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유린이 따로 있는건 아니다.
무심히도 사라져가는 '계절의 여왕 5월'이 분명 서운해서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한 두방울 비는 뿌린다.우산을 쓸까 말까 잠시 망설여지던 5월 마지막 주 일요일날 서울영아일시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이 있었다.
역심역 출구를 나서자 세찬바람에 놀란 가로수 나뭇잎들이 미친듯이 흔들리고있다.
음산한 하늘에서 내리는 한 두방울의 비를 맞으며 부지런히(?) 영아원(서울영아일시보호소)으로 갔다.
영아원 정문 앞에 의자를 내 놓고 앉아 계신 경비아저씨가 반가워 정답게 인사를 했다.
머리 속이 휜히 보이는 얼마남지 않은 경비아저씨 하얀머리를 보면서 늙어가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영아원 드나들고 나서 처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잠시 해 보게 되었다.
2010년 1월 서울영아일시보호소에 봉사활동 왔을 때만해도 신생아들이 있는 사슴방을 비롯하여
5개 방에 영.유아 40~50명이 21명의 보육사선생님 보살핌속에 생활을 했었지만, 지금은 신생아방을 비롯하여 3개 방에서 20명 남짓 영아가 있다.
지역이 강남이라서 그랬는지 2010년만 해도 유난히 연예인들이 많이 다녀 유명 연예인 사진들이
정문 벽에 즐비하게 붙어 있는 서울영아일시보호소가 지금은 마치 경비아저씨처럼 노쇠한 이유가 무엇일까?
갑자기 우리나라가 금욕주의에 물들어 성문화가 시들해져 미혼모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없는데 말이다.
불과 5년만에 70% 이상 축소가 된 것은 후원회비로 운영을 하는 시설이다보니 후원회비 저조가 정설일 가능성이 첫 번째 이유라고 한다.
언젠가 박근혜 대통령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까지 정문 벽에 붙어 있던 영아원에서 후원회비가 모자라서 대폭 축소한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가장 조바심을 쳤던 건 이전보다 더 착한 대안도 없이
혹시나 불우한 환경에 소외된 우리의 아기들이 이 정도의 시설에서 조차 생활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 모두가 인권유린 하는건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서다.
만병통치약의 재 발견.
언제나처럼 다람쥐방으로 올라갔다.
다람쥐방에 들어가자마자 우유 먹는 아기가 있나하고 아기들 침대부터 둘러봤다.
제법 많은 양의 우유가 들어 있는 아기 침대로 갔다. 아기 우유 병을 들고 가만히 우유병 아래를 톡톡 쳐주자 설핏 잠들어 있던 아기가 놀라 우유병젖꼭지를 빨기 시작한다.
먹는 속도는 느렸지만 잊지않고 먹는 아기가 기특하여 다 먹기를 학수고대하며 눈을 떳다 감었다 하는 아기를 불안하게 바라본다. 아기가 깨고 나면 우유를 안 먹을거란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우유병 바닥에 우유가 깔려 있을 무렵 아기는 눈을 번쩍 뜨고 손발을 사방으로 휘저으며 먹기를 거부한다.아기 침대에 있는 큰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아기를 안고 트림을 시켜본다.트림을 하고 나면 분명 먹을거란 희망을 안고.아기 등을 토닥토닥 거리자 가래 끓는 소리가 손바닥에도 느껴진다. '감기가 심하게 걸렸구나'나도 모르게 아기 등을 쉼없이 토닥토닥 거렸다.
남은 우유를 먹여야겠다는 불타는 신념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아기를 옆으로 안고 우유병 젖꼭지를 아기 입에 다 넣어주자 먹을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리라 다짐을 해보며 우유병을 사알짝 흔들어봤다.
아기가 반응을 보이면서 먹는 시늉을 했지만 우유병 젖꼭지를 빨지는 않는다. 그러거나말거나 다시 한 번 시도.여전히 먹기 싫어하던 아기가 드디어는 삐죽삐죽 울기 시작한다.아주 조금 남었는데 서 너번 쭉쭉 빨면 다 먹을 것 같은데 그걸 못하다니 시윤아! 우는 아기를 달래면서 눈길은 우유병에서 떨어지지가 않는다. 여전히.
가래를 심하게 끓던 아기가 기침을 한다. 먹은 것을 조금씩 토하기도 하면서.
많이 아프구나. 한 잠 자고 나면 나을거야.
아기를 포근히 안고 잠들기를 기다려본다.
40cm도 채 안 되보이는 인형같은 아기가 자지러지게 운다.
너무 심하게 울어 혹시나 아픈건 아닌가하고 봉사활동 친구들이 모여들지만
보모선생은 별일 아니라는 듯 아기들이 먹은 우유병을 모아 놓은 소꾸리를 들고 나간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싶어 보모선생이 서운하기만하고 아기를 안고 있는 봉사활동 친구는 처음 왔는데 무척이나 당황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프지 않고는 이렇게 울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들 모두가 급 동감을 하면서 아기 보는데는 도사급은 사강 고문님을 불렀다.
얼굴이 샛빨갛게 변하여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듯 자지러지던 아기를 사강 고문님께서 양손 위에 누위 놓고 서성거리시니 아기가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치고 말뚱말뚱 쳐다본다.
세상에 이런일이...아기가 아프지 않았다는게 마음이 턱 놓여 우리 모두가 웃었지만
어떻게 거짓말처럼 이런 일어 날 수 있는지.
미소는 우리네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존재가치를 분명히 한다.
보모선생이 미소가 아무리 울어도 모른척하고 나간 이유가 충분이 있었다.
그나저나 처음 봉사활동 왔던 동그란 눈이 선하게 생긴 친구는 호된 신고식을 치렸다.
어쩌면 까만 머리가 유난히 풍성한 미소는 품안에 안겨 있을 기회가 적어 습관이 들지 않아
사강 고문님께서 하신 것처럼 양손 위에 뉘어 있는 것이 더 좋은 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생후 두어 달이 갓 지난 아기에 불과하니까.
방배동 성당과 맺은 인연의 끈
오늘도 방배동 성당에서 오신 봉사활동 친구들이 아기방을 청소 하신다.
매달 오시는 분들이 바뀌긴하지만 잊지않고 오시기에 눈인사조차 제데로 하지 못해도
고마운 마음을 이루 표현 할 길이 없다.
한 분은 진공청소기로 구석구석 먼지를 잡아 내시고 또 한 분은 걸레질을 하시면서 안 해본 일을
하시는지 서툴고 쑥스러워하신다.청소를 하시면서도 틈틈히 아기들 보시면서 연신 웃음꽃을 피신다. 청소를 말끔히 끝내고 신생아방으로 가시는 그 분들을 보면서 언제까지고 영아원 봉사활동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주었던 실타래만 한데.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아기들
곤하게 잠든 시윤이를 침대에 눕히고 양옆에 커튼까지 드리워진 제법 값나가는 그네에
장군처럼 의젓하게 앉아 있던 동원이를 안았다.
몇 달전 까지만 해도 다람쥐방은 4개월 이상 아기들이 생활했던 최고참 방였지만
지금은 2~3개월 아기들이 있다. 동원이는 생후 2014년 2월 20일생으로 지금 다람쥐방에서 왕형님이시다.아기를 안고 뒤집기를 시켜볼까 생각을 해 봤지만 아기가 잠이 오는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얼굴을 내 가슴에 쉼없이 비빈다. 오른편에 아기를 안고 왼손으로 아기 등을 토닥토닥하지만 불편한지 얼굴이 빨개지도록 비벼댄다. 안되겠다 싶어 왼편으로 아기를 안자 아기 가슴과 내 가슴이 서로 맞닿아 심장소리를 제데로 들을 수가 있었다. 왼쪽 어깨가 아퍼서 되로독이면 오른쪽을 이용하고 싶었는 데 왼편으로만 안아 버릇해서 오른쪽으로 안은 아기가 불편했나보다.
아기등을 토닥토닥거리자 아기가 슬며시 잠이 들어간다.
새근새근 잠들어가는 아기를 보면서 '피를 먹고 민주주의가 자란다'는 말이 갑자기 왜 생각 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육신의 아픔조차도 감내해야하는 고통의 작업은 아닌가 싶은
생뚱 맞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어깨가 아프니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아기들 목욕을 시키는 시간이라 아무래도 어수선한 방 분위기때문에 깊은 잠에 들지 못한
동원이는 가끔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기도한다. 그래 오늘 만큼은 내 가슴 속에서 포근하게 잠을 자라고 아기를 오랫동안 안아 주었다. 목욕을 시키는 순간까지.
목욕을 끝내 멀끔한 신사가 된 동원이를 안아주면서 아기와 이별할 순간이 다가 오는 걸 느낀다.
"동원아 아프지 말고 잘 자라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찬란한 미래가 내 앞에 펼쳐져있거든."
2014.5.25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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