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산행기
대둔산행기
NaMuRang
2006. 9. 11. 23:29
대둔산행
잿빛 시멘트 보도블럭위에 농익어 뚝 떨어진 살구빛 은행열매. 가늘고 긴 목 대책없이 산들거리는 코스모스. 샛파란 바다같이 드 넓고 높은 하늘가를 정찰에 나선 잠자리떼. 바람이 몰고 온 가을은 지금 내 마음에'가을 풍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산이 과연 名山일까를 논하기 이전에 강한 호기심은 꼭 산행을 해야 할 것같은 의무감(?)마저 들때도 있다. 그 한예가 대둔산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미 새벽바람은 늦가을을 체감하게 쌀쌀하지만 아직은 충분히 즐길만한 가을 바람 온 몸으로 느끼며 대둔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너머 들판에는 풍요로움을 약속이나 한듯 누우렇게 익어 고개숙인 벼이삭이 그저 대견한 자식같아 그들에게서 눈길이 거두어지지가 않았다.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용주골에 산행버스가 도착했다. 가파른 산길 속으로 빠져 들어가자 암석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어 걸림돌마냥 산행을 방해한다. 크고 작은 바윗돌이 산길에 깔려있는 산은 마치 잔소리 심한 사람같이 느껴져 개인적으로는 질색으로 싫어한다. 산이 들려주는 그들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볼 사이도 없이 암석들이 널려있는 산속길이 대패질 못하는 목수가 연장 탓하듯 괜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말었지만,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서서히 내마음속을 파고 들며 산행에 즐거움을 안겨줬다.가파른 산길을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칠성봉 전망대에 이르렀다. 바위들이 뽀쪽뽀쪽 절벽을 이룬 사이사이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어 저런 모습이 남한의 소금강이라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산과 산을 연결한 강철 철제다리(이름하여 금강구름다리)는 '콰이강의 다리'를 연상했다. 산행꾼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어색한 수많은 관광객과 산행꾼들이 뒤섞이어 줄을 서서 여름과 가을을 이어주는 '콰이강의 다리' 영화 한장면을 찍고있다. 앞뒤 빽빽하게 들어 찬 인파로 인해 균형이 맞았는지 출렁거림이 훨씬 덜해 두려움이 별로 느껴지지않던 금강구름다리 아래는 또다른 산들이 굽이굽이 이어져있어 마치 산꼭대기 위에 붕 떠 있는 듯 싶었다. 아슬한 스릴을 느끼며 구름다리를 지나자 약수정이 나온다. 약수정에서 한숨 가다듬고 보니 왕관바위라고 하던가. 깍아지른 절벽 왕관바위에 누구나가 하늘을 올라갈수 있다는 듯 철제계단을 심어 놓은 삼선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로 오르고 싶다는 호기심은 가히 폭발적이라 한참을 기다려 삼선 계단에 오를수 있었다.
처음에야 사람이 워낙 많으니 아무 생각없이 계단에 오르며 사진찍는 여유까지 부렸다. 하지만 중간쯤 이르러 뒤에 따라오르던 젊은 아낙네들이 무섭다는 속삭임이 귀에 들어오자. 나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만일에 철재끈이 끊어지면 어떻게 되는거지. 계단을 꽉 잡야 하는 건가 갑자기 머리속이 복잡해지며 계단을 잡은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발 한발 계단 올라갈때마다 두려움은 배로 증가하여 떨리는 가슴은 애끗은 손에 한층 힘이 더해졌다. 막판 마지막 몇계단은 어서 빨리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몸보다 마음이 먼저 앞섰다. 계단에 다 오르고나자 두려움의 지옥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길지않은 산행였지만 그동안 산행을 하면서 힘들긴해도 두려움을 느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가파른 암석을 올라 갈때마다 스릴과 함께 성취감은 극에 달할 정도로 쾌감을 맛보았다. 오히려 로프나 다른 어떤것에 힘을 빌리지않고 오를때가 오히려 더 안심이되고 만족스러웠다. 가난한 재크는 콩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황금 알을 낳는 암달구를 가져오지만 나는 하늘로 향한 철제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동안 그 어떤 다른 힘에 의지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믿고 강한 의지로 헤쳐나갔을때 진정한 삶에 희열이 찾아오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대둔산 정상 마천대(摩天臺)는 해발 878M이지만 산새가 가파르다보니 초보 산행꾼인 나에게는 버겁기만했다 대둔산 가기위해 새벽녁 집 나올때는 추워서 긴팔 윈드쟈켓을 걸쳤는데 한 낮의 더위가 만만치않아 땀이 송글송글 맺히며 마천대 정상을 향한 발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했다. 원효대사가 하늘과 맞닿았다는 뜻으로 지엇다는 마천대에 이르자 스잔한 바람이 땀방울을 싹 씻어주며 사라진다. 이미 차가워진 바람에는 가을냄새가 많이도 묻어있었다.
산아래 서쪽으로 보이는게 논산이라고 했던가. 산과 산속에 파묻혀 과히 커보이지 않는 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논산 연무대가 있어 아들을 가진 부모님에게는 전혀 낯설 이유가 없는 동네가 논산이긴 하지만 많이 알려진 이름과는 달리 개발의 물결은 과하게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왠지 정겹다. 대둔산 산행을 처음 접하고 대둔산이란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 되었을까 참 이채롭다는 생각을 했었다. 대둔산의 순수한 우리나라 이름은 '한듬산'이라한다. 이 한듬산을 漢字化한 것이 대둔산이어서 '듬'의 뜻이 들어 있지 않고 다만 '듬'과 비슷한 한자를 음화 한 것이 '둔'이므로 그 둔자가 한자로 어느자 이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벌곡, 가야곡 등 일부 논산사람들은 그 쪽에서 보는 한듬산의 모습이 계룡산과 비슷하지만 산태극 수태극의 대명당자리를 계룡산에게 빼앗겨 '한이 되어 '한이 든산'의 뜻으로 한듬산이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한듬산의 한을 크다는 대(大)로 하고, 듬은 그 소리만을 비슷하게 둔(芚), 혹은 둔(屯)으로 해서 대둔산(大屯山)이 된 것이다. (출처 : '대둔산' - 네이버 지식iN) 어쩌면 대둔산은 논산사람들이 지어낸 '한듬산'이 한자화 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취지와는 전혀 비슷하지않은 이름이 지어진것 같다.
깊은 산속 바위틈사이에 피어난 구절초가 갈햇살을 맞으며 고운빛으로 화사하게 미소짓는다. 산행 하면서 그 흔한 밤나무 도토리나무 한그루 구경 못한 유실수가 극히 적은 대둔산에서 유일하게 가을을 이야기하는 구절초가 왜 그렇게 반갑고 소중하던지 가던 발걸음 멈추고 한참이나 그들과 눈 맞춤했다. 마천대를 내려와 낙조로 유명하다는 낙조대를 들렀다. 억새풀이 이제 막 껍질을 벗기시작했다. 머지않아 은빛머리 휘날리며 가을을 노래할 억새풀꽃을 보면서 산속에도 가을이 오긴 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들었다. 서늘한 가을 바람에 수없이 흔들리는 나무잎들이 가을 햇살에 선명한 그림자 만들며 산속을 가을로 수 놓는다. 문득문득 그들을 바라보며 가을냄새를 미세하게 맛보며 산행은 쉼없이 계속되었다. 기암 괴석들이 절벽을 이루며 병풍처럼 둘려쳐저있는 대둔산은 산행을 한다기보다는 관광삼아 케이블카 타면서 쉬엄쉬엄 구경하는 코스로는 제격일 것같다는 생각을 산행하는 내내 했었다. 계곡과 계곡사이 자잘한 암석들이 수없이 깔려있는 산길은 울창한 나무들과 계곡에 휩싸여 마치 나무숲터널을 내려가는 것 같았다. 바윗길을 지루하게 끝없이 내려가다 만난 수락폭포는 마치 사막의 신기루마냥 반갑기만했다. 길게 내려 품는 새하얀 폭포수 물자락에 알게 모르게 그간 쌓아 온 여름날의 쓸쓸한 허물 깨끗이 씻어내여 순백의영혼으로 이 가을을 맞이하고싶었다. 마치 새로운 가을과 혼인이라도 한 것처럼! 06.9.10 NaMu
에필로그: 논산으로 내려 와 주차장앞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던 감나무에 감이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무심한듯 흐르는 세월 속에서 아무도 돌보는이 없어도 정녕 그들은 토실하게 여물고 있었다. 풋감은 언제나처럼 아련히 떠오르는 먼 옛날 내 풋사랑 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