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산행기

관악산행

NaMuRang 2025. 5. 21. 08:02

우연히 아파트 철재 울타리에 얼굴을 내민 붉은 덩굴장미를 보았다.

깜짝 놀라며 가만히 속삭였다.

"소리 소문도 없이 어쩜 이럴 수가 있는 거니?"

붉은 덩굴장미는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계절의 여왕 5월이라고 한다.

"아 그렇구나!"

5월도 벌써 중순을 넘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다 가기 전에 뭐라도 해보는 거야

후회 없이...

뭘 해야 하나 망설이며 멍하니 덩굴장미만 바라보았다.

힘 없이 돌아서는 순간 번개처럼 떠 올랐다.

그래! 나에게는 산행이 있었어 후회 없는 인생사를 살게 해 주는.

 

5월 둘째 주 토요일은 우리 동네에서 손쉽게 갈 수 있는 관악산행이 있는 날이다.

금요일은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것도 모자라서 호우주의보까지 내렸다.

무심히 내리는 비가 야속하기는 했지만 어쩌겠어

조바심치며 기다리지는 않기로 했다.

이른 아침 창문으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을 반갑게

맞이하며 산행준비로 부산했다.

오랜만에 등산배낭을 메고 발걸음도 상쾌하게

아파트 울타리 붉은 덩굴장미를 일부러 만나 산행한다고

자랑질도 잊지 않으며 지하철 역으로 갔다.

낙성대역에서 오랜만에 뵙는 산우님들과 마을버스를 탔다.

차 창문 너머로 아카시아 꽃이 마치 포도송이처럼 

커다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가까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아... 아카시아 꽃향기가 휘날리는 계절이 왔구나.

서울대 연구소들을 순례하던 마을버스가 건축환경종합연구소

정류장에 왔을 때 산우님들을 따라 내렸다.

 

서울대 건축환경종합연구소 건너편 숲길에 들어서자

아직은 연둣빛 나뭇잎들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새봄에 새순이 자라 마치 꽃잎처럼 고운빛으로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나뭇잎을 천만다행 볼 수 있어 

찬찬히 그들과 눈맞춤하며 산길을 올라갔다.

오랜만에 산행이라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았지만

모른척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자운암 능선길 600m라는 나무표시판이 보인다.

친절한 나무표시판이 가르쳐준 데로 숲길을 올라가자

자운암 능선길의 가장 큰 특징인 암릉이 나타났다.

과히 높지 않고 까다롭지 않은 바윗길을 올라가자

이번에는 보란 듯이 깎아지는 암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일을 저지를 것 같은 사춘기 중2소년 다루듯

조심조심 차분하게 바윗길을 올라갔다.

숨도 차고 등줄기로 땀이 흘렸지만 들머리에서 산행할 때보다

산행은 훨씬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윗길을 올라가자 자그마한 소나무들이

노란 송홧가루를 한껏 머금어 살짝 스치기만 해도 터질 듯 위태롭다.

어린 시절 송홧가루를 꿀에 버무려 송화다식을 먹었던 기억밖에 없는

송화가 이렇듯 예쁘게 다가오는 건 나이가 주는 선물인 듯싶어 

소나무 가득 피어난 송화에 눈길이 거두어지지가 않았다.

간밤에 온 비로 바위들 사이에 빗물이 고여있고

축축하게 젖어있어 대형사고가 시시때때로 위협하지만,

차분하게 달래면서 올라가자 자운암 능선길에서

가장 잘 알려진 토끼바위를 만났다.

언뜻 보아도 눈은 영락없이 토끼 눈이라

"눈 좀 보세요 토끼 눈도 있어요"

나도 모르게 신기해서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관악산행에서 짧게 산행을 즐기면서도 

산행을 하면서 가장 조망을 잘할 수 있는 코스가 자운암능선 코스라고 한다.

물론 전구간이 바윗길이라 위험하긴 해도

바위산행에 거부감이 없다면 안성맞춤이다.

 

대자연의 풍화작용으로 거대한 바위들의 천연조각작품에 앉자 

2025년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특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흔한 천연자원 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아파트 숲과 빌딩 숲으로 이렇듯 눈부신 발전을 하다니....

갑자기 울컥해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바윗길 꼭대기에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린다.

관악산에는 11개의 극기봉이 있는데 그중 하나이다.

쉬엄쉬엄 극기봉에 올라가자 젊은 애들이

태극기 깃대를 붙들고 인증숏 찍기가 한창였다.

패기 넘치는 웃음을 5월 하늘 아래 마음껏 펼치는

그들의 모습에는 우리들의 앞날에 왠지 모를 희망이 가득 차있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쩌면.... 나에게는 인생숏이 될지 모르는 태극기 깃대봉에서

젊은이들처럼 따라쟁이도 해 보았다.

 

바위 타고 줄기차게 올라왔으니 이제는 내리막길이다.

바위에 매달려있는 밧줄을 붙잡고 제 멋에 겨운

크고 작은 바위에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내려와

자운암 능선길의 마지막 바윗길을 올라갔다.

글러브 바위가 자운암 바윗길 1.7km 산행한 것을 축하해 주고 있다.

무사히 산행한 것에 감사하며 관악산 정상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두 줄로 빼곡히 나있는 초록빛 이파리 아래로 새하얀 방울꽃이 매달려있다.

이파리 아래 매달린 새하얀 방울꽃이 마냥 수줍어했다.

둥굴레 꽃이라고 한다.

뿌리는 우리가 흔히 차로 애용하는데 그 구수한 맛이란 타의 추종을 불가하여.

이파리 아래 숨어있듯 수줍게 매달려있는 새하얀 방울꽃에

뿌리는 구수한 차라니 둥굴레의 반전 미학이 새삼스러워

철재로 만든 바윗길 펜스 아래 고즈넉 히 피어있는 둥굴레 꽃이

마치 마음에 꼭 맞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설레임이 가득했다.

 

가파른 오르막 바윗길에 박혀있는 철재 펜스를 붙잡고 쉬엄쉬엄 올라가서 이번에는 

나무 데크 계단을 또 올라가면 관악산 정상 바위가 드디어 제 모습을 보인다.

해발 632m 관악산 주봉을 연주대라고 한다.

관악산 자락을 과천과 안양 사당이 자리 잡고 있어

다양한 코스로 산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정상까지 바위로 형성되어 있어 경기 5 악산 중에 하나이다.

주말에는 정상석에서 인증숏을 찍기 위해 모여든

등산객들로 언제나 줄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실로 오랜만에 정상석 아래에 있는 전각 응진전도 들렀다.

초파일이 지난 지가 얼마 안 되어서 인지 

9평짜리 전각 마당에는 등불이 가득하여

하늘도 보이지가 않는다.

불교에는 문외한이라 절하는 방법도 모르는데

같이 산행한 산우님께서 세 번 절을 하는 거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신다.

깎아지른 절벽에 전각을 왜 세운 것일까?

억불정책을 선택했던 조선에서도 태조는 응진전에서 

호국불교를 했다고 한다면 인간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미약하기에

종교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보다.

 

하산길은 관악산 전채를 조망하면서 갈 수 있어

조망권이 탁월한 파이프능선 길로 내려왔다.

들머리 자운암능선 길보다 오히려

더 위험한 구간이 많고 길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최대한 가볍게 산행하자고

순간순간 마음을 추스르며 들머리 자운암능선 

길에서 날머리 파이프능선까지 7km를

쉬엄쉬엄 5시간 30분만 끝냈다.

얼음장같이 차가워 발을 넣는 순간 얼얼하던

계곡물에 올해 처음 족탕까지 하면서.

2025.5.17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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