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터지고 햇수로 3년이 되어간다.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인류 문명의 발전(?)에는 농사를 생업으로 하여
생활환경이 양호한 지역에 민족이 가축을 매개로 하여 발생한 균에 면역이 되어
농경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지역을 점령할 때 균이 종족을 초토화시켜
멸망의 지름길로 인도했다고 일찍이 진단하였지만,
글로벌 시대를 자부하는 현대문명에서는 균이 종족을 초토화시키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입 가리게 이름하여 마스크를 장식품처럼 쓰고 다니며
내 형제가 내 이웃이 친지가 코로나19에 걸리고 낫는 게 다반사인지라
처음처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코로나19가 먼발치에서 호시탐탐 우리의 삶을 엿보며 기회를 노린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점차적으로 되찾아가며 조심 아닌 조심을 하고 있다.
조석으로 가을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늦더위조차 존재감을 상실하며
일찍이 가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 축제의 백미 추석이 유난히도 빠르게 찾아와
마치 번갯불에 콩 튀기듯 후다닥 지나갔다.
이제는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 개봉 박두했다.
내 중년의 방황을 잠재워주며 찬란하게 수놓았던 산행은 어쩌면 인생의 동반자이기에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처럼 자주 가지는 못 한다 할지라도
산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게 된다.
우면산행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9월 둘째 주 수요일은 우면산행이 있는 날입니다.
오랜만에 산행이다 보니 소풍 가는 아이처럼 밤잠을 설치고
첫새벽 하늘부터 살펴봅니다.
잿빛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해맑은 하늘이 우중산행은 아니라고
살짝 귀띔하고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화답을 했습니다.
점심을 지참하지 않는 산행은 준비사항 또한 간단하여 한결
가벼워진 배낭을 짊어집니다.
길거리 화단에 가득한 분홍바늘꽃이 일렬종대로 서서 스치는 바람에도
군무를 추며 오랜만에 하는 산행을 축하해주고 있어 나도 모르게 활짝 웃으며 안전 산행하겠다고
무언의 약속을 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지하철 역으로 쏜살같이 갔습니다.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는 오늘 우면산행을 같이 할 산우님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나이에 어울리는 않게 낯을 많이 가려 산우님들께
인사도 못하고 꿰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산우님들 뒤를 졸랑졸랑 따라 신호등을 건너갔습니다.
서초 우면 숲길이란 커다란 입간판이 왼쪽으로 있고 오른쪽에는 예술의 전당이라는
나무로 만든 화살표가 있어 혹시나 하고 오른쪽을 보았지만,
나무들에 가려 예술의 전당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내한하여 연주하는 이 가을과 꼭 맞는 비발디의 가을을 듣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면산 들머리 서초 우면 숲길에 들어서자 시멘트로 곱게 포장한 이름하여
산길 고속도로와 오른쪽으로는 정비가 잘 되어있는 수로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수로 옆에 무성하게 자란 수풀 사이로 쪽빛 달개비 꽃들이 수줍은 듯 살포시 고개를 숙인 채
점점이 흩어져있어 아득히 먼 어린 시절 논두렁을 쪽빛으로 수놓았던 그 달개비 꽃과 왜 이리도 흡사하던지.
한동안 눈 맞춤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우면산의 또 다른 깊이를 잘 알고 계신 다니엘 대장님은 산길 고속도로 시멘트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습니다.
시멘트 숲길을 뒤로하고 마치 단무지처럼 미끈하게
위로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은 노송나무 숲길로 내려갑니다.
쭉쭉 가볍게는 내려가지만 혹시나 내려 간만큼 올라가는
산에서 흔히 있은 시소게임은 아닐까 의심을 하면서도
기나란 솔잎이 카펫을 깔아 놓은 숲길을 걷는다는 기쁨에 잠시 잊었습니다.
제법 가파른 숲길이 이어집니다. 역시 시소게임였지만 우면산이 해발 293m 뒷동산이란
사전 지식은 산행을 여유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숲 길에 수북수북 쌓인 솔가루 위에 노르스름한 잣송이가 똑 떨어졌습니다.
아! 노송나무 숲이 아니고 잣나무 숲입니다.
어쩐지 소나무치고는 너무 미끈하고 키만 훌쩍 크다 싶더니
햇 잣송이가 우면산을 찾은 우리에게 첫선을 보이며 풍요로운 가을이라고 합니다.
쉬엄쉬엄 오르지만 산은 산이기에 제법 가파른 잣나무 숲길을 올라서자 능선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이제는 몸이 풀리면서 산행에 조금씩 속도가 붙었습니다.
커다란 나무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서서 나뭇가지로 받들어 총을 하던 능선길 끝에는
가파른 나무계단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바로 옆 샛길을 선택하는 탁월한 선구안이 있었습니다.
도토리와 상수리가 숲길 여기저기에 패잔병처럼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나 딩굴고 있어
참나무 숲길이라는 것을 굳이 말을 안 해도 이미 알고 말았습니다.
바람이.... 가을바람이 참나무 넓은 잎을 스치며 지나가자
나뭇잎들이 깜짝 놀라 큰소리로 노래를 합니다. 가을이 왔다고.
수풀 속에서 작은 소리로 풀벌레들이 화답하자 저 멀리서 이름 모를 새들도 가냘프게 노래합니다.
가을을 찬양하는 그들의 노래에 흠뻑 빠져들어 일상에 지친
심신을 위로 받았습니다.
이제는 피할 수 없는 나무계단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과히 가파르지 않은 계단이지만 계단은 힘을 요구합니다.
천천히 그리고 힘들지 않다고 최면을 걸면서 올라갑니다.
저 멀리 나무들 사이로 장독을 엎어놓은 것 같은 돌탑이 언뜻언뜻 보입니다.
오늘에 최종 목적지 소망탑입니다.
등산객들이 자신의 소망을 간구하면서 소망탑 주위를 도는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산세가 소가 배를 깔고 앉은 모양이라 '우면산'이라 부르는
우면산은 해발 293m로 서초구의 뒷동산이지만 산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오늘처럼 가파르지 않으면서도 우면산의 깊은 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020년 6월 어느 날 코로나19가 주춤하는 사이 막간을 이용하여 소망탑에 왔습니다.
그때는 코로나19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간절하게 소망하며
돌멩이를 소망탑에 올려놓려 놓았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코로나19를 살살 달래면서 같이 갈 수 있는
인내를 소망하며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소망탑에서
두려움과 고통을 주는 코로나19여
사량의 유통기한도 3년이거늘
미움에 유통기한은 그 언제이던가
소망탑에 조약돌 하나 얹어 놓고 간구하노니
인내에 한계를 시험하지 마소서
2022.9.14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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