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무너미 고개 산행
나무 잘 타던 옛 기억을 되살려 나무 위를 자신 있게 성큼성큼 올라가셨나 보다.
하지만 막상 가르다란 나뭇가지 끝에는 새둥지를 매달 수가 없어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망설이고 있을 때 나무 아래에서 구경하시던
산우님께서 자그마한 톱을 꺼내신다.
어떻게 톱까지 준비하셨을까? 비상으로 가지고 다니시는 걸까?
나무 위로 톱이 무사히 올라가자 나무 아래에서
구경하시던 산우님들께서 팔을 높이 쳐들고 훈수를 두신다.
"이쪽이 좋겠어 아니야 저쪽이 좋을 것 같아"
나무 위에 계신 산우님께서 자세히 훈수를
들으시더니 거침없이 나뭇가지를 자르셨다.
30cm 정도 새둥지를 묶을 튼튼한 가지만 남긴 채.
"아름다운 5060"이라고 쓰인 새둥지를
나뭇가지에 매달으신 산우님은 마치
결혼시킨 자식 신혼집 마련해 주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나무 위에 계신다.
깜짝 이벤트가 끝난 것처럼 나무 아래에서
구경하시던 산우님들은 흩어지고 나무 위에 계신 산우님은
올라갔을 때 하고는 상관없이 내려오는 일이 쉽지가 않자
갑장 산우님께서 길게 팔을 뻗혀 도와주신다.
마주 잡은 손과 손에는 진한 사나이의 우정이
가을햇살처럼 빛이 났다.
관악산 무너미 고개 산행
가로수 은행나무들은 노랗게 가을옷 갈아입고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어디라고 가보라고 부추긴다.
'어디 갈까' 갑자기 막연해진다.
'어디로 갈까' 모래바람 이는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마음에
신기루가 아니 구세주가 보였다.
'그래....나에게는 산행이 있었어.'
11월 첫째 주 일요일은 관악산 무너미고개를
건너가는 산행이 있는 날이다.
산행뿐만 아니고 새들의 안식처 새둥지를
나무에 매달아 주는 이벤트까지 있어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사람답게 사는 일에
동참하게 되어 기쁨이 물밀처럼 내 가슴을 차고도 넘쳤다.
가볍게 점심식사를 준비한 배낭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자
눈부시게 찬란한 아침햇살이 마중 나왔다.
가을 끝자락에 있어도 여전히 지난 여름날 열기를 채 식히지 못한
가을햇살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산우님들이 기다리는 관악산역으로 갔다.
지하철역전을 나서자 산우님들께서 무리 지어 화기애애하게
담소하시는 모습이 먼발치에서도 보인다.
특히나 사회공헌 차원에서 진행하는 새둥지
매달기 작업에 필요한 새집 20개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신혼집 같은 새둥지를 들은 산우님들과 아스팔트 산길을 따라갔다.
호수공원 입구로 들어서자 우선 10개만 나무에 매달아 주라고
카페지기 님께서 말씀하신다.
기다란 나뭇가지에 새둥지 고리를 넣고 나무에 매달아 주는 산우님,
까치발을 딛고 될 수 있으면 높게 더 높게 새둥지를 매달아 주시는 산우님,
그리고 나무에 직접 올라가서 톱으로 나뭇가지를 자르고 새둥지를 매달은 산우님,
새들의 안식처 새둥지를 나무에 매달아 주는 산우님들의 손길에는
정성과 사랑이 가득하여 공존과 공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호수공원으로 들어가면서 산우님들은 어느 나무에다 새둥지를 매달으면
좋을지 물색하시면서 나머지 10개도 정성이 가득한 손길로 매달으셨다.
마치 혼인을 앞 둔 자식 신혼집 마련 해 주듯.
관악산 새둥지 전설
어는 해인가 가을의 끝자락에
새들의 안식처 새둥지가 관악산 호수공원에 생겼다.
선함을 아름다움으로 추구하는 회원들의
모인 카페 '아름다운 5060'에서 만든
거란 소문에 새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나무에 매달린 청사초롱 새둥지에는
오늘도 사랑이 가득하다는 전설이 풍문처럼 내려온다.
호수공원에 있는 호수는 아무래도 담수라서 물은 깨끗하지 않아도 있을 건 다 있다.
먼발치에서 보면 구름다리 같은 나무다리도 있고 호수를 보면서
시라도 한 수 읊으라고 정자도 있어 깊어가는 가을에 정취를 더 해 준다.
호수공원에 백미는 아무리 생각해도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섬 같다.
인공호수에 있는 자그마한 섬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개구리 왕눈이가 살고 있을까?
가만히 건너다보면서 발길은 숲 속으로 향했다.
표면이 반들반들하여 커다란 조약돌 같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계단을 만들어 놓고 우리를 기다린다.
나지막한 바위길에 소복소복 쌓여있는
낙엽을 조심조심 밟으며 가을이 내 곁을 떠나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산길을 올라갔다.
무너미고개를 넘어가기 전에 산우님들께서 준비해 오신 간식과 도시락으로
가을햇살이 쏟아지는 숲 속정원에서 어쩌면 올해 마지막 가을 가든파티를 했다.
가든파티를 끝나고 오늘에 목적지로 향하다 무너미고개 0.95km라는 이정표도 만났다.
아~함 가볍게 950m만 가면 되는구나.
발걸음도 덩달아 가벼워지면서 햇살 가득한 숲길을 올라갔다.
이름이 예쁜 무너미고개를 가다 보면 우람한 나무들과 크고 작은 바위들이 공존하며 공존의
미학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어 이름값 제대로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가볍게 무너미고개 정상에 올라서면 우편은 삼성산 좌편은 관악산이 연결되어 있어 어느
산으로 갈지 잠시 생각하게 하지만, 오늘은
무너미고개를 넘어 좁디좁은 일방통행 하산길로 내려갔다.
하산길 만나는 숲 속 나무들은 지난여름 역대급 무더위로 10월이 다 가도록
뒤끝을 남겨 나뭇잎들이 단풍이 들기도 전에
바짝 마르고 고스러져 나뭇가지에 낙엽처럼 매달려있다.
역대급 무더위 후유증을 겪고 있는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내려왔다.
관악산 공원에서 시작한 산행이 호수공원을 거처
무너미고개를 넘어 안양유원지까지 7km를 걸으면서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억새꽃도 보았으니 단풍대신 억새꽃이라
누군가는 꿩대신 닭이라 하겠지만 단풍은 나뭇잎이고
억새꽃은 명색이 꽃이라고 항변하는 억새꽃 앞에서 올 가을
처음이자 마지막 인생샷을 찍었다.
2024.11.3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