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수필방

잃어버린 꿈들

NaMuRang 2009. 8. 18. 10:28

잃어버린 꿈들

노오란색으로 빨아간색으로 때론 파란색으로
곱게 단장하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아파트단지 안 
놀이터 입구에는 무궁화나무 한그루가 
보초를 서고있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 때마다 
일년 365일 계절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그는
지쳐가는 일상에 행복으로 자리매김하곤했다.
특히나 태양이 열기를 뜨겁게 내 뿜어대는 
8월에도 꽃분홍무궁화꽃이 화사하게 피어 나
초록빛나뭇잎과 더불어 먼 발치에서 보기에는
영락없이 신부 손에 나 들음직한 부케인지라.
이따금씩 그를 건너다보며
나 또한 부케를 선물로 받은양 
행복에 젖어
여름날에 무더위를 식히곤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했던가.
그토록 내 가슴을 행복으로 촘촘히 수 놓던 무궁화꽃였지만
시들어 없어지는 그가
전혀 서운하지 않았던건
뒷 마무리가 깔끔한 여인처럼
분홍꽃잎 꽃봉오리처럼 도르르말려 
똑! 떨어져버리니
어찌보면 꽃이지만 
참으로 사람보다 낫다는 감동 때문였다.
가만히 손가락으로 헤아려본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비록 낡긴했지만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꿈을 심어주던 아파트가
재건축이란 이름 아래 허물어지고
십 수년이 된 아람들이 은행나무 숲길과
토끼풀꽃이 새하얗게 덥혀있던 아파트 뜰안,
그리고 마음에 친구였던 무궁화나무는 
자취조차 없이 사라졌다.
철옹성같던 철판울타리 겉어내자 
모습을 드러낸 25층짜리 초고층아파트단지와
손바닥만한 시멘트 보도블럭이
심히 낯설기만하다.
어쩌면 나는...이미 4년 전에 
나의 소중한 꿈들이 
소멸되어버린건 아니였을까.
09.8.17
NaMu

'NaMu 수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앓이  (0) 2009.09.01
할머니랑 칠월칠석  (0) 2009.08.26
애물단지 딸의 사부곡  (0) 2009.08.06
8월에 휴가  (0) 2009.08.03
옛친구같은 그에게  (0) 200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