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수필방

사고를 치던 능소화를 목격하다.

NaMuRang 2013. 7. 23. 07:13

사고를 치던 능소화를 목격하다.

 

어쩌면... 그녀만큼 애닳픈 사연을 가진 꽃도 드물다.

 

예쁜 궁녀 소화는 임금의 사랑도 받게 되어 '빈'이라는 자리까지 오르지만
천성이 착한 그녀는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간교는 타고나지 못해
기다림에 지쳐 상사병으로 죽었다고한다.그리고...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어느날
죽어서도 잊지 못하던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대궐 담장을 타고 피어났던 '능소화의 전설'을 듣고 보면. 그래서 그랬을까 조선시대에는 양반집 뜰안에만 심어졌던 능소화를 양반꽃이라고 했다고한다.

 

하지만 능소화가 제도의 허물을 벗어 버리듯 사고를 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동네 시장보다 물건을 더 싸게 파는 야채가게가 우후죽순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교회 식당 봉사때

권사님으로 부터 우연히 듣게 되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은건 아낙네의 숨길수 없는 진실인지라 물어 물어 그 곳을 찾아 갔다.
과연 내가 근무 끝나고 '참새 방아간 지나가지 못하듯' 습관처럼 들리는 지하 슈퍼매장보다도
두 배 이상 싸게 팔어 감동을 먹었다.

 

장사가 잘 된다는 입소문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야채가게 서 너개가 마주보고 있는 그 곳에는
고추방아간 앞에도 대파,가지,감자,양파 등등 야채를 팔고 있었다.

어쩌면...방아간 앞에서 야채를 팔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건 순전히 능소화 때문였다.

덩쿨식물인 능소화가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넓게 펼쳐 마치 초록지붕을 얹어 놓은 것처럼 방아간 처마를 덮어 한 여름 땡볕에도 야채들이 싱싱하게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무티티한 아스팔트로 뒤덮힌 도심의 도로변에서 용케도 한 줌에 흙속에 뿌리를 박고 실하게 자라는 능소화는 굵은 본가지가 우리네 서민들의 삶만큼이나 생명력이 강렬하지라!

주홍빛 능소화는 흐드러지게 피어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위로를 하면서 내 가슴에 파고든다. 이쯤 되면 야채가게에 있는 야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능소화를 보기위해 한 동안 발걸음이 잦아 지겠구나 하는 예감은 슬며시 내 재산 목록 1호 카메라가 떠 올랐다.

 

마음은 늘 그녀곁에 있어도 바쁜 일상이 언제나 내 앞을 가로 막고 선다.
그녀를 보기위에 카메라를 가방속에 넣고 다닌지가 한 주가 지나도 갈 수가 없었다.

 

윤회를 거친 능소화의 또 다른 사랑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날 날궂이 하느라 몸도 마음도 그녀를 찾아 나서야만했다

 

이슬비 정도야 얼마든지 능소화 나뭇잎들이 받쳐주는 걸 경험했는지 방아간 앞에는 여전히 야채들이 나와있다.방아간집 주인의 손님 맞이 야채 다듬는 손길은 분주하기만하고.

 

간 밤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는 주홍빛 능소화가 꽃무덤을 이루고 있어
마치 다 키운 자식을 잃은 에미심정으로 울컥울컥 통곡이 쏟아진다.
다시 제 자리에 꽃들을 매달아 놓을 수만 있다면...꽃 잎 낱낱이 바람에 흩어지지도 못하고
꽃이 온통 뚝 뚝 떨어져 어찌 그리 아깝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가슴이 미어진다.이뻐할 새도 없이
그렇게 속절없이 가버리다니.바쁜 일상을 핑계로 그녀를 보러 오지 못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만했다.솔직히

 

알록달록 양산 겸 우산을 쓰신 할머니 한 분이 야채를 사시려는지 방아간 앞에서 서성이신다.
맞은 편 트럭에 기대어선 두 어명의 여인네가 구경삼에 소곤소곤 구수회의가 한창이다.

능소화가 마치 초가지붕처럼 얹어져있는 방아간 야채가게는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은 아니였을까싶다.

 

일부 다처제라는 관습에 얽매여 소심쟁이 소화는 임금의 사랑을 독차지하지도 못하고
상사병으로 죽었을지는 몰라도 윤회를 거쳐 이렇듯 당당하게 서민들의 마음에 쉼터로 자리잡은
그녀의 고운 마음씨를 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에필로그: 개인적으로 '소화'하면 기억속에 지워지지 않는 또 하나의 모습이 있다.

현부자집 제각에 딸린 신당을 모신집에서 태어났던 소화.

정하섭은 일제 해방후 어수선한 시대 그 당시에는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자신의 첫사랑 그녀를 찾아간다.

소화를 끔찍히도 아끼고 사랑했던 정하섭이 있었으니 윤회를 거친 소화는 사랑에서도
완성을 이룬셈이다.(비록...작가 조정래씨는 태백산맥에서 소화를 선암사 앞 마당에 피어있는 하얀 수국에 비교했다하더라도.)
2013.7.21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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