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수필방

아버지의 가을사랑

NaMuRang 2007. 10. 17. 18:03

아버지의 가을사랑

"감 한 박스 보낸다"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게 굵직한
아버지 음성에 한편 맘이 놓이긴하지만
지은 죄가 많은 나는 늘 죄스러울뿐이다.
감 한박스라....
과일을 과히 즐기는 편이 아니기에
'감 한박스를 어떻게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친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지만
어린시절 나에 우상은 아버님이셨다.
육척거구에 자상하시고 매사에 성실하신 아버지는
지금 생각해도 나 뿐만 아니고
모든 여자들이 선호하는 이상형이셨다.
종합정부청사 뒷편 내자동 골목에서 곱창구이를 먹고
곰탕집으로 유명했던 하동관에서 구수한 도가니탕을 먹으며
아버지와 데이트하던 시절은 성년을 갓 지낸 
20대 초반였다.
가뭄에 콩나듯이 생각나면 한번씩 있었던
아버지와의 데이트였지만 그 기억이 너무도
강렬해 영원히 지워지지않는 추억이 되버렸다.
추억의 잔재는 제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난 성년을 갓 넘긴 20대 초반이고
아버지는 40대후반 중년으로 자리매김하며
물가에 내 놓은 자식마냥 평생을 아버지 애물단지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정년 퇴임후 고향으로 낙향하시어
소일거리 삼아 농사지으신지도 벌써 십여년이
넘으시니 이제는 농군이 다 되신 아버님.
해마다 가을이 돌아오듯이
해마다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아버님께서 지으신 가을걷이를 보내주시는
정성이 고맙다기보다는 죄스럽기만하다.
늦은 밤 퇴근후 
아버님 사랑이 가득 들어있는 감 박스를 
베란다에 옮기면서 로또복권이라도 맞은양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작년에 쌀과 김장김치를 받고 나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전화조차 안 드려
"받았으면 받았다고 전화는 해야지 이녀석아"
하시던 아버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아련하여
다음부터는 전화는 꼭 드려야지하고 
맘속으로 다짐을했었다.
출근전 
아버님 핸드폰 번호를 누르자 
커러링이 먼저 반긴다.
혹시 핸드폰 번호를 잘못 누른건 
아닌가하고 의심도 해 봤지만
아버님의 굵은 음성이 수화기를 통해
흘러 나온다.
일흔여섯되신 아버님께서 '이선희'에
'인연'을 컬러링으로 넣으신걸 들으면서
아직도 아버님은 중년이신 것 같아 
괜시리 맘이 놓였다.
어느해 겨울에 
우리집에 들리셧던 아버님께서 
애아빠와 날 앉혀 놓고 
너희는 배울만큼 배운 지성인이다.
어떠한 상황이 벌어져도 지성인같이
행동하라고 말씀하셨다.
최악에 상황이 벌어졌을때도
아버님말씀을 지켜준 애아빠에게
늘 감사한다.
이제는...얼굴에 책임질 나이가 되다보니
그 말씀이 부부관계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깨달으며 일상을 보낸다.
07.10.17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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