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산행기

용봉산 눈꽃산행

NaMuRang 2005. 12. 20. 02:14

용봉산행


추위가 고문인 사람에게는 겨울산행은 감히 생각조차 못해 볼 일이다. 하지만 고문같은 추위도 즐겨보자는 알수없는 오기(?)로 추위에 잔뜩 겁 집어먹고 있는 마음을 달랬다. 처음 하는 한 겨울산행. 많은 걸 준비했다. 발목 토시같이 생긴 스펫츠,쇠갈퀴 모양에 아이젠, 방수용 장갑에 검은 색을 쓰면 영락없이 마피아 똘만이같이 보이는 안면 마스크까지. 마치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이것저것 준비를 하면서도 마음이 영편치 않았던건 순전히 추위란 녀석 때문이였다. 이른 아침 용봉산을 가기위해 개봉역으로 달구지를 날렸다. 용봉산행 버스에 오르자 마자 어김없이 찾아 온 차 멀미. 차 멀미가 무서워 멀미약 두봉지나 먹었지만 약발이 전혀 받지않고 차 멀미는 시작되었다. 속이 뒤집혀질것 같은 매스커움은 도저히 참아 내지지 않는 괴로움이다. 용봉산이 있는 홍성까지 갈일이 까마득히 꿈속 같았다. 옆에 계신 선배 산행꾼님께 인사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무조건 잠을 청해 보았다. 어찌됐건 용봉산은 가야하니까..... 차멀미와 잠이 서로 뒤엉켜 살얼음이 끼인 차창에 머리 기대고 잠을 자다보니 용봉산이 있는 홍성에 도착했다. 내 고향 마을 가까이에 있는 홍성. 평야라고 하기에는 곡창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어색하지만 넓다란 들 만큼이나 먹을게 풍족한 동네이다. 잔설이 간간이 배어있는 용봉산을 바라보며 선배 산행꾼이 하는대로 발목 토시 스펫츠를 꺼내 발목에다 끼웠다. 기다란 푸댓자리같이 생긴 스펫츠를 끼우니 마치 엄마의 손길같이 한결 포근해지는건 순전히 감싸 안았다는 느낌 때문이리라. 용의 몸집에 봉황이 머리를 얹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 거창한 이름의 용봉산(龍鳳山)은 가야산과 더불어 충남의 금강산이란 소문이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산이겠는가. 하지만 뒤늦게 약발을 받기 시작했는지 차 멀미 약기운으로 비몽사몽 산행길에 나섰다. 늘 그렇지만 처음부터 숨이 차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한발 두발 어렵게 발길을 옮기다 보니 커다란 입상불상이 있는 자그마한 암자가 나왔다. 미륵암에 있는 미륵석불 앞에서 쇠갈구리 모양의 아이젠을 꺼내 선배 산행꾼의 자상한 보살핌으로 아이젠을 발에다 끼우고 안면 마스크를 하니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같다.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산길을 오르다보니 이제는 하늘에서도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과히 불지 않아 춥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하는 생각을 하자 괜시리 기쁨이 스치듯 지나갔다. 이따금씩 산아래 마을에서 들려오는 개들이 짖는소리가 왜 그렇게 정겹게만 느껴지던지. 마치 먼 타향살이에서 지쳐 돌아온 주인집 아찌를 반기는 것 같아 멍멍이 짖는 소리가 오랫동안 잔영으로 남아 있었다. 때 맞춰 하늘에서는 선물이라도 주는듯 새하얀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내리기 시작했다. 눈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자 용봉산 정상에 닿았다. 새하얀 눈 외에는 한치의 앞도 내다 볼수가 없었지만, 정상에 수북하게 쌓인 새하얀눈은 산행꾼을 반기고 있었다. 설원의 에베르스트 정상에라도 오른듯 착각에 빠져 너나 할것 없이 산행꾼 모두가 용봉산 표지판 앞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라는♬ '굳세어라 금순아' 가요가 자꾸 떠오른는건 세찬 바람과 함께 새하얀 눈이 장난이 아니였기때문이다. 어느사이 모자사이로 흘러나온 머리끝에 새하얀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새하얀 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오후 1시가 넘어가지만 엉덩이 붙이고 마땅하게 점심 먹을 장소도 없었다. 눈 속에 잠긴 산은 어디가 길인지 조차 분간이 가질 않는다. 바람이 잠잠한 산길 한 모퉁이에서 가져 온 음식 풀어 놓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과 뒤섞어 점심식사를 했다. 이미 눈산행에 익숙한 선배 산행꾼들은 버너를 켜고 김치찌게도 만들고 했지만 손이 고바 더 이상은 장갑에서 손 꺼내기 조차 부담스러워 김이 모락모락나는 얼큰한 김치찌게를 먼 발치에서 눈요기만하고 다시 산행길에 나섰다. 세찬 눈보라가 제 아무리 기세 좋게 휘몰아쳐도 움직이면 다시 땀도 배고 따뜻해 진다는 것을 계속 쉼없는 산행을 통해 깨달았다. 마치 우리네 인생에서 추위가 시련이라면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을 하는 가운데 성취감도 얻고 그 보상으로 풍요도 가져다 주듯이... 키가 훌쩍하니 큰 철쭉 군락지에 새하얀 눈이 쌓이자 마치 새하얀 목화꽃들이 앙증맞게 활짝 피어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겨우네 홀로 지낼 철쭉들을 위해 새하얀 눈이 그들에게 눈꽃을 만들어 주는건 아닐런지. 그들의 새하얀 아름다움이 돋보여 그냥 지날칠수는 없었다. 과히 높지는 않은 산였지만 용봉산을 거쳐 수암산자락에 이르자 산이 높고 낮음을 떠나 산행 시간은 한없이 길어졌다. 내리는 눈속에 파묻혀 산행은 계속 되었고 앞선 산행꾼이 지나가도 금방 눈이 수북히 쌓여 새길을 만들어 지곤했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새하얀 눈밭위에 하얀 영혼이 스며들도록 깊숙이 내 발자욱 만들어 놓으며 용봉산행 끝없이 이어졌다. 끝이 보일 것같지 않던 눈꽃산행도 저만치에서 마을이 언뜻언뜻 보이자 산행은 끝이나고 말었다. 마지막은 언제나 처럼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개인적으로 금년도 마지막 산행이라 이름 붙여 본 용봉산행은 차 멀미로 집에 올때까지 고생은 했지만, 세찬 눈보라속에 산행은 하기힘든 경험으로 오랫동안 기억속에 지워지지 않으리라. 용봉산행 긴 방황끝에 찾아 온 고향 산천같은 용봉산. 멍멍이가 먼저 알고 멀리서 인사를 보낸다. 소담스럽게 내리던 함박눈은 철지난 철쭉 군락지에도 사뿐히 내려앉아 앙증맞은 눈꽃으로 피어났다. 세찬 눈보라가 휘몰아치더니 순식간에 산속은 새하얀 눈밭으로 변해버렸다. 새하얀 눈밭위에 내 발자욱 깊숙이 새기며 하얀 영혼으로 투영되 존재하기를.....!! 05.12.19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