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고 있음에 행복했노라
철들기 전까지 나의 우상은
아버님이셨다.
평생을 공직 생활로 마무리하시고
노년에 서울집과 고향집을 오르락
내리락 하시면서 소일거리 삼아
농사 지으시는 아버님께서
오랫만에 전화를 하셨다.
단감 2박스와, 고구마 3박스
손수 재배하신 한약재를 넣어 만든
배즙 한박스를 보냈다고 하신다.
일년 열두달 안부 전화 한통화 없는
괘씸한 딸이지만, 아버님에게는 그저
늘 애물단지 철부지에 불과 한가보다.
택배 아저씨의 가쁜 숨소리와 함께
박스 6개가 아파트 현관문 앞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차례로 박스를 거실에 들여 놓고는
단감 박스부터 열어 보았다.
소담스런 주홍빛 단감들이 모양은
별로 없었지만 고향집 소식을 풍성하게
담아 온것 같아 마치 옛 친구를 만난양
반가움이 가슴 가득 차 올랐다.
겨우네 다이어트 식품으로 사랑을 받을
고구마는 아버님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 시중에서 파는 것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고 실하다.
고맙고 죄스러움에 전화는 꼭 해야지
하면서도 언제나 그런 것처럼 맘 뿐이지
막상 전화기는 잡지 못했다.
늦은 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버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배즙은 아침 저녁 공복시에 먹으면
효과를 볼수 있다는 당부의 말씀과 함께
서울집에 오시면 한번 들러 보시겠다고 하신다.
나 또한 자식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본다면
일년 열두달 안부전화 한 통화 없는
딸아이가 때론 서운하여 도통 관심조차
갖을 것 같지 않지만, 아버님의 무한하게
크고 깊은 사랑은 아무나 흉내 낼수 없기에
아버님은 내 인생에 버팀목 일수 밖에 없다.
단감과 고구마를 봉지 봉지에 넣어
딸아이 학원 선생님께,
같이 근무하는 매장언니에게
그동안 신세 진 사람들께 자그마한 정성을 보냈다.
오늘도 고구마 열 댓개와 단감 대여섯개를
쇼핑백에 넣어 매장 직원들과 나누어
먹기 위해 출근길에 나섰다.
05.10.27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