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 지리산과 옥려봉산행
우리동네 시청 화단의
새하얀목련 꽃밭.
안양천변 서부간선도로 갓 길 언덕에
노오란개나리 울타리.
그들은 그 흔한 나뭇잎 한장 걸치지 않아도
화들짝 피어나 꽃샘 바람의
거센 시샘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혼자서도 잘 크는 아이같이 의연하다.
물론 '새벽별 보기 운동'까지는 아니지만
아침 출근길 차장 너머로 잠시잠깐
먼 발치에서 바라보아야하는 봄 풍경은
마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내 가슴을 늘 애닳게 만든다.
하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같은
자연과의 교감을 일주일 내내
학수고대하는 산행이 있기에
오늘이 내일과 거의 다름없는
다람쥐 체 바퀴 돌리는 지루한 일상에
숨통이 트이곤한다.
사랑은....아니지만
사랑보다 왠지 더 운치가 있어 보이는 사량도.
청청해역 남해 앞바다 어디쯤 있다는
풍문이야 어렴풋이 들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산행을 앞둔 주말 저녁까지도
사량도가 산 이름 인줄 알었다.
(덜렁쟁이 극치는 내 참모습인지 모른다.)
봄꽃들이 너도나도 피어나
저마다의 색깔로 자랑이 한창인
3월 마지막주말 무박1일의 사량도 산행이 있었다.
하루종일 추적거리던 봄비는
늦은 저녁까지도 끝일줄을 모른다.
하지만 봄비쯤으로 마음 고생 할 만큼
마음에 여유조차 없이
허겁지겁 배낭을 챙겨
사량도 산행버스가 있는 사당동으로 향했다.
늦은밤 무박 산행이다보니
동대문에서 미리 타고 오셨던 산우님들은
벌써 잠이들어 간단한 인사 소개 조차
내일을 기약하며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삼천포라고 했다.
바다 갈매기가 난생처음 찾아 온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오랫만에 들어보는 그들의 인사가
바다 갯내음과 함께 촉촉하게 내 가슴을 적셔준다.
카페리호가 아니어서 오히려 더
정감이 가던 통통배 유람선이 빗속을 가르며
사량도 돈지항 선착장으로 데려다준다.
운무가 가득 덮힌 산에는
가끔씩 기암 절벽들이 설핏설핏 보이며
선 굵은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 놓은듯 싶다.
'경상남도 통영시에 속하는 사량도는
국립공원 한려해상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약1.5KM의 거리를 두고
위섬, 아랫섬, 수우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나 주말이면 약 5,000명 정도의
관광객이 등산과 낚시를 즐기기위해
사량도 섬을 찾아 온다고 한다'
울음 끝 질긴 아이같이
그칠줄 모르고 지지부진하게 오는
비속에 우중산행은 시작되었다.
배낭을 가려주는 우의를 걸치고
가볍게 들은 우산위로 '갈그락 갈그락' 거리며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나즈막히 들린다.
'피 할수 없는 상황이면 즐기라'는
생활 철약의 지혜가 나즈막히 소근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된다.
아직도 앙상한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빗방울들은 꽃봉우리같다.
그들의 투명한 아름다움에는 부활의 꿈이
서려있어 멈칫멈칫 발걸음이 느려지며
눈길이 거두어지지가 않았다.
꽃분홍 진달래가 꽃비를 맞으며
산허리를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새봄 처음보는 그들과의 데이트는
시종일관 설레임으로 들떠있었다.
얇게 져며 켜켜히 쌓아 놓은 듯 싶은
바위들의 오묘한 조화는 사량도에서 만
불수 있는 바위산의 특징인가보다.
비가 와서 물기 가득 머금고 있는 그들을
가만가만 밟으며 바위산행을 한껏 즐기다보니
지리산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산들이 과히 높지 않아 산행에 어려움이
없을거란" 선배산우님의 말씀이
마치 구원의소리 마냥 내귀에 쏙옥 들어왔었는데
과연 힘들지않게 정상에 올라 올수 있어
뿌엿게 앞을 가린 운무도 충분히 용서할수가 있었다.
'지리망산'이라고도 하는 해발 389M의 지리산은
태백산맥에 있는 지리산과 이름이 똑같은
사량도 지리산이다.
지리산 비석에 손을 얹으며 가볍게 악수를 하고는
다음 산행지를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따금씩 운무가 걷히면 에메랄드빛 바닷물과
하얀 포말을 길게 일으키며 다가오는 유람선이
먼 이웃나라 풍경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내 고향 마을에는 바다나 강이 없다.
물론 십여리 밖에 장항과 군산이 맞닺는 포구항도
볼수 있었지만 우물안 개구리마냥 십리밖 외출이란
일년에 몇번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더구나 어린나이에 객지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바다에 관한 느낌이나 추억은 전혀 없다해도 과언이아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촌마을의 평화로운 모습도
드 넓게 펼쳐진 초록빛 바닷물도
그림에서나 볼수 있었던 풍경이기에
실제상황을 접하는 그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섬을 가로 지르며 뽀족뽀족 뽀족바위들이 능선을
이른 능선길을 따라 가다보니 불모산에 이른다.
하루종일 올것 같은 비가 뚝 그치자
운무 또한 자취도 없이 사라져
저멀리 옥녀봉까지 훤히 보인다.
새벽녁 산행 버스안에서
"비가 계속 올 경우 옥녀봉 산행은
포기 한다"는 산악대장님 말씀이 있고보니
옥녀봉 산행 까지는 생각조차 못했는데
천만다행 옥녀봉까지 산행 할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과연 깍아지는 듯한 바위산에 밧줄을
매달아 놓고 밧줄을 잡고
옥녀봉 정상까지 올라가야만했다.
어떻게해야 하겠다는 마음에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오르다보니 바위산 중간쯤 되면서부터
마음에 균형을 잃어 무섭다는 생각이 슬며시 일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산정상에 계신 산우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옥녀봉 정상에 오를수 있었다.
최고조의 성취감을 느낄수 없었던게
아쉬움으로 남으며
오른 것 만큼 하산길
또한 가파르긴 마찮가지였다.
나무를 밧줄로 꽁꽁 묶은 나무 사다리를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그걸 밟고 하산을 해야했다.
밧줄,나무사다리에 대한 안전을
확신하지 못하는 나는 그걸 붙잡고
내려오면서 떨리는 가슴으로 별리별 생각을 다하며
머리속으로는 별다섯개짜리 재난영화 한편을 찍고 있었다.
"우리 나무님 수고 하셨습니다"
아래에서 나무사다리를 꼭 붙잡아 주시던
총산악대장님 말씀이 가슴 뜨겁도록 감동했던건
"우리 나무님"에서 형제같은 믿음 때문였다.
유람선 배 시간에 쫓겨
뜀박질하며 대항선착장에 도착하자
유람선선장님은 이미 화가 나셨는지 표정이 심상치않다.
"노을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이미자님의 구성진 노래소리가 배전을 울린다.
이순신 장군님과 함께 공전하는 청청해역 한려수도를
난생처음 유람하는 내 가슴에도
"임 마중 섬색시의
풋 가슴 처럼
빨갛게 빨갛게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수평선 저멀리 그대는
정녕 모르리.....
08.3.30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