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만 앙상하던 가로수들도 연두빛 새옷을 입었다.
싱그러움을 자랑하는 그들의 모습에 시선이 거두어지지가 않는다.
바람이 분다.
메마른 내 가슴에도 설레임으로 흔들린다.
퇴근길, 정원수로 잘 다듬어진 사철나무가 쌉싸롬한 향기로 지친 내 영혼을 다독인다.
그들의 예쁜짓에 가슴 가득 사철나무 향기로 채우며 가만히 속삭여본다.
"학수고대하며 봄을 기다린 이유가 있는거야"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일었지만 참았다.
솔잎혹파리의 무차별 공격에 몸살을 앓던 갑장산
봄이 온통 마음과 영혼을 어지럽히던 '계절의 여왕 5월'
상주에 있는 갑장산으로 정기산행이 있었다.
민폐 끼치지않고 잘 해 낼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의심은 산행을 하기로 결정을 한 날부터 시작되었다. 언제나 산행은 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시험의 무대다.
시험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고 쉽게 볼 수 있을까 싶어 인터넷 일기예보를 수시로 컨닝을 했다.
우중산행이 아니라서 한시름 놓으며 가볍게 등산배낭을 챙겼다.
수다쟁이 참새들조차 늦잠이 들었던 이른아침 갑장산행 버스가 있는 사당동으로 갔다.
두 봉지나 먹은 멀미약이 제 기능을 상실했는지 차를 타자마자 고질병 멀미가 재발했다.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을 간신히 참아내며 한숨자고 나면 괜찮을 거라고 위로하며 잠을 청해본다.
뒤늦게 멀미약이 제 정신을 차렸는지 잠이 보약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잠자고 나니
멀미가 사라졌다.
들녁에는 모를 심기위해 받아 놓은 물이 찰랑찰랑거리며 아침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인다.
모내기 철이구나.... '농자지 천하지대본'였던 시절이 그리워 마치 옛친구를 만난양
정답게 바라만 보았다.
탐스러운 포도송이처럼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아카시아꽃이 차창가에
다가왔다 멀어져간다.
산허리를 뚫은 터널을 거침없이 달려가던 갑장산행버스는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서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동 용흥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둥그렇게 산우님들과 모여서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산행을 위한 만만에 준비를 끝냈다.
들머리 초입부터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였지만 연두빛 새옷을 입은 나무들이 앞자락이 넓은
아낙네처럼 나무그늘을 만들어 갑장산을 찾아 온 산우님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들의 나무그늘을 벗삼아 산행에 힘을 실어주는 스틱을 보호자처럼 꼭 잡고 지치지않게
천천히 올라갔다.
이따금씩 들리는 산새들의 노래가 산행을 실감나게 한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조금씩 보여 조금만 더 가면 능선일거라는 희망을 품고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일각이 여삼추'라 여간해서 고갯마루가 나타나지 않는다.
힘이 빠지면서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지만 절대로 힘들지 않을거라는 최면을 걸며
가파른 올라막길을 올라서자 제법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솔잎들이 두툼하게 깔린 소나무 숲속을 만났다. 소나무 숲속을 산행하다보면
'존 바에즈'(Joan Baez)'가 산새처럼 청아한 목소리로 부른 '솔밭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The River in The Pines)'란 노래가 내 귓가에 잔잔하게 들려온다. 솔밭사이 강가에 연인이 있어 행복했다는 메리처럼 소나무가 연인이 되는 소나무 숲속의 산행은 행복하기만했다.
이상하리만치 솔향기가 나지 않아 가만히 소나무들을 바라보니 내 자그마한 행복을 빼앗아가는 주범이 있었다.
소나무들을 말라죽게 만드는 솔잎혹파리들의 무차별공격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박제가
되어버린 소나무들을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울분이 솟앗다. "기생충같이 솔잎혹파리들 도대체 뭔 짓을 한거야 "
소나무 숲속을 지나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나게되었다.
어느 산이나 있기마련인 '깔닥고개'인 듯 싶다. 제아무리 힘들지 않게 산행을 할거라고
최면을 걸어도 숨을 헐덕거리지 않을거라 다짐을 하여도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
호흡은 점점 가파지고 발걸음은 차츰차틈 느려지지만 천만다행 인것은 육산이라 부드러운 흙과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며 얼마나 많이 응원을 보내던지!
나무사이로 하늘이 보이면서 고갯마루에 문필봉(해발 695m)이 기다리고있다.
인재의 등용문 장원급제가 있던 유학의 정점 조선시대.
경상도 출신 인재가 나라의 반을 차지 할 정도 였는데 그 중에 반은 선산과 상주 출신였다고한다.
문필봉의 정기를 받아 상주에서 조선시대 인재가 많이 나왔다는 소문도 있고 보면
공부는 물 건너 갔고 치매 예방을 위해 문필봉 나무표시판에 살며시 손을 얹어 놓았다.
연분홍 산철쭉 그리고 '봄날은 간다'
산허리부터 따라오기 시작하던 연분홍 산철쭉은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피어 있다.
도심 도로변 화단을 화려하게 꾸미던 꽃분홍 철쭉꽃은 화사한 네온사인의 여인이라면
산속에 철쭉은 연분홍 치마의 소박한 여인네 인듯싶다.
10년지기 산우님 도원 갑장친구가 산철쭉을 보면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생각이 난다고 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개사하여 "연분홍 철쭉이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고있다.
개인적으로 한영애씨가 부른 '봄날은 간다'를 들으면 '이청준'씨가 쓴 '서편제'의 주막과
주모가 떠오른다. 나른한 봄 어느날 툇마루에 앉아 사는게 한스러워 불었을 것같은' 봄날은 간다'
겨우네 하루도 빠짐없이 그토록 기다렸던 봄을 어쩌면 나는 갑장산에서 산철쭉과 함께 산행을
하면서 그렇게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갑장산 정산을 코앞에 두고 팔각정 아래 그늘에서 산우님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남 제일의 산' 정기를 마시며 점심식사를 했다.
상주의 영봉 갑장산 정상에서
팔각정 앞에 만들어진 나무계단 끝에는 오늘의 주인공 갑장산(해발 806m)이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과 지천동에 걸처있는 갑장산은 고려 충렬왕이 붙였다고 전해진다.
갑장산이 있는 상주는 임진왜란이 있기 전까지 경상감영(도청소재지)이 있었던 문화의 도시였지만
임진왜란 후에는 경상감영이 대구로 옮기게 되면서부터 경상도 중심권에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고한다.
특히나 경부선 철도를 설계할 때 상주역 경유를 유림들이 필사적으로 반대하여 상주가 배제되어
결정적으로 낙후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유학으로 나라 인재들을 많이 탄생시켜 명성을 얻었던 상주가 유림으로 인해 낙후된 도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는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밖에 갈 수 없다'고 역사는 슬며시 이야기한다.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고 부정한 매장을 하면 가뭄이 들었다는 상주의 영봉
갑장산 비석에 포부도 당당하게 인증샷을 하며 하산길을 서둘렀다.
왕정이 바뀌어 숭불사상의 말살은 사찰조차 산 정상 가까이 숨어야했던 갑장사가 나무들속에서
여전히 숨어있는 자태로 아스라이 보인다.
나옹선사가 천리안을 가졌다는 기록은 없어도 갑장산 정상아래에는 나옹바위가 있다.
물론 나옹선사가 왕정이 바뀌는 조선시대까지는 살지 못했다 하더라도 후세 불교인들은
어쩌면...나옹선사의 참선이 그리워 갑장사 아래 바위를 나옹바위라고 하며 '청산은 나를 보고 (靑山兮要我 )'라는 시 한 수를 읊은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는 석문으로 내려왔다.
연분홍 철쭉꽃은 산행이 끝날때까지 따라오면서 숲속길에 떨어져 "봄날은 간다"고 꽃잎도장을
찍고있다.
한계를 극복한 산행의 즐거움
쥐라기때 화강암이 솟아오른 산답게 기암괴석도 가끔식 만나게되지만 육산임에는 틀림없어
나무그늘이 시원한 여름산행이나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산행으로 추천하고 싶은 갑장산이다.
산행을 하겠다고 결정을 하고 나서는 잘 해 낼수 있을지 무던히도 걱정을 했었지만 육산이 주는
즐거움에 가볍게 산행을 끝낼 수가 있어 시험에 만점을 맞은 아이처럼 기쁨으로 충만한 산행였다.
2015.5.10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