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그것은 분명 봄 바람였다.
마음이 심하게 흔들린다.
'그래 어디라고 가보는 거야'
'어디를...' 갑자기 막연해진다.
"어디를 갈까?"
봄바람에게 슬쩍 물어보았지만 무심하게 지나갔다.
'어디가 좋을까...."
'아! 그래 나한테는 산이 있었어'
갑자기 어두워지던 마음이 아침햇살처럼 밝게 빛난다.
그래 산이 있었어....
관악산행
춘분도 지나 이제는 봄이 서서히 무르익어
가는 계절 3월 셋째 주말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관악산으로 산행이 있는 날입니다.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에는 적어도 20~30명 산우님들과 산행을 했었지만,
산행에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오늘 산행에는 5명의 산우님과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도 감사하여
할 줄 모르는 반찬도 정성 들여 준비한 점심을 단단히 챙겨 넣은
배낭을 둘러메고 신바람이 나서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아침햇살이 어깨동무하며 반갑게 인사하여
나도 모르게 활짝 웃으며 동참하자고 화답했습니다.
주말이지만 왠지 분주한 것 같은 거리풍경에 봄날의 흥겨움을 즐기면서
산우님들이 기다리는 낙성대역으로 갔습니다.
몇 달 만에 뵙는 산우님들과 안부인사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마을버스를 탔습니다.
차장너머로 노란 개나리가 다가옵니다.
올해 처음 보는 개나리는 무리 지어 많이도 피어있습니다.
저렇게 많은 개나리가 피도록 나는 무얼 했는지 내 곁에 봄이 왔다는 걸
새삼 확인하면서도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연구소들을 순례하던 마을버스가 건설환경종합
연구소에 도착하자 우리는 내렸습니다.
자운암 능선길에서 만난 진달래.
나지막한 언덕길을 따라가면서 저 멀리 산꼭대기에 우뚝 서있는
방송국 송신탑과 기상청 레이더가 보이고 우리가 오늘 가야 할 최종 목적지도 있습니다.
너무도 멀고 아득하여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살짝 의심했지만
애써 지워버리며 부지런히 산우님들을 따라갔습니다.
자운암 능선 600m라는 나무표시판이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합니다.
관악산행 코스 중에서 가장 빠르게 연주대까지 갈 수 있는
자운암 코스이지만 기암괴석들이 잔치를 치르는 코스라서 산행하는
내내 바위와 친숙해지는 작업 또한 만만하지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했습니다.
연분홍 진달래가 가느다란 가지에 매달려 우리들에게 관악산의 봄을 선보입니다.
연분홍 명주옷을 소박하게 차려입고 스치는 봄바람에도 나긋나긋 인사하며 따라오는
그들의 자태에 마음이 온통 빼앗겨 나도 모르게 속삭입니다.
"산행을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코로나19가 터지고 삼 년 만에 관악산에서 만난 그들은
이제 막 봄의 향연을 시작하고 있어 산행을 하러 온 건지
그들을 보러 온 건지 순간순간 헷갈리며 쉼 없이 바위길을 올라갔습니다.
기암괴석의 잔치마당 자운암 능선.
연주대 800m라는 자그마한 표지판이 숲길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돌로 만든 자그마한 표지판였지만 반전의 효과는 파괴력이 엄청났습니다.
뽀쪽 뽀쪽 솟아 오른 기암괴석들은 우리가 올라가는 것을 사력을 다해 거부하고 있어
암벽등산이 따로 없다는 것을 눈앞에 훤히 보여줍니다.
그들을 살살 달래면서 로프를 잡고 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철재난간을 잡고 올라가기도 했지만 제일 위험한 산 길는 커다란 바위를
바위 앞에 자그마하게 붙어있는 바위를 계단처럼 밟고 내려간다던가
두 손으로 붙잡고 올라간다던가 하는 바위 길였습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담대함으로 중무장하여 서두르지 않고
무사히 자운암 국기봉까지 올라왔습니다.
관악산에는 11개의 국기봉이 있다고 합니다.
드디어 연주대가 한 손으로 잡힐 듯 눈앞에 들어옵니다.
미세먼지가 자욱하여 가시거리가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한강과 서울시가 풍경이 발아래 펼쳐져 있습니다.
오늘에 최종 목적지 연주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이제는 좀 더 침착하게 연주대를 향하여 성이 있은 대로
나 있는 크고 작은 뽀쪽 바위들을 살살 달래면서
순간 방심하고 자칫 발을 헛디뎠다가나는 대형사고는
평생 산행을 못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다 보니
조심조심 쇠난간을 잡고 암릉을 올라갔습니다.
젊은이의 특권이 빛나던 관악산 정상
629m라고 쓰여있는 관악산 정상바위가 보입니다.
관악산역 코스, 자운암 능선코스, 과천 2코스, 사당역코스,
팔봉코스, 안양코스에서 모인 등산객들로 관악산 정상은 수백 명이 모인 것 같습니다.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해 모인 등산객의 줄은 끝이 없이 이어져
인증샷 찍는데 한 시간 이상 걸린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같지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그 많은 등산객의 80%~90% 정도가 젊은이라는 거였습니다.
출퇴근길 신도림 전철역을 지나가는 것처럼 젊은 등산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관악산 정상에서 계단을 내려오면서 관악산을 생각했습니다.
갓을 쓰고 있는 모습하여 冠岳山이라 불리는 관악산은
고려 강감찬(948~1031) 장군이 태어난 동네이고
고려 이전에는 신라 의상대사가 677년 관악사와 의상대를 창건하였지만
조선시대 관악사는 연주암, 의상대는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한성이 도읍이 되고 나서 북한산, 남한산과 함께
한성분지를 둘러싼 자연 성벽으로 오늘날까지 자연 요새로써의
막중한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암릉이 산을 이루고 있어 산행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젊은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오늘에 관악산 정상 풍경을 보면서
젊음의 도전은 위험천만도 즐길 줄 아는 특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023년 3월 25일
NaMu
에필로그:
하산길 파이프능선 또한 바위들이 심상치 않게
험악했지만 무사히 내려와서 사당역으로 가는
산길에서 반들반들한 나뭇가지에
미끄러져 살짝 넘어졌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럽니다.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나가서도 샌다고'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고 산행을 한다 해도
급한 성격은 어쩔 수가 없어 이번에는
두발이 서로 걸려 쿵하고 넘어졌습니다.
창피해서 재빨리 일어났지만 손바닥도 긁히고
문제는 무릎에 먼지가 안 털리고 축축하게 묻어있었습니다.
분명 피가 흐르고 있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모른척하고
바위뿐인 산행에서 바위에 안 넘어지고 흙에 넘어진 것은
나의 영원한 보호자이신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감사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