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중국사를 배우게되었다.
예전에 우리가 역사 시간에 조선시대 왕을 배울때 태종태세문단세,예성인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 이렇게 가락을 붙여 외웠듯이 중국시대도 가락을 붙여보았다.
하은주춘추전국진한, 동한삼국위촉오위진남북조, 수당오대십국북송남송금,원명청중화민국.
중국대륙에도 고대부터 근대까지 자타가 인정하는 영웅호걸이 있었지만
성격이나 외모가 첨예하게 달랐던 두 사람이 천하를 얻기위헤 각축을 벌었던 초한시대는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많아 오늘날까지도 화제가 된다.
초한시대를 출판사 고려원에서는 정 비석씨의 소설로 엮어내었다.
총 다섯권으로 되어 있는 소설 초한지는 수려한 문장력은 아닐지라도 한문세대답게
탁월하신 한문실력을 바탕으로 되도록이면 역사에 충실한 팩트로 임하셨기때문에
소설이라기보다는 흥미진진한 교양서적을 읽는듯난 느낌이 들었다.
초한시대를 논하기 전에는 우선 진나라를 알아야 하는 것을 상식인가보다.
작가는 초한시대를 이야기하기전에 제 1권에서는 중국 최초로 통일을 이룩했던 진시황의 출생과
통일정국후 운영방식 그리고 불과 14년만에 진나라가 왜 멸망했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전국시대 조나라 거상 여불위는 조나라에 불모로 잡혀온 진나라 자초왕자를 탈출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진나라에서 동궁 국승이란 벼슬을 얻는다.뿐만아니라 자초왕자가 자신의 애첩 주희에게
관심을 보이자 자신의 아이까지 임신한 주희를 양녀라고 속이고 자초왕자와 결혼까지 성사시킨다.
주희가 낳은 여불위 사생아 정은 훗날 중국 천하를 통일시킨 진시황이 된다.
중국 천하통일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70평생을 전선에서 살었던 진나라 소양왕은
정이 열 세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나면서 그에게 유언을 한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밖에 없듯, 땅에 임금도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 정은, 증조부의 웅지를 이어받아 육국을 모조리 정벌하여 만천하를 하나로 통일하여라"
<소설 초한지 제 1권 60 페이지>
할아버지의 유언을 조석으로 외우며 천하통일의 집념을 불태웠던 진왕 정은 열다섯 살에
자신이 통사령관이 되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주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70개나 되었던 나라가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6국으로 세력이 규합되었다
하더라도 중국대륙이 하나로 통일하는데는 진왕 제위 26년이 되던 기원전 221년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 되던 해였다.
천하를 통일하고 함양으로 문무 백관을 불러 축하연을 배푸는 자리에서 그는
중국에서 명망 가장 높았던 성군 삼황과 오제 임금을 하나로 묶어 '황제'라는 칭호를 쓰게된다.
분서갱유 사건등으로 진시황을 기록한 실록은 전혀없고 다만 100년후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진시황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듣는 비극이 있고보면 그 당시 여불위의 세력과 권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여씨춘추'라는 26권의 여불위 사서를 발간할 정도라서 진시황의 출생에 대한 비밀또한 심히 의심이 간다.
분서갱유를 저지른 진시황에 대한 문인들의 괴씸죄가 있고보면....
정 비석씨의 소설 초한지에서 나오는 진시황도 야사에나 나옴직한 어지간히 포악한 군주로만
묘사를 해 놓아 선정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지만 그의 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할아버지 소양왕이 진나라가 천하통일 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 놓았다 할지라도진시황제의 최초로 천하통일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중에 하나 임에는 틀임없다.
새롭게 중국을 건설하고 싶었던 그는 법치주의자 승상 이사의 조언을 받아들어 세가지
개혁조치를 한다.
첫 번째 주나라가 친족에게 봉토를 나누어주어 지방의 세력이 커져 나라가 망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하면서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가져왔던 전례를 없애기위해 전국을 36개군으로 나누고
각 고을에는 군수를 직접 임명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현했다.
두 번째 글자와 도형량을 전국적으로 통일하게 만들었다.
세 번째 법률을 전국적으로 통하게 시행했다.
천하를 통일한 황제로써 개혁군주로 거듭나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면서 그의 말대로 자자손손
이세 황제 삼세 황제 영원토록 부귀영화를 누릴거라고 생가했지만 불과 14년만에 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헤아려보면 수 없이 많겠지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원인 네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 그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던 한비자를 비롯한 유생들과의 반목으로 분서갱유라는
씻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사건이다.
두 번째 오랑케를 두러워한 나머지 만리장성 토목공사를 하면서 백성들의 노동력 착취와
아방궁을 지어 극도의 사치를 일삼는 폭정은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는 조짐을 만들어주었다.
세 번째 분서갱유 사건으로 자신에게 조언을 하던 첫째 아들 부소조차도 만리장성 토목공사장으로 정배시키고 환관 조고를 지나치게 편애한 나머지 문무 백관들이 환관 조고의 눈치를 봐야하는 인사부재 현상 때문였다.
네 번째 쉰살에 평원지 지방 순행중 객사는 진신황의 유언조차 지켜지지 못하고 환관 조고의
농락으로 둘째 아들 호해의 대위 계승이 결정적으로 망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서른 아홉에 천하를 통일하며 신화를 이룩했던 진시황이 쉰살에 죽음을 맞이하여 그가 천하를
다스렸던 기간은 불과 11년였으며 꼭두각시 황제 호해를 대신하여 환관 조고가 정치를 하며
부패와 사치가 만연하고 백성들은 삶이 점점 피폐해져가는 웃지못할 시대적 상황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일어나 천하의 대사를 도모하려는 움직임은 당연지사였으리라.
나 잘났다고 자칭 영웅 호걸들이 나서지만 세력을 키우고 합병을 거듭하면서 최고의
리더자리에는 기상만은 우열을 가름하기 힘든 두 사람이 천하를 잡기위해 자웅을 나누게된다.
그들은,초나라 명장 향연의 장군 후예로 만근이 넘는 돌솥을 손으로 밀어 넘어트려 제자리에
올려놓는 힘이 천하장사라 '역발산 기개세'로 불리던 항우와 술과 여자를 좋아하여 '천하의 난봉꾼'이란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제왕지상을 타고난 유방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힘이 세고 싸움잘하고 장군 집안의 항우가 충분히 천하를 차지 할 수 있었을텐데
배운것도 미약하고 '천하 난봉꾼' 였던 유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천하를 차지했는지
정 비석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생김새 만큼이나 맘씨 고운 우희낭자를 부인으로 맞이하고 천하에 하나 밖에 없는 명마
오추까지 얻은 항우는 초나라의 왕족 미심을 초회왕으로 옹립하고 그의 숙부 항량을 무신군으로
자신은 대사마부장군하여 그의 부하들과 이세 황제 호해가 통치하는 진나라의 함양으로 출격한다는 소식에 유방도 자신이 모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합세했다.
진나라 명장 장한과 9전9승을 하면서 연전 연승의 혁혁한 무공을 장남 전전에서 쌓고 있는
항우와 남양전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던 유방에게 초회왕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이세 황제가 있는 함양에 먼저 쳐서 승리하는 사람이 관중왕이 되고 뒤에 오는 사람은 그의 신하가 되라는 어명과 함께 진나라가 평정되고 천하가 통일되면 자신은 왕위에서 물러나겠다는
약정을 한다.
동쪽에서는 항우 서쪽에서는 유방이 진나라 함양을 향해 출정을 하게되고.
10만 군사로 동쪽에서 출발한 유방은 진나라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회유작전으로
무혈입성하며 선정을 배푸는 약법삼장을 실시하면서 또 다른 성도 어렵지않게 무혈 입성하는
도미노현상을 일으킨다.
회유작전뿐만 아니라 '전쟁은 속이는 거라'는 뇌물작전까지 천하의 전략가 장량의 도움으로 펴면서
함양에 입성하여 대진제국의 멸망을 손 쉽게 얻어 낼 수 있었다.
함양을 선점한 유방은 그 동안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었으며
자신의 장병들에게도 논공 행상을 후하게 내리는 동시에 진나라 삼세 황제까지
살려주는 선심까지 쓰면서 관중왕이 된다.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서쪽에서 출발했던 항우는 유방보다 먼저 함양에 입성하려는 욕심에
적을 만나면 무자비하게 죽이면서 점령지역을 초토화시키는 화공법을 실행했다.
특히나 진나라 명장 장한이 항복 했음에도 불구하고 배반을 의심하며 그의 부하 20만명을 생매장시키는 끔직한 일도 서슴없이 저질러 항우가 쳐들어가는 지역에서는 백성들은 도망가기에 바뻐
백성들의 협조를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지략에 뛰어난 항우의 군사 범증은 민심 수습이 급선무라면서 초토화 작전 중지를 강력하게
조언하지만 백성은 힘으로 눌러버리면 그만이라는 항우의 우매한 생각과 행동은 그의 말을 무시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우가 함양에 도착하자 항우의 군사와 싸움에서 대항 할 수 없었던
유방은 항우에게 관중왕의 자리를 내어준다.
관중왕에서 초패왕으로 이름을 바꾼 항우는 유방에게 선심을 쓰듯 한왕이라고 임명하며
첩첩오지 파촉으로 쫓아버렸다.
첩첩오지 파촉에서 유방은 와신상담하며 세력을 키워 역발산 기개세 항우를 몰아내고
천하를 통일하며 한고조가 될 수 있었는지 항우의 실수와 함께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들어본다.
첫 번째 군사 범증의 간곡한 추선으로 한신을 만나 봤던 항우는
당대에 가장 뛰어난 지장이자 용장이 될 수 있는 그의 비범함을 보지 못하여
집극랑이란 하급벼슬을 주면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유방 곁으로 가버린 한신은 대원수가 되어 오합지졸의 병사들을 강훈련시켜
항우가 아홉번이나 싸워야했던 명장 장한이 있는 폐구성을 수공작전으로 단숨에 이기는 지략까지
펼치면서 파죽지세로 영토를 점령하면서 유방을 도와 한나라가 천하통일하는데
일등공신 역활을 단단히했다.
두 번째 항우와 유방이 자웅을 겨를 수 있었던 이면에는 어쩌면 항우 군사 범증과 유방 군사 장량의
두뇌 싸움였는지도 모른다.
우직하고 몽매한 항우는 장량이 꾸민 은근한 이간질(반간지계)에 빠져 군사 범증을 의심하여
끝내는 범증이 고향으로 보내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고향으로 낙향한 범증은 등창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군사 범증의 죽음이 주는 의미는 천하가 항우에게서는 물 건너 간거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유방에게는 평생 그를 지켜주고 도와주었던 소하라는 승상이 있었다.
장량이 소개해 주었던 한신을 유방에게 추선했던 사람도 소하였고 파촉에서부터 항우가 있던 팽성
그리고 마지막 결전지가 되었던 해하의 구리산 기슭까지 군량미를 풍부하게 되어주며
유방의 안 살림을 맡았던 소하의 충성심 또한 천하 통일에 구심점이 되었다.
산천초목도 그의 호령소리를 들으면 벌벌떨었다는 전설의 역발산 기개세 항우가 끔직히도
사랑했던 우미인은 사면에서 들려오는 고향노래 초가를 들으면서 항우가 불러주던 패왕별희에
맞춰 마지막 춤을 추고 항우 곁에서 자결하고 만다. 마지막까지 있어주었던 정장 부하에게
애마 오추를 보냈지만 오강을 건너던 오추는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리고 한때는 자신의 부하였지만 지금은 유방의 부하게 되었던 적장 여마통에게 상금을 타도록 자신을 목을 내 놓았던
천하 영웅 호걸 항우.
점령지마다 국고에 쌓여있는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며 진나라 악법을 철폐하는 선정을
배풀고 전장에서 이긴 자신의 병사들에게 논공 행상도 푸짐하게 하여 성군같던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나라 고조가 되어 과연 그는 어떤 일을 했을까? 그의 행적을정리 해 보았다.
첫 번째 그 당시 천하의 지장이자 명장였던 한신의 비범함을 두려워했던 유방은
전쟁이 끝났다는 이유로 대원수의 자리를 해임해 버려 한신이 모반 할 수 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해 준다.
고생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는 유방였다는 것을 알아버린 한신은 진희와 반란을 주도하고 진희의 반란을 진압하기위해 원정길에 오른 유방을 대신하여 여 황후는 승상 소하의
도움을 받아 한신의 목을 깨끗이 날리면서 삼족을 멸해버린다.
두 번째 유방에게는 조강지처 여 왕후와 수수 대전에서 항우에게 대패하고 도망치다 척씨촌
산골 마을에서 만난 후처 척씨 부인있다. 성질 괄괄하고 못생긴 여 왕후보다 사근사근한
척씨 부인에게 더 애정이 얼마나 많았는지 이미 정실 여 왕후 맏자식 영을 태자로 삼았지만 후처 척씨 부인의 소삭거림에 넘어가 후처 태생 여의를 태자로 바꾸려고했다. 만조 백관의 강렬한 반대에 부딪혀 제위 계승자를 바꾸지는 못하고 대한 12년 그의 나이 63세에 세상을 떠나게된다.
유방이 세상을 떠나자 여 왕후는 자신의 아들을 태자에서 밀어내려했던 척씨 부인을 잡아들여
팔과 다리를 자르고 귀도 베고,눈알도 뽑아내어 측간에서 사람돼지처럼 살게했다.
성질 무서운 여 태우가 손과 다리 귀와 눈이 없는 척씨 부인 사지를 수례에 묶에 네 조각으로 찢어 죽이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년을 죽었지만...네년에게 빼앗겼던 내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그것이 슬프구나..."
<소설 초한지 제 5권 328쪽>
유방이 천신만고 끝에 얻은 천하는 여 태후 일가친척이 막무가내로 등용되면서 10년도 채 못 되어
여씨 천하가 되어다고한다.
역사가 화두로 나오면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 카의 말이 가장 먼저 떠 오른다.
어쩌면...남북이 대치한 현재 우리 상황과 초한시대와는 비슷하다.
진시황의 행적과 초한지를 보면서 일방통행과 인사부재가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확연하게 보았다.
에필로그: 고대 서방에 로마제국이 있었다면 동방에는 중국제국이 있었다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로마인의 이야기를 보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미친적이 있었지만
초한지를 보면서는 그 누구에게도 미칠만큼 매력적 영웅은 없었다.
단지 싸움 잘하는 실력은 있었지만 우직하고 몽애하였기에 안타까움이 더 했던 항우가
있었을 뿐이다.
2015.9.13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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