁을 지키며
'화무십일홍'을 강하게 거부하는 그들의 몸짓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2023.8.10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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