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곡산행
실로 우연히 보면서 깜짝 놀랐다.
아니 쟤네들이 왜 저렇게 되었을까?
갑자기 병이라도 생긴 것일까?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커다란 창문너머로 자세히 바라보았다.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푸르뎅뎅한 나뭇잎이 바짝 말라 앙상한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다.
월요일 오후 카페 봉사활동을 하면서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나뭇잎 우수수 털어 버리고는
그나마 남아있는 나뭇잎들은 가을빛으로 물들기도 전에
바스러질 듯 마르고 오그라들어 처연한 모습을 보고야 말었다.
삼복더위 같은 추석이 지나자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며 가을이 왔다고 했지만, 낮 기온은
여전히 20°를 훌쩍 넘어서며 햇살 또한 태워버릴 듯 따가워서 어디 나뭇잎인들 오색찬란한
가을옷 갈아입고 가을향연을 할 수 있겠는가?
나뭇잎들이 맥없이 처참하게 무너져내려 이제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있는
교회 앞마당에 벚꽃나무 대 여섯 그루 보고 있으니 가을맞이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가을은 벌써 내 곁을 떠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괜스레 부산해졌다.
'그래 꼭 가고야 말 거야.'
얼마나 혹독하게 무더운 여름을 보냈는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설레임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있어 가을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갈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지 일상탈출이다.
불곡산행
몇 달 만에 산행 잘 해낼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은 했지만
애써 지워버리고 양주에 있는 불곡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이른 아침 하필이면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심란하게 바라보면서도 우중산행은 감히
생각조차 못하고 먼지 자욱하게 내려앉은 배낭을 오랜만에 챙겼다.
발걸음도 가볍게 지하철 역으로 가서 1시간 30분이 넘는
긴 여행(?) 끝에 양주역에 도착했다.
양주역 1번 출구에서 산우님들을 만나 말끔하게 깔려있는
보도블록을 따라 양주시청으로 갔다.
양주시청 옆 들머리에서 불곡산 정상 상봉 2.8km라고 하는 친절한 나무표시판을 만났다.
아... 2.8km 오리가 조금 넘어 이정도면 뭐
가볍게 산행할 것 같은 자신감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름다운 양주 숲길' '불곡산'이라는 아치형 나무문을 지나
나무계단을 올라가자 아람들이 나무숲 속은 걷기만 해도 힐링이 저절로 되는 것 같았다.
곱게 피어있는 들국화가 스치는 바람에도
한들한들 군무를 추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예쁜 짓을 멍하니 바라보며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가만가만 그들과 눈 맞춤을 하며
이 가을을 내 마음속에 들여놓았다.
가도 가도 능선은 나오지 않고 계곡길과 산허리를 걷고 있어
우리가 길을 잃어버려 알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었을 때는
산행을 시작하고 30분도 지나서였다.
속까지 검게 죽은 나무들과 몇 년이나 지난 것 같은 낙엽들이 수북수북 쌓인 계곡길을
헤매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산우님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끝에 무조건 오른쪽 위로 방향을 잡아 불안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천만다행 능선을 찾을 수가 있었다.
제1보루라는 안내판이 저만치에 보인다.
불곡산에는 9개의 보루가 있는데 우리는 30분도 넘게 알바를 하면서
이제 겨우 불곡산행 시작점에 온 것이다.
알바하면서 기가 빠져 우선은 가볍게 간식을 먹으며 힘을 보충하고
정상 상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울창한 소나무들이 양옆으로 보초를 서며 불곡산을 찾아온 우리들을 반겨준다.
매혹적인 소나무 향기에 취해 쉬엄쉬엄 산길을 올라가니
제법 가파른 바위길이 보이고 제2보루라는 안내표시판도 지나갔다.
가파른 바위길에는 바위에 쇠말뚝이 박혀있고
굵다란 로프가 연결되어 있어 로프를 붙잡고
올라가면 힘이 들지 않아 어쩌면 로프가 스틱을 대신하며 산행을 기꺼이 도와주고 있어
구세주는 아닌가 하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제5보루 안내표시판도 만나고
가파른 바위길에 있는 펭귄모양의 펭귄바위를 지나자
태극기가 펄럭이는 불곡산 정상 상봉이 코앞에 있다.
이제부터는 가파른 바위뿐이다.
90° 넘게 가파른 바위길에 쇠말뚝과 연결한 로프가 주는 힘이 산행에 팔 할을 차지하고 있어
릿지산행을 선호했던 꿈같은 시절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그들이 아니면 바위산행은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바윗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예고없는 사고가
이제는 산행이 끝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위길에 친절하게 놓여있는 나무계단을 올라가니 아래에서 보았던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며
불곡산 정상에 올라온 우리들을 축하해 주고 있다.
요사이는 최정상 봉우리에 태극기가 있는 게 대세인지 어느 산이나 태극기가 있다.
바위돌 위에 상봉 470.7m라는 비석이 커다랗게 있다.
해발 470.7m에 양주시청 들머리에서부터 2.8Km 어찌 생각하면
가볍게 할 수 있는 코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몇 달 동안 산행을 하지 않아 뼈마디가 놀랐는지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佛谷山은 양주시 가운데 있는 산 같았다.
특히나 이정표가 숲 속 곳곳에 있었고 특이한
바위들에 이름도 지어주어 불곡산에 대한
양주시의 각별한 애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정상에 서면 양주시가 발아래 있고 저 멀리 수락산, 불암산, 도봉산,
사패산, 북한산, 호명산이 가까이서 때론 멀리서 굽이굽이 이어져
강북에 있는 서울 근교산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아련하게 볼 수가 있다.
상봉 아래에서 오손도손 산우님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거북이 모양에 거북바위를 지나 상투봉에 도착했다.
상투봉 아래에는 여성봉이 있고 여성봉에서는 불곡산의 백미 가파른 바위길의 정점을 찍는
위풍당당한 임꺽정봉을 볼 수가 있다.
임꺽정봉 가는 길도 바위능선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위험하기는 하지만
거칠 것 없는 바위능선길의 또 다른 매력은 잠시 감동까지 했다.
나무계단을 내려가서 또다시 이어지는 바윗길에서 생쥐처럼
귀엽게 생긴 생쥐바위도 만나고
가파르게 내려오는 바윗길을 끝에는 임꺽정봉이 눈앞에 있다.
이제는 마지막 0.2km가 기암괴석 깔딱 고개를 산행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쇠말뚝에 로프가 있기에 가쁜 숨 고르며 바위를 올라간다.
물개바위와 앙증맞은 아기물개바위가 저만치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어
그들에게 눈웃음치며 드디어 임꺽정봉에 올라갔다.
백정 출신 임꺽정은 사실과 왜곡이 버무려져 각종 드라마에서 선보였으며,
일제 강점기 천재라고 알려진 벽초 홍명희의 미완 소설로도 잘 알려져
아마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연이긴 하지만 이 가을 첫 산행을 불곡산 임꺽정봉으로 하고 나니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보편적 정의가 무너졌을 때 피해자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의 최대약자였다는 것이다.
보편적 정의는 우리의 유토피아도 아니고 그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며 임꺽정봉을 내려와
우리들이 어렸을 때 공기놀이 하였던 공기바위를 지나 악어바위를 찾아갔다.
하산길 또한 기암괴석 바위길이라 만만하지가
않았지만 코끼리 바위가 긴 코를 쑤욱 내밀며
로프를 잡고 내려오는 우리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어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 이래"
뒤에서 따라오시던 다섯 살짜리 쌍둥이 외손녀를 케어하시는 산우님께서
큰소리로 노래를 하여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주말마다 세 살짜리 외손녀를 보러 가는 내가
나도 모르게 화답하며 카르르 웃었다.
불곡산 바위들 순례하듯 악어바위를 만났을 때는
바위가 정말 악어가죽같이 얼룩덜룩했으며 머리모양은 악어와 똑같았다.
왜 악어가 불곡산 자락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위험천만 악어바위길을 지나
삼단바위와 불곡산을 찾은 산우님들 모두 복을 준다는 복주머니바위를 만나고 나니
총 11개의 바위 탐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불곡산은 작지만 바위가 많고 상당히 험한 산인 것만은 틀림없다.
2024.10.5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