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양옆으로 서 있는 벚꽃나무들은 아직도 꽃망울을 맺지 못하고 있다.
'벚꽃길'이라는 입소문을 무색하게 하는 추위가 어떤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며
아직도 봄 맞이를 못하는 그들이 가여워 순간순간 눈길이 머물어진다.
4월 둘째 주일날 마이산으로 정기산행 가는 날이다.
갑자기...'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가 왜 떠 오른 것일까^^
동녁하늘을 발그스름하게 물들이며 수줍은 듯 얼굴을 내미는 햇님과 눈맞춤을 하며
마이산 정기산행 버스가 기다리는 사당동으로 갔다.
뚜렷하게 '봄이다'라는 징후를 갖추지 못한 산야지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막히는 일상을 훌훌 털어 버릴수 있어 차창 너머로 오랫동안 눈길이 거두어지지가 않는다.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남부주차장에 마이산행버스가 도착했다.
입소문으로 들어 익히 알고 있던 '벚꽃길'은 아직도 무늬만 '벚꽃길'을 따라 올라가자.
대웅전 지붕을 금칠 해 놓은 금당사(金糖寺)가 마이산을 찾은 산행꾼을 반긴다.
일주문에서 금당사로 가는 사찰길에 즐비하게 늘어선 향토음식점에서
굽는 돼지고기 냄새가 진통한다.
1300년 전 보덕스님의 제자 금취가 세운 사찰이 세월이 흘러
현대에는 민중들의 민생고를 해결해주는 해결사로 자리매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숲속의 나목사이로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 봄 햇살을 따라 산길을 올라간다.
두어달만에 산행 잘 해낼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을 했었는데
산이 가파르지 않아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산 중턱쯤 올라가니 금으로 온통 지붕을 칠한 고금당(古金糖)있다.
황금빛으로 호화찬란게 빛나는 고금당에 올라서자 불 타듯 뜨겁게 타오르던 열정이
바람따라 청아하게 울리는 풍경소리가 잠 재워준다.
어쩌면...나옹암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풍경을 울리고 있는건 아니였을까!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선사가 수도했던 천연굴 나옹암은 고금당 바로 아래에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靑山兮要以)-나옹선사
1연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聊無愛而無增兮(료무애이무증혜)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2연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聊無怒而無惜兮(료무노이무석혜)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나옹선사의 시 한 수 읊어 보라고 저 멀리 산 정상에 정자가 보인다.
한참을 올라 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멀리 보이는 비룡대.
낙심이 슬며시 일어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어느 산이나 있기 마련인 가파른 산비탈이 앞을 가로 막는다.
그 흔한 진달래 한 송이 볼수 없는 가파른 산길을 쉬엄쉬엄 오르자
나봉암(527m) 정상 바위에 사쁜히 앉아 있는 정자 비룡대가 반긴다.
비룡대 건너편에는 손만 뻗히며 닿을 것처럼 마이산(627m)이 턱 버티고있다.
모래와 자갈이 촘촘히 섞어 역암 퇴적층의 존재를 분명히 했던 마이산이지만
레미콘를 쏟아 부은것 같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말의 귀를 닮았다는 마이산(馬耳山)을 바라보며 신라시대 경문왕의 설화가 문득 떠 오른다.
과연 그는 당나귀 귀였을까?
화랑도 정신으로 중무장하였고 자비로움 또한 남 달랐던 화랑 웅렴은
헌안왕의 눈에 들어 임금이 되었던 신라 제 48대 경문왕.
'경국제세'의 뜻을 이루고자 노력했지만 기세 등등한 귀족 세력을 등한시 했다는 댓가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억울한 누명까지 써야했던 경문왕.
그의 상흔들이 마이산 중턱을 움푹 움푹 파이고 말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의 세력은 왕정에서조차도 불가항력였나보다.
하산길에 들렀던 탑사.
암마이산과 숫마이산을 배경으로 무수히 많은 돌로 크고 작은 탑을 쌓아 놓았던 탑사에서
자그마한 돌 하나 주워 탑위에 올려 놓으면서 생각해본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2012.4.8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