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한 그녀의 고군분투 인생사
문득 기억 저편에 있던 그녀와의 만남을 헤아려본다. 어쩌면.... 20년도 넘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그녀를 알게 되었던건 그로부터 5~6년 후 교회 여전도
기금 마련을 위해 졸업식장에 꽃장사를 며칠 동안하면서 부터였다.
매사에 맺고 끊음이 칼같이 정확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여
즉석에서 화를 벌꺽 내지만 뒤끝이 없던 그녀.
한치에 오차도 없이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정이 많았지만 상당히 다혈질이기도 했다.
일 년 치 여전도기금의 60% 이상을 졸업시즌 꽃장사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삼사일 죽기 살기로 매달려 꽃장사를 해야만 했다.
꽃장사 끝난 다음날 여전도 회장인 그녀 집에 모여 만두파티를 하면서
그녀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주방 한 면을 장식하던 수많은 작은 도자기들이 먼지 하나 구경 할 수가 없이
반들반들 윤이나 한 성질 하는 그녀의 성격만큼 살림살이도
똑 소리 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소문에 어지간히 둔한 내가 사업을 하는 그녀의 남편이
사무실 여직원과 바람을 피워서 이혼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손바닥만 한 반지하 빌라로 이사 온 다음 이사예배를 보면서였다.
165cm 넘는 훤칠하게 큰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비비인형같이 예쁘고
유난히 맛있게 하는 음식 솜씨 덕분에 여전도 식당 당번 할 때마다
성도님들 찬사를 한 몸에 받던 그녀가 왜?
이혼.... 요즈음 시대가 이혼이 흉허물은 아니지만
아무나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바람피웠다고 모두가 이혼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이 운명이라면 이혼은 팔자다.
그녀는 이혼할 팔자였을 뿐이다.
아파트조차 남편에게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고3딸과 고1딸 그리고 중학교
다니는 아들 함께 월세방으로 나 앉게 되었다.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해야만 했다.
배움이 많지 않고 나이도 마흔이 훌쩍 넘었으니 일할 수 있는 건 지극히 제한 적였고
그나마 다이어리를 제조하는 현장에 일자리를 얻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정열적인 그녀는 하는 일이 재미있었는지
교회 성도님이나 집사님들에게 같이 다니자고 하여 그녀의 말만 믿고 따라갔던
성도님이나 집사님들은 한 달도 못 채우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다이어리가 종이로 만드는 작업이다 보니 힘이
무기인데 무기가 부실한 성도님이나 집사님들은
도저히 힘들어서 다닐 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그녀가 대단하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셨다.
힘이 있어야 호구지책을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고단할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지만 그녀는 자신이
일을 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하다고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하곤 했다.
자신의 일이 재미있어하는 그녀는 회사에서도
무한한 신뢰를 하여 현장리더가 되었다.
아프지 않으면 늙어 죽을 때까지 다닐 거란 그녀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회사가 다른 장소로 이사를 갔다.
15년 넘게 근무한 회사대한 애착은 출근시간이 2시간 걸려도 출근했지만
마침내 몇 달 만에 두 손 들고 항복을 했다.
왕복 4시간 출퇴근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 동안 죽기 살기로 기를 쓰고 살아온 그녀가
이룩해 놓은 재산은 실로 남 부럽지가 않다.
엄마의 고생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자식들은
올곧게 자라 큰딸과 작은딸은 결혼을 하여 큰손자 작은손자가 있으며
공무원인 순둥이 아들은 뒤늦게 공부에 취미를 붙여 삼십대 중반인 나이에도
자격증을 따기위해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공부를 싫어했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신기하다고 싱글벙글 흐믓해했다.
그리고 반지하 빌라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쯤이면 쉬어도 될 것 같은데 이제는 쉬는 게 익숙지 않은 그녀다.
퇴사를 했어도 워낙 히 성실하다는 것을 잘 아는 지인들이 이런 일 저런 일 부탁하여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은 했지만 자아실현이 없는 일은 재미가 없기 마련이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던 그녀는 음식솜씨가 남다르게 좋아 조리사를 하고 싶어 했다.
환갑도 지나고 배움도 많지 않은 그녀에게 조리사 시험은 넘을 수없는 장벽였지만
자식들의 응원은 그녀의 삶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처음에는 단어조차 알아듣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그녀는 해냈다. 공부가 싫다는 그녀가.
경험 삼아 본다고 했던 첫 시험에서 시험지를 받아 드니 자신이 공부했던 게 그대로 나왔다고 한다.
첫 시험에 당당히 합격을 하고 그녀는 큰딸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전화를 받지 마자 딸은 상심할 엄마를 위해 "엄마 괜찮아 경험 삼아 본 거잖아"
하지만 합격했다는 것을 알었을 때 딸의 놀라움이란. 이보다 자랑스러운 엄마가 있을까 싶다.
이혼이 팔자라면 이혼을 하고 모두가 혼자 사는 건 아니다.
단지, 그녀는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여인들의
롤모델의 한 단면같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2024.8.12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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