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Essay

졸업 후 40년만에 찾아 갔던 초등학교

NaMuRang 2008. 8. 19. 11:18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 할아버지송방(문방구)은 
처마가 낮은 초가집에 논갓길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후로 생겨난 송방(문방구 겸 구멍가게)인듯 싶다.
떨어져 나간 유리창문이 주인 잃은 집이라고 
넌지시 알려주지만 키다리 옥수수대가 스치는 바람에도
가볍게 몸을 흔들며 서글퍼지는 내 맘을 달래준다. 

새하얀 철재울타리가 나즈막히 둘려쳐진 학교길.

 예전에 내가 학교 다닐때 울타리였던 측백나무들이
하얀 철재 울타리 너머로 보인다.
허리가 제법 실한 거목으로 자라버린 측백나무가
나무의 수령을 살며시 이야기해준다.

여전히 운동장을 끝에 있는 프라타너스 나무들.
윗둥지를 몽땅 짤려 
마치 한송이 커다란 꽃처럼 자라고있었다.

학교 뒷뜰 사택이 있던 자리다.
사택과 우물이 있던 자리에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다만 봉숭아만이 예전과 마찮가지로 날 반겨준다.

40여년이 지난 학교에는 병설유치원까지 생겨나
격세지감을 피부로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층짜리 학교 건물 아래층을
창문 너머로 복도를 살짝궁 들어다본다.

그리곤 이제는 학부모용 스리퍼를 신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예.고.미.수가 뭔가 잠시 생각에 젖어본다.
'예절바르게 인사하기.
고맙습니다.미안합니다.수고하셨습니다'.
우리네 삶에 마지막 보류는 학교라고 
나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한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빈 통로를 전시공간으로 만들어 
재활용품을 이용한 수납통을 전시해놓았다.
우유통을 짤라 색종이를 알록달록 붙인 수납통은
주인의 개성에 따라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바로 옆동네에서는 인형들이 앙증맞게 한가위 춤도 춘다.

은행나무가 교화이고 측백나무가 교목인 마동초등학교.
나 어린시절 할아버지 형님 큰집할아버지도 이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을 지낸적이 있다.

병설유치원만큼이나 신선한 감각으로 다가왔던
동화속으로 그림이야기이다.
어린왕자도 보이고 흥부와 놀부 그리고 백설공주도 보인다.
글러벌시대를 살아가야할 우리네 어린아그들은
과연 다르구나 하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층에 올라서자마자 책 사랑 글방이 나를 기다린다.
간이 도서관을 연상하게 만드는 책 글방에 서성이며 
도시나 농촌이나 격의없이 공부할 수있는
조건을 가진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놀라움을 금 할수가 없었다.

구령대는 예나 지금이나 운동회를 기억하게만든다.
운동회의 백미였던 동네별 릴레이경주는 남녀노소
누구나가 운동회를 기다리게 만드는 커다란 이벤트행사였다.
하지만 텅비어 버린 운동장만큼이나 기억의 창고가 텅비어버리는건
그시절 그사람들을 이제는 만날 수 조차 없기 때문이겠지.

담장조차 없던 학교 후문쪽도 이제는 측백나무들이
한 몫하며 자기네가 파수꾼이라고한다.
실하게 자란 나뭇잎들이 마치 녹색의 정원길을 만들어
한동안 그들곁에 머무른다.

그 흔한 문조차 없는 학교 후문이다.
우리는 이곳을 지나 논두렁에 앉아 
그림을 그리던시절도 있었다.
문이 없어 오히려 그리움에 젖게 만드는 학교 후문길은 
아스라히 먼 옛날  내 어린시절로 데려다 놓는다.

친구에게 -이해인-

내게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달려와
웃으며 손잡아주는
봄 햇살 같은 친구야
내가 아프고 힘들어
눈물이 날 때마다
어느새 옆에 와서
"울지마, 내가 있잖아"
라고 말해주던
눈이 맑은 친구야
내가 무얼 잘못해도
꾸지람하기 전에
기도부터 먼저 해주는
등대지기 같은 친구야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어
새삼 너에게 편지를 쓰려니
"내 생일도 아닌데 편지를 쓰니?"
어느새 옆에 와서 참견하는 너
너와 함께 웃다가
나는 편지도 못 쓰고
네 이름만 가득히 그려 놓는다
이름만 불러도
내안에서 언제나
별이 되어 반짝이는 
그리운 친구야
08.8.16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