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산행기

대야산행

NaMuRang 2011. 7. 13. 10:29

 

비가 온다.
갈 길 바쁜 나그네 앞을 가로 막는 것같아 거추장스럽기만하다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는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을 키워준 주범인 지구온난화는
우리가 자초한 화이기에 할 말이 없어도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다.

장마전선이 남부지방에서 중부지방으로 다시 올라 온다는 기상청 예보가
일말의 희망마저 무참히 무너졌다.
주섬주섬 우중산행에 필요한 우의와 우산을 챙기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연인을 붙잡듯이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마치 소풍가는 아그처럼 잠도 자는둥 마는둥 새벽에 일어나자 마자 창문부터 열어봤다.

비가 오지 않는다.
'그러면 그렇지'
한 시름 덜어낸 것같이 발걸음도 가볍게 대야산행버스가 기다리는 사당동으로 갔다.

 

7월 둘째주일은 대야산으로 정기산행이 있는 날이다.

비가 올듯말듯 금방이라도 일 저지를 것처럼 위태로운 하늘을 불안한 맘으로 바라보며

대야산행버스에 올랐다.

방어벽을 타고 올라 온 담쟁이덩쿨위에 긴 소매자락 늘어뜨리고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아...능소화가'
오래만에 만난 옛친구처럼 차창너머로 반갑게 눈인사를 건넨다.

 

청주를 지나 대야산 가까이 오자 제법 세찬 빗줄기가 차 창문을 때린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용추계곡만 갔다 오자는 산우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한 수 더 뜬다.
"바닷가로 가요...비오는 바닷가 얼마나 멋있어요"
불 난집에 부채질이 따로 없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나는 정말 비오는 바닷가가 가고 싶어 암 생각없이^^
대구에서 지구온난화 때문에 이사왔다는 사과가 빗속에 무심히 비를 맞고있다.
비에 축축하게 젖어있는 농가에 풍경이 아득히 먼 어린시절이 떠 올라
되 돌아 갈수 없다는 아쉬움은 언제고 그리움으로 상처가 된다.


출세 길 선비들의 꿈이 서려있는 문경세제로 유명한 경상북도 문경.
가은읍 벌바위주차장에 대야산행버스가 도착하자 엉거주춤 비도 멈추었다.
더이상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산우님들 모두가 한 마음이라.

 

한 두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을 맞으며 숲 속으로 들어선다.
굵은 빗방울이 나뭇잎에 후두둑거리는 소리에 놀라  재빨리 우의를 꺼내 걸쳤다.

계곡이 아름다운 산답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계곡물소리,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까지 다양한 빗소리의 화음이 숲 속에 울려 펴진다.

그들의 합창에 귀기울이며 용이 승천하면서 선명하게 자욱 남긴 용소에 들러본다.


용추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용의 엉덩이처럼 움푹 패인 용소에 소용돌이치며 흘러 넘치는 걸 잠시 구경하고는

 

다시 산길로 올라간다.

 

폭포수처럼 흐르는 계곡물조차 그림에 떡마냥 무더위를 달래주지는 못해 온몸이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우의를 벗어버렸다.

계곡에만 빗물이 흘러 넘치는게 아니다 산길에도 빗물이 줄줄줄 흘러내려 작은 계곡를 이루고
바위사이에도 빗물이 흘러 작은 징검다리를 만들며 산이 온통 물 천지다.
월영대(月影臺)조차 그 빛을 잃어 버리고 빗속에 젖어있다.

 

오락가락하는 비와 습기로 가득 찬 계곡산행은 찜질방산행이라고 한다면 안성맞춤이다.
제아무리 더위로 찜질을 한다해도 어떻게하든지 밀재까지는 가야한다.
밀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 밀재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며 무뎌지는 발길을 재촉한다.

 

오랫만에 선두팀에 끼어 산행 한 덕분에 비가 쏟아지기 전에 점심을 먹어 치웠다.

 

비가 오긴해도 대야산 정상가는데는 지장이 없다는 회장님과 총대장님의 판단 아래
있는 힘을 다시 모아 정상으로 향해 올라간다.

 

점박이나리꽃이 주홍빛꽃잎 땅에 닿도록 고개를 푹 숙이고 쏟아지는 비를 대책없이 맞고 있다.

비 속에서 조차 여전히 고은 그 자태가 마음에 걸려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칫 해 졌다.

 

능선 건너편 산 허리를 뿌연 운무가 감싸고 지나가자 새하얀 솜털구름이 다가 와

산 기슭을 슬쩍슬쩍 스케치하며 머물고 있는 신비스런 풍경에 흠뻑 빠져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신음처럼 흘러 나온다.

 

번쩍! 순간 놀랐다.
으르릉 꽝 으르릉 꽝 하늘에서 번개와 천둥이 요동치는 걸로 보아 큰 비가 오는 건 분명한데
아직 정상까지는 1시간 남아있다.

 

제대로 비를 만나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에 뾰족뾰족 암능이 건너편 눈 앞에 있는 걸로 보아
저 건너편이 정상인 것 같은 데 아득하기만하다.

 

등산...우리네 인생살이하고 똑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듯이 아무리 힘들어도
어차피 산행은 내 몫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우의를 벗어버리고
우산을 악착같이 쓰고 비에 흥건히 젖어있는 암능을 조심조심 올라갔다.

 

물론 힘이 센 젊은 친구가 손으로 끌어 올려주기도 했지만 그 친구 하는 말이 걸작이다.
"오늘 손 많이 잡아 봤네"
'내 잊지 않으리 그대의 젊은 피를' 고마움을 말로는 표현 못했지만 마음까지야 놓칠 수 있겠는가!

 

암능 정상에는 대야산(930.7M) 비석이 폭우속에 정상까지 찾아 온 산우님들을 반긴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와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걸쳐 있는 대야산은 속리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산이라고 한다.

 

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려 건너편에 있는 희양산도 백두대간길도 조망은 전혀 할 수 없었지만

장마전선의 거센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까지 무사히 올라왔다는 데

산우님들 모두가 환희의 넘치는 성취감에 흠뻑 젖어있다.

2011.7.10

NaMu

에필로그
하산길 내내 비가 왔다.
"우산을 쓰고 정상까지 올라갔으니 상 주세요"
하고 농담삼아 회장님께 말했더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라는 사진을 올려야한다고 원칙에 충실하신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각이 자유롭고 구속을 끔찍히도 싫어하는 나는 어쩌면 아무리 조심을 한다해도 산행 안전불감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워낙히도 덜렁대는 성격에 산행 안전불감증까지 걸려있는 산우가 회장님 보기에는
뜨거운 감자가 아니였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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