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칼럼

살구나무와 재개발

NaMuRang 2010. 6. 22. 10:37

살구나무와 재개발

주말 퇴근길에 과일노점상을 지나다 노오란살구를 우연히 보았다.
살구에 대한 남다른 추억을 가지고 있어
그들이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는다.
아파트단지 화단에도 보도블럭에도
크고 작은 상처들을 입은 살구들이 무수히 떨어져
마치 패잔병처럼 오락가락하는 장마비를 대책없이 맞고있다.
가끔은 샛노랗게 익어 먹음직스러운 살구가 
눈에 띄어도 선듯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이미 '빛좋은 개살구'라는걸 충분히 경험했기때문이다.
단지 안에 있는 화단에는 살구나무 한두그루가 기본적으로 있었고
뒤 뜰에는 제법 많은 살구나무가 있었으니 
어쩌면 살구과수원 아파트촌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였으리라.
애석하게도 시중에서 파는 살구처럼 알이 굵고 달콤한 맛을 지닌
살구나무가 그리 많지 않다하더라도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용케도 제대로 된 살구맛을 즐길수 있는 살구나무를 찾아내기도한다.
설사 눈썰미가 전혀 없다하더라도
같은 아파트단지에서 몇년을 살다보니 
놀이터 뒷동 화단에 있는 살구나무는 개살구 나무가 아니라는걸
자연히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2~3층은 족히 되어보이는 울창한 살구나무에 매달린 살구를
금방이라도 딸 것처럼 겨누어 보기도 하지만 맘뿐 따기란 쉽지가 않다.
어른키 두서너배나 되는 살구나무에 매달린 노오란 살구의 유혹은
마치 에덴동산의 산악과 마냥 포기하고 돌아서는 발길을 붙잡는다.
살구를 딸만한 기다린 장대를 제 아무리 찾아 보아도 있을리가 없다.
아쉬운대로 손에 들고 있던 유일한 무기인 우산을
살구를 향해 힘껏 던져본다.
한번...두번...
삼세번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시 있는 힘껏 우산을 노오란 살구를 향해 던져본다.
엉뚱하게 설익은 살구 대여섯개가 우수수 떨어지고만다.
내가 원하던 살구는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멀쩡하게 달려있고 
망가진 우산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대패질 못하는 목수가 대패탓만 한다고 기다란 막대기가 없는걸
얼마나 아쉬워했던지....
키도 크고 한덩치하던 앞집 슬기엄마는 낭구잡이도 무척이나 잘한다.
날잡아 아파트단지 엄마들이랑 살구따기를 했는지
시고 떫은 맛에 입에 넣기만하면 인상부터 찌그러지는 개살구를 
커다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인심쓰듯 이집저집 나누어준다.
슬기엄마의 성의가 고마워
살구한켜 설탕 한켜 넣고 매실엑기스 하듯 살구엑기스도 해봤지만
맛이 영 신통찮아 빛좋은 개살수는 엑기스도 빛좋은 개살수일 수 밖에
없는나 하는 걸 깨닫는 값진 경험을 하기도했다.
대학 졸업반인 딸아이 중학교 1학년때니까
지금으로 부터 10년전 21세기가 시작되던
2000년 6월쯤 있었던 일이다.
베란다 앞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수호신처럼 나를 지켜주던 아파트에는
대추나무, 살구나무등 유실수가 있었지만
유난히 많았던건 살구나무였다.
이른봄 겨우네 추위로 메마른 아파트단지가 달콤한 살구꽃향기로
항긋하게 젖어들면  천연 아로마 요법에라도  걸린듯  
허기진 내 마음을 충분히 달래주기도 했지만
바쁜 일상은 어느새 그를 잊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장마철이 시작되는 6월 중순쯤 되면 연분홍살구꽃은 
노오란살구로 변신을 거듭하여 내 마음을 사로 잡곤했다.
그토록 애틋한 사연들이 가득하던 아파트도 
재개발이란 거대한 대세에 밀려 
뭉개지고 허물어지며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지금은 25층짜리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말었다.
물질의 풍요가 정서에 장애가 된다면
그 물질이 지속적인 발달을 한다 한들
공허함만이 더 커지지 않겠는가.....?
2010.6.22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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