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기다리지 않아도 세월의 도도한 흐름에 편승하여 언제나처럼 내 곁을 찾아드는 그가
여늬해 보다 늦다.
여전히 녹색의 푸르름을 자랑하는 우리동네 시청앞 주차장안 순바닥만한 나무숲속엔
담갈색과 황갈색으로 곱게 단장하고 가을맞이를 하는 두어 그루의 나무가 돌연변이처럼 보이지만
정녕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마치 무심히 스치듯 지나가는 가을바람처럼!
가을이 오면 가보고 싶었던 산이 있다.
청량산....'세상 번뇌 시름잊고 청산에서 살리라'라고 했던
김연준씨 작곡의 노래가 생각나는 산이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님을 만나듯 청량산행 공지가 올라오자
마음이 분주하여 여유가 찾아지지 않는 일상에서도 이따금씩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는 10월 둘째주일날 청량산으로 정기산행이 있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는 새벽길이지만
기대로 벅찬 가슴은 터질듯 부풀어 올랐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두어달만에 만나는 산우님들 자주는 아니지만 벌써 5년이상을 같이 산행했으니
이제는 가족처럼 친숙 할때도 되지 않았는가 싶다.
9월 지리산 정기산행에 왜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시는 회장님 말씀에
잘못을 저지른 아이같은 느낌은 지울수가 없었다.
그 어느것도 가을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 데
황금빛 들판이 '풍요로움에 상징'처럼 가을의 인증샷을 선명하게 찍고 있었다.
질 좋은 황금빛 카페트를 깔아 놓은 것같은 누우렇게 익은 벼이삭을 산행버스 창문 너머로 눈여겨 보며
'아~ 그랬구나....!'얼마나 대견하던지.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는 언제보아도 나무에 사과가 매달렸다는게 실감이 나질 않아
"어머 사과 좀 보세요" 나도 모르게 그만^^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 관리사무소에 청량산행버스가 들어서자
관리소 직원이 버스를 정차시키며 청량산을 찾아오는 산행객이 하루에도 수백명이라며 자랑이 대단하다.
가을햇살이 쏟아지는 주차장에서 산행준비를 가볍게하고 산행길에 오른다.
언덕위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쑥부쟁이 꽃잎에는 꿀벌도 있고 호랑나비도 사쁜히 앉아있다.
연보라빛 꽃잎을 스틱으로 살며시 건드려본다.
여전히....화사한 그의 모습에 보라빛꽃잎을 스틱끝으로 살짝 찍어 가을을 훔쳐내며 회심에 미소를 지었다.
숲속의 오두막집였던 두들마을을 지나 철계단을 올라서자 끝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이 기다리고있다.
가을바람조차 게으름을 피우는 날에는 땀과의 전쟁으로 산행을 할 수 밖에 없다.
줄줄 흐르는 땀을 급조한 도툼한 종이부채로 막아보며 저만치 하늘이 훤히 보이는 등선를 올라선다.
갈림길 나무표지판에는 장인봉 0.3Km,하늘다리 0.5Km라고 가르킨다.
청량산의 주봉인 장인봉 300m라....
주봉이 지척에 있으니 산행 다 한것 처럼 가쁜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정상으로 올라 갈수록 가을로 서서히 무르익어가는 숲속을 만날 수가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 숲속은 어찌 그리 황금빛 들판과 흡사하던지.
그들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 터트리자 생각이 깊으신 산우님께서
만일에....병상에 있는 환우가 이런 풍경을 보았다면 어떻겠는가하고 화두를 꺼내신다.
'스티브 잡스'가 며칠전 저 세상으로 갔다는 소식에 공황상태에 빠진 것처럼 그의 이름만 보아도
울꺽 눈물이 솟아 났다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했다.
가을은 어쩌면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고 사그라지는 석양빛과 흡사한건 아니겠는가....
주봉 정상 장인봉(해발870m)에는 신라의 명필가였던 김생의 글씨체로 장인봉이 바위에 깊숙히 새겨져
청량산을 지키고있다.
청량산에 있는 굴에서 글씨공부를 했던 김생(711~791)은 이름값을 톡톡히 한 셈이다.
청량산(淸凉山)답게 12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루어져있으며
최치원이 수도했다는 풍혈대와 퇴계 이황선생의 학문을 학자들이 수양했다고 하는 청량정사도 있다.
특히 청량산은 공민왕과 인연이 깊은지 홍건족의 난을 피해 쌓았던 청량산성과
공민왕의 부인 노국공주의 상이 있는 웅진전 그리고 잔인하게 시해당한 공민왕을 위해 제를
지내는 사당 공민왕당도 있다고한다.
주봉 장인봉 바윗돌에 올라서서 인증샷도 해보고
철계단을 타고 올라 나라안에서 가장 길다고하는 현수교량 '하늘다리'로 갔다.
해발800m지점에서 자란봉과 선학봉을 신소재 p.c강연 케이블로 연결하여 만든 하늘다리는 직선거리가 얼마나 빠른가를
몸소 보여주고 있어 오랫동안 청량산을 찾아오는 산행객들에게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받을만한 사건(?)임에
의심에 여지가 없다.
흔들림조차 최소화 했는지 해발 800m 현수교량을 지나가는데도 출렁거림조차 없다.
하늘다리를 건너 연적봉에도 잠시 들러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수려하게 꾸며놓은
청량산의 산세가 작은 금강산이란 말을 실감한다.
중국 여산의 탁필봉과 비슷하다는 탁필봉 봉우리에 손도장을 꼭 찍으며 탁필봉도 지나갔다.
청량사로 내려오던 하산길.
이따금씩 들려오는 풀벌레들의 가을 소나타에 귀기울이기도 하고
가을빛이 설핏 내려앉는 숲속 풍경을 가슴에 담으며 웅진전을 생각한다.
고려 태조 왕건과 더불어 개혁의 군주로 화두가 되는 공민왕.
원나라의 내정간섭은 고려왕조차 그들의 손아귀에 달려있어 노국대공주와의 결혼으로
공민왕이 되었지만 정략결혼이라하여도 공민왕의 노국공주 사랑은 영혼불멸였다.
아기를 낳다 죽은 노국공주로 인해 군주도 파멸의 인생을 살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공민왕.
중3때 입시가 코앞인데도 공부는 뒷전이고 월탄박종화씨의 '다정불심'을 가슴 조이며 읽었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게 하는 청량산 금탑봉 절벽에 있는 웅진전.
하지만,차 시간에 쫒겨 노국공주상이 안치되어 있다는 웅진전은 갈 수가 없었다.
다만 청량사에 들러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속을 파내 수로를 만든 통나무수로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손가락을 적셔보며 '웅진전'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과연 개혁 군주의 마음을 영혼토록 사로잡은 노국공주는 어떤 모습일까....?!
2011.10.9
NaMu
에필로그:
뒷풀이로 더덕정식을 먹으면서 반찬으로 나왔던 사과 깍두기김치를 난생처럼 먹어보았다.
사과를 네모반듯하게 깍뚝썰기로 썰어 고추가루에 묻힌 사과 깍두기김치.
제아무리 사과가 커 봤자 어른 주먹만 할텐데 얼마나 많은 정성이 있어야 하는지는...
가을과 함께 내 곁을 찾아 왔던 사과 깍두기김치 어쩌면 청량산과 함께 오랫동안
빛고운 추억으로 내 가슴에 남아 있겠지.....행복은....언제나처럼 찾는자에게 오게 되어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