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칼럼

시 문화 강좌를 듣고

NaMuRang 2006. 3. 16. 00:41
 
시 문화 강좌를 듣고
 
아주 오랫만에 맘을 잡고
시 문화 강좌를 들었다.
나이가 과히 많지 않은 
젊은 시인였다.
'창비'에서 시집을 냈다는
개인 소개를 듣고 시를 
제법 잘 쓰는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언듯 들었다.
요사이 젊은 사람답지 않게
상당히 겸손하지만 질서정연하게
강의하는 모습에서 시인의
깊이있는 사유를 보는 것 같아
나 자신을 되돌아 보며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는
부끄러움이 앞서는데야......
1990년대는 신문사 저널리스트나
출판쟁이들이 문학 위기라고 했지만
2000년도에 들어서는 문학의 죽음이라고 한단다.
문학의 죽음이라고 정의하는 근거는
첫째가 시각의 이미지 시대 즉 소비문화가
우리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란다.
자본 주의 사회에서야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화두만이 우리 일상이기 때문이리라.
두번째는 디지털환경 즉 지식정보사회에
우리가 살기 때문에 문학이 죽을수 밖에
없다고 정의했다.
문학은 지혜라고 감히 말을 하는 시인은
지식사회에서 지혜의 사회전환이 필요하다고
크지도 않는 자그마한 소리로 설득력있게
이야기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매화를 그리는대는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이 따로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뉴앙스의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법이 따로 있는 것은 전시대의 부정으로
시 형식에 구애 됨없이 
법이 따로 없는 것도 아니다란
개인의 창의적 화법이 시를 써야한다는거다.
쉽게 이해하자면 모방보다는 개인만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을 강조한것이리라.
말하듯이 쓰는게 시라고 
시인은 마지막으로 정의한다.
말 즉 구술문화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포용력있고 모성적이고 민중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식이 강하고
지극히 따뜻하고 깊이가 있어
시를 아는 시인은 다르다는 것을
1시간 30분 동안 강의를 들으면서 
강하게 느꼈다.
가끔은 이런 사람을 본다.
나이는 어리지만 사고의 깊이가 넓고 깊어
마치 거목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
마지막으로 시인이 들려준 시 한귀절
벚꽃 나무에서 치마를 입은 소녀들이 
벚꽃 구경을 하는데 허벅지가 드러나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잎이 바람에 날려 
소녀 허벅지에 꽃잎처럼 달라 붙었는 뉴앙스의 시,
또 다른 각도에서 벚꽃 나무를 보면
벚꽃이 필 때면 벚꽃 나무 주변에는
번데기장수, 오뎅장수, 떡볶기장수들이
몰려든다.
벚꽃이 필때면 전국에 실업률을 줄여
줄수 있다는 뉴앙스의 시를 이야기 할때는
강의를 듣던 수강생들이 박수를 치고 말었다.
역시 의식이있는 시는 언제나 감동 그 자체인것
만은 확실하다.
단지.... 독자가 많지 않다는 것의
부담감이 늘 문제이기에....
시인은 언제나 가난할수 밖에 없는 것 같다.
06.3.15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