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수필방

살구가 익어가는 계절

NaMuRang 2013. 6. 26. 07:28

살구가 익어가는 계절

도로변에 살구가 있다 그림처럼.

설마하니... 허리를 숙이고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분명 살구임에는 틀림없다.
소중한 보석이라도 줍듯 재빨리 살구를 주어들며 주위를 살펴봤다.

 

우리동네 시청 건너편 버스정류장 뒤로 가파르지는 않지만 언덕진 짜투리땅이 있다.
손바닥만한 땅에는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마치 노점상 채소파는 아낙네처럼 행색은 초라하여도 사시사철 나무들은 할 짓을 다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는 연분홍 진달래와 노오란 개나리가 새봄을 물들였으며,

물 건너 시인은 자인한 달이라고 외쳤던 4월에는 보라빛 라일락이 달콤한 향기를 폴폴 풍기며 봄을 유혹하였고,계절의 여왕 5월에는 봄이 무르익어 빨갛게 덩쿨장미가 피어났으며,그리고 6월 장마와 함께 내 곁을 찾아 온 살구.

 

라일락꽃향기 못지않게 살구꽃향기 또한 달콤하고 그윽한데 살구나무가 있을거라고 생각조차 못했기에 단 한번도 살구꽃향기는 맡아보지 못했다.

 

언덕배기 흙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만들어진 커다란 암석 위에도 한 쪽만 노오랗게 익은 살구가 보인다.
반으로 쩍 갈라져 살구씨까지 간 곳이 없는 샛노란 살구가 도로변가에 나 딩굴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떨어지면서 얼마나 아펏을까하는 생뚱맛는 생각을하면서도 샛노란 살구가 참 맛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교차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숨은보석 찾기하듯 도로변에도 암석위에도 암석사이에도 떨어져있는 살구를 주워들었다. 대 여섯개의 살구들이 손안에서 노오랗게 빛나고있다.

 

살구꽃 향기가 피어나던 시절

딸아이가 중학교에 갓 입하던 시절였으니 지금으로부터 십년전 일이다.
연분홍 살구꽃이 아파트 화단마다 화사하게 피어나 달콤한 향기가 마치 안개처럼 자욱하게 펴져나간다.
특히나 음식물쓰레기 수거통옆에 있는 살구나무는 음식물 썩는 냄새조차 희석시켜주고 있어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살구꽃이 지고 나면 살구나무에 대한 관심조차 기울여지지 않는다.솔직히.

 

대한민국의 평범한 엄마들이 모두 그렇듯이 딸아이가 제 앞가림을 어느정도 할 수 있을때까지

딸아이에게 내 인생을 걸었었다.

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딸아이에게서 해방된 민족이 되었다.
그리고 딸아이 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했던 평생프로그램 교육에 참석했다.
세계여행을 금방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일어회화를 시작으로 원어민선생이 진행하는 양질의 영어회화까지.그 날도 딸아이 학교에가서 맛만보는 회화공부를하고 집에 오니 문앞에 노오란 살구가 넘쳐나도록 담겨져있는 검은비닐봉지가 있었다.
'누가 이렇게 착한 짓을 했을까...잘 못 배달된 살구는 아닐까...혹시나 405호 슬기엄마가 놓고 간건 아닐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른 저녁 슬기엄마가 놀러 왔다.
낭구잡이 잘하는 슬기엄마가 나도 없는 사이 아파트단지 엄마들과 작당(?)하여 살구나무 서리를 하였다고한다.
물론 먼저 따는게 임자인 아파트단지 살구나무지만 낭구잡이 잘하는 슬기엄마가 얼마나 부럽기만하던지.

 

노오랗고 주홍빛도는 살구는 빛깔이 너무도 고와 보는 것만으로도 먹음직스럽지만 먹어 본 사람은 안다. 그 맛을....시고 쓰고 떨떠름한 맛에 그냥 먹을 수는 도저히 없다.

살구와 설탕을 켜켜이 넣고 살구 엑기스를 만들어도 보았지만 살구 엑기스 또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빛 좋은 개살구'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누구의 엄마로 통했던시절.

405호 슬기엄마는 사람도 착하지만 생활력또한 누구보다도 강하여 집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성질이 아니였다.
밤새토록 동대문 두타에서 일하고 새벽에 들어오는 슬기엄마.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한다고 무척이나 좋아하면서도 그 동안 정들었던 엄마들과 헤어져야한다는 아쉬움에 눈시울이 붉어지던 슬기엄마의 모습이 아련하다.

 

장마와 함께 내 곁을 찾아 왔던 살구

슬기엄마가 이사를 간 다음 해에도 연분홍 살구꽃은 피었고 살구꽃향기늪에 헤우적거리며 지쳐가는 삶을 추스렸지만
꽃향기가 사라지면 자연히 제 자리로 돌아오는 현상은 여전했다.
그러던 어느날 비가 몹시도 오고 나면 아파트 화단과 도로변에 살구가 지천으로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관심조차 기울지 않았다는 미안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낭구잡이 잘하는 슬기엄마가 있었다면 '빛 좋은 개살구' 한 보따리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물론 아파트 화단에 있는 살구나무의 살구들이 모두가 '빛 좋은 개살구'는 아니기에 달착지근하고 맛있는 살구나무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커다란 살구나무에 매달려 있는 노오란 살구는 여늬 살구보다 크고 굵다.
우산으로 살구를 겨냥하여 휙 던져본다. 왜 우산은 살구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애만 태우게 하는 것일까?
대 여섯번 살구를 향해 조준했던 우산은 제 구실도 못하고 망가지고 말었다.

그렇게 새 우산 부서지는 사고를 친 일이 어디 한 두번였겠는가.
이쯤되면 결국 살구나무에 매달린 살구 따는 일은 아예 포기하고 살구나무 아래에 떨어져

깨지고 터진 패잔병같은 살구를 주워들어도 갑자기 부자가 된 것같은 기분은 지울수가 없었다.

 

내 인생의 동반자같은 친한 친구이자 초등학교 동창생이 건너편 아파트에서 산다.
그 친구네 아파트단지에는 살구 나무가 우리 아파트단지보다 훨씬 크고 실하여
살구도 무수히 많이 열린다.
못 하는 일이 없는 친구는 살구 따는데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따기도 잘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도 좋다고 함박꽃 웃음을 지으며 맛있게 잘 먹는 친구를 보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 가득 신침이 고이는 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어른같다는 생각이 그 순간 왜 들었는지 모른다.새삼스럽게.
세상 살아가는 방식이 순수해서 더욱더 따르고 좋아했던 친구다.

 

민소득 1인당 2만불 시대 자화상

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친구를 만나 그 친구 딸아이가 결혼하여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는
그 친구 딸아이 신혼집을 갔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건너편 아파트 뜰안에 살구나무를 보았다.
파르스름하게 열매를 맺고 있는게 분명 살구였다.
"살구가 있네...살구 맞지" 딸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 기억들이 아스름하게 떠 올라

반가운 친구를 만나기로 한것처럼 기쁨에 들떠 친구에게 물어 봤지만

관심이 없다는 듯 아무말없이 시큰둥한 친구의 표정에 실망을했다.

이 친구 또한 생활력이 누구못지않아 결혼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성격은 아니였지만
십 수년 매일 매일 경쟁에 내 몰린 직장을 다니다보니 천성이 선한 사람도 환경에 변할 수 밖에

다는 가슴 아픈 현실이 상처가 된다.

어쩌면...국민소득 1인당 2만불 시대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는 가슴 저린 깨달음과 함

2013.6.23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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