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여행기

서울숲

NaMuRang 2022. 10. 24. 08:25

 

커다란 눈망울을 흑진주처럼 반짝이며 손바닥에 놓인 도토리 두 알을

기다란 입으로 먹으면서 혀 끝으로 살짝 손바닥을 핥는다.

순간 움찔했지만 갑자기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느낌은 왜 일까?

너무도 황홀하여 나도 모르게 손바닥을 다시 네모난 철장 속으로 집어넣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손바닥 끝에 얼굴을 파묻는 얼룩빼기 사슴의 예쁜 짓에

혹시나 전생에 사슴 엄마였나 의심을 하며 활짝 웃었다. 

전혀 그럴 의도는 아니 얼룩무늬 사슴이 살고 있을 거라

상상조차 못 했는 데 거기에는 얼룩무늬 사슴들이 살고 있었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던 어느 날 서울숲

서울에는 4개의 공원이 있다고 한다.

억새꽃으로 유명한 하늘 공원 있는 상암동 월드컵공원,

올림픽공원, 뚝섬에 서울숲 그리고 번동에 북서울 꿈의 숲.

눈부신 가을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며 어디론가 떠나보라고

유혹하고 있어 못 이기는 척하고 인터넷 창을 열었다.

무거운 배낭은 잠시 밀어 두고 눈부신 가을 햇살 따라 가볍게

갈 수 있는 공원을 클릭했다.

뉴욕 센트럴 파크와 런던의 하이드로 파크를 벤치마킹하여 조성했다는

거창한 홍보에 깜짝 놀라 선택했던 서울숲.

마음은 이미 호기심으로 가득하여 파아란 가을 하늘에

붕붕 떠 올라 지하철역으로 갔다.

어느 공원이나 마찬가지지만 지하철과 연계가 잘 되어있어

수인 분당선 서울숲역에서 내려 3번 출구를 나와 2~3분만

걸으면 서울숲 광장이 훤하게 보인다.

 

서울시 성동구 뚝섬로에 위치는 서울숲은 예전에 뚝섬 경마장였다는 것을

귀띔이라도 하려는 듯 광장 한가운데 말들이 금방이라도 경주를 하겠다고 서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조형물이기에 스쳐 지나가면서 

메타세쿼이아가 누르스름하게 가을 옷을 입고 있는 거울 연못길로 갔다.

수심이 3cm에 길이가 길어봤자 100m 정도 되는 미니 거울연못였지만  

물 위에 투영되는 메타세쿼이아가 근사하여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제법 붐비고 있었다.

사진 찍는 포즈는 다양했지만 한결같이 기쁨에 들뜬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전염이 되어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이름이 정겨워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던 모퉁이 정원에는

모과나무에 노란 모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풍요로운 가을이 왔다고 한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가을 인사가 흐뭇하여

새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 찬 숲길로 갔다.

 

분명 그것은 은행이 땅바닥에 뒹굴며 나는 냄새였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0월이 되면 어느 동네를 막론하고

가로수 은행나무가 무심하게 털어놓아 도로변에

질퍽하게 떨어져 있는 은행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라니....

그 냄새를 서울숲에서도 피해 갈 수는 없었나 보다.

하지만, 서울숲을 찾은 연인들은 땅바닥에 뒹굴며 나는 은행

의 냄새는 상관없다는 듯 카메라를 여자 친구에게

들이밀고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남녀가 사랑을 하면

이렇게 꼬리꼬리 한 구린내도 맡을 수 없는지 알 수는 없지만,

땅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최대한 멀리하면서 은행나무숲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임금의 사냥터였다는 서울숲은 유난히 테마파크가 많다.

오밀조밀하게 때론 아기자기하게 조성하여 총 40개로 구분하였는데

테마파크의 백미는 꽃사슴 방사장이다.

꽃사슴을 언제 봤는지 기억조차 없는데 얼룩무늬 꽃사슴을

실제로 보니 얼마나 신기하고 예쁘던지

커다란 동물이 그렇게 선하고 예쁠 수가 있는지 보면서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처음 봤을 때는.

꽃사슴 우리 안에 있는 사육사한테 도토리 두 알을 받았다. 

손바닥에 도토리 두 알을 놓고 네모난 철장 속으로

손을 넣고 꽃사슴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룩빼기 꽃사슴이 성큼성큼 오더니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거리며

손바닥에 있던 도토리 두 알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난생처음 경험한 꽃사슴 먹이주기는 숨겨져 드러나지

않던 인간의 선한 마음을 가감 없이 선보인 것 같아 아이들 

체험학습장으로는 안성맞춤 일 것 같았다.

 

붉은빛으로 때론 노랗게 나무들이 자기만의 색깔로 가을 옷을 입고

일렬종대로 서있는 숲 속 길을 올라가니 새하얀 억새꽃들이 군무를 추며 반겨준다.

이름하여 바람의 언덕이라고 한다.

억새꽃 군락지에서도 가을맞이 연인들이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지만,

나이가 지긋한 여자들도 억새꽃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어 가을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햇살이 무한정 쏟아지는 언덕길에는 화살 나뭇잎이

새빨갛게 물들어 마치 꽃이 활짝 핀 것 같았다.

이름은 화살나무지만 나뭇잎이 꽃처럼 붉게 피어난 

화살나무의 반전을 어찌 필설로 형용할 수 있으랴.

서울숲 바람 언덕에서

붉게 피어난 화살 나뭇잎이여!

가을빛에 부활한 사랑이라니

내 잊지 않으리 그대의 속 깊은 마음을

2022년 10월 22일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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