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저물어가는 어느날 도봉산행
"어쩜 저렇게....!"
그 빛의 찬란함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왔던 감탄마져
잊어버리고 말었다.
빨알간 단풍잎이 도봉산 자락을
샛빨갛게 수 놓았던 그 해(2005년 10월30일)를
이따금씩 떠 올리며
가을비로 무거워지는 마음을 추스리던 주말.
무심하게 내리던 가을비를 향해
내 계획에는 우중산행이 없다고
은근 슬쩍 협박(?)을 하면서도
싱긋 미소를 지어봤다.
주일날 이른 아침,
단풍잎으로 샛빨갛게 물들어버린 도봉산자락에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며 베란다 창가로 간다.
비는 그쳤지만 여차하면
한바탕 쏟아 부을 듯
하늘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비구름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만 보았지
우중산행 준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도봉산 전철역으로 부리나케 서두른다.
한달 혹은 두어달, 많게는 일년만에 만나는
산우님들과 함께 반가움에 안부인사를
주고 받으며 도봉산 숲길로 향한다.
그 흔한 나뭇잎 몽땅 털어버리고
빈 몸으로 앙상한 나뭇가지
숨김없이 드려내놓은 나무들을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잊어버렸다.
무참히 무너져버린 내 기대에
실망보다는 왜 자꾸 미소가 나오는지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가을이다 싶었는데
어느사이 흘쩍 떠나버린 가을이
마치 100M 단거리 선수같다.
대자연에도 속전속결주의가
깊숙히 침투하여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뭔가를 잃어버린 듯 안타까운 마음을
털쳐버릴 수는 없었다.
너도나도 누우렇게 변해버린 나뭇잎이
물기조차 없이 바싹 메말라 바스라질듯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어
그게 단풍나무인지, 참나무인지를
한참이나 눈여겨 봐야만
그 소속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다행이도 간밤에 다녀갔던 가을비가
흔적을 남겨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나무들을 이따금씩 쓰다듬으며
한결 부드러워진 마음으로
쉬엄쉬엄 산등성이에 올라선다.
갈라진 바위사이에서 자라난
어린 떡갈나무가 메마른 나뭇잎 풍성하게
매달고 늦가을에 정취를 마음껏 뽐내고있다.
이미 제 빛을 잃어버린 나뭇잎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예쁜 몸짓을 가슴 가득 담아보며
안개가 마치 연기처럼 뿌엿게 피어오르는
숲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가끔은 안개들도 이미 나무잎조차 자취를 감춘
메마른 나뭇가지 끝에
수정같이 투명한 물방울로 매달려 흔적 남기는
안개 짙은 숲속 풍경에 흠뻑 젖어들어
'카멜롯의 전설'을 다시 쓴다.
비록 '란셀롯'의 기사는 없어도
대자연이 그 자리 매김을 해준다고......
하산길 잠시 비켜가는 햇살에
제 모습을 잠깐 비치며
그 위용을 자랑하던 만장봉과 선인봉 그리고 오봉이
손만 뻗히면 잡힐 듯 눈 앞에 펼쳐진다.
웅장한듯 신비스런 기운을 가득 머금은 그들의 자태는
도봉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듯 싶어
한동안 그 자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도봉산 중턱쯤에 있는 망월사.
뒷편 스님들의 도를 닦는 암자인지
일자형의 사찰에 문은 굳게 닫혀있다.
굵은 쇠로 만든 울타리가
더욱더 마음에 문을 꼭 닫게 만들지만,
가을 정취가 묻어있는 사찰 풍경이 발길을 잡아
쇠로 만든 울타리에 기대서서 생각에 잠겨본다.
왕실에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했다는 사찰.
얼마나 많은 민초들의 희생으로
그 절이 탄생했을까하는 아린 가슴은
과연 종교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회의를 잠시 가져보았다.
에필로그:
단풍산행을 왔던 산행꾼들을 그냥 보내기에는
차마 안 되었던지 빨갛게 단장을한 단풍나무를
드디어 만날 수가 있었다.
그 수가 많지는 안했지만
하산길 이따금씩 마주쳤던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그들의 몸짓에 반해
발길을 멈칫하며 사진 한장 찍어내는 호기도 부려본다.
도봉산에 가을단풍
눈이 부시도록 빠알갛게 단장을 한 그대여.
숨겨지지 않는 그대의 정열에
흔들리는 내 마음.
가만히 내민 손길.
흥건히 젖어들어
피할 길 없는
이 환희.
09.11.1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