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봄 언저리 어디쯤에서 머무고 있는 이내 마음 눈치라도 챈듯
덩쿨장미가 하나 둘 빠알간 꽃잎 떨구며 여름이라고 한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날로 열기를 더 해가는 태양을 앞세우고 여름이 내 곁을 찾아 왔다.
여름산행...무더위가 강적이라해도 '아직은 삼복더위 찜통속보다야 낫지 않겠냐'며 가만히 다독인다.
여름으로 성큼성큼 가고 있는 6월 둘째주 일요일날 무등산행이 있었다.
무등산이라....무등산행 공지를 보면서
'살다보면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있는가하면 꼬옥 해야 할 일도 있듯이
산행도 가고 싶은 산이 있는가하면 가보야만 하는 산도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최대한 더위를 이길수 있는 가벼운복장과 배낭을 선택했지만
과연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가지면서
이른 새벽이 아침처럼 밝아 덤으로 선물 하나 받은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등산행버스가 있는 사당동으로 향한다.
새하얀꽃잎 주렁주렁 매달고 포도송이처럼 축 늘어진 아카시아가 무등산행버스 차 창문너머로 선명하게 보인다.
흔하디 흔하던 아카시아 나무조차 올해는 본적이 없어 먼 발치에서 스치는 것만으로도
아카시아의 달콤한 향내가 코 끝을 스치는 듯 싶다.
의무에 충실한 멀미약 덕분에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모내기를 갓 끝낸 초년병 모들이 찰랑찰랑한 논 물위로 고개를 내 밀고
언제나처럼 풍요를 약속하고 있어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평야가 많은 지방답게 넓은 들녁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난생처음 가보는 광주 "여기가 광주예요?"하고 옆에 앉은 산우님께 물어봤다.
난생처음 광주를 보았다.
이 땅에 민주화의 개화를 시작한 광주.
시대를 막론하고 피를 먹어야만 피는 꽃 민주화.
어느 누구의 가슴에도 소중하게 간직되는 꽃 민주화.
사람사는 것은 매 한가지인가 보다.
북한산 둘레길을 구비구비 돌아가듯 짙은 녹음으로 어울어진 산길을 돌고 돌아
원효사 주차장에 무등산행버스가 도착했다.
전국에서 모인 100여명의 산우님들이 강적 무더위를 물리치고 산행을 같이 한다는 뚜럿한 목적이 있었기에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며 무등산 옛길을 따라 산행이 시작되었다.
반들반들한 바위돌로 이루어진 돌계단이 숲속에 정취를 물씬 풍기던 무등산 옛길을 따라 가다보면
'새소리,바람소리,물소리만 있어 마음으로 걷는 무아지경'이란 나무표지판이 나온다.
'숨소리도 죽여 오감으로 느끼며 걸으라'는 '무아지경'이 30도를 윗 도는 무더위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제 막 산행이 시작 되었지만 땀은 벌써 홍수를 만난듯 줄줄줄 흘러내린다.
촘촘히 수놓은 나뭇잎이 한참 열이 올라오는 오뉴월 땡볕을 마치 파수꾼처럼 막아주고 있다.
초록빛파수꾼의 도움으로 쉬엄쉬엄 산길을 오르니 새소리가 청아하게 숲속을 울리고있다.
'쉿! 새소리가 많은 곳'이란 나무표지판에 화답하는 새들의 합창소리에 슬며시 미소가 머물어진다.
'숨소리도 죽여가며 아니온 듯 다녀가시라'는 무등산 숲속의 나무표시판이 참으로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아니온 듯 다녀가라......' 아무렴 그게 산행인들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두어송이 남아 있는 산벚꽃은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무등산을 찾아 온
산행꾼에게 예의바른 인사를 한다.
이따금씩 그들과 눈인사를 잊지 않으며 산길을 오르자.
육중한 돌기둥을 산속에 꽂아 놓은 주상절리(柱狀節理)를 만나게 되었다.
육지에서는 가장 큰 주상절리대가 존재한다는 무등산.
주상절리대 서석대가 코앞에 있는 지점에서 무등산옛길 종점이다.
11.87KM 완주 축하 메시지 안내판까지 친절하게 있다.
옛길이라....
요사이 한참 유행하는 둘레길이 있는가하면 산속을 걷는 옛길도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등산옛길 종점과 이어지는 산길 너머에 서석대(1100M)가 있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솟구쳐 오른 용암이 지표로 흘러나와 냉각되면서 생긴 주상 절리대
돌기둥 벽에는 담쟁이 덩굴이 올라오고 풀꽃도 피어나 고풍스러운 멋을 한층 더하며 천연신전이 따로 없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신전을 만들어 자신들이 모시는 신을 섬겼다고 하는 데
우리는 백학기때 이미 자연이 신전을 만들어 주었으니 어쩌면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보다
축복 받은 민족은 아니였을까 하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생명을 존중하는 스님의 고귀한 정신이 이무기와의 거래에서 승리 할 수 있었던 승전암바위도 걸어보고
돌기둥 신전 입석대에 잠시 들러 우람한 돌기둥에 슬쩍 손도장도 찍어보며
산속에 연병장같은 장불재에 도착했다.
장불재에서 바라본 서석대와 입석대.
나뭇잎의 초록빛 물결 사이로 우뚝솟은 돌기둥의 그 신비스런 매력은 대자연의 위력앞에 다시금 경외를 실감한다.
과연 민주화가 만개한 땅 광주를 상징하는 산답다.
여름산행의 강적 무더위가 끝까지 따라 붙어 어지간히 지치게도 했지만
새하얀 찔게꽃이 달콤한 향내 폴폴 풍기며 시종일관 산행길을 안내한다.
그들의 향기에 순간순간 취하면서 지친 발걸음을 추스리곤 했다.
어쩌면 나는 끝까지 초보산행꾼 딱지를 떼지 못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은 지울 수가 없었다.
2011.6.14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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