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산행기

화진포 해파랑길 49구간

NaMuRang 2022. 10. 11. 08:44

바람이 차다. 차가운 바람이 감당이 안돼 슬며시 물어도 보고 짜증도 부렸다.

엄동설한도 아닌데 왜 그렇게 차갑냐고 아직은 가을이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뭔 짓이냐고. 

대꾸조차 없이 찬바람의 심술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드디어 외로움의 칼날로 무장을 하고 시시때때로 휘두르고 있어 상처를

입기 전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우리는 흔히 이야기한다.

"피할 수없으면 즐기라고"

찬바람의 초강력무기 외로움의 칼날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산행이다.

산행은.... 산행을 하면서 겪게 되는 더위는 찬바람과 안성맞춤 적수이기에

이 보다 신바람 나고 근사한 경험도 드물다.

화진포 해파랑길 49코스 산행

10월 둘째 주 일요일 날은 화진포 해파랑길 산행 있는 날입니다.

오늘이 내일과 같은 일상에도 계절의 순환이 찾아와 아직은 감당을 못하는 심술 첨지 찬바람과

조금은 친해지기 위해 배낭을 조심스럽게 챙겼습니다.

새벽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하늘은 오늘에 날씨를 알려주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베란다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찬바람이 와락 달려듭니다.

움칠하며 기어이 한마디 던졌습니다.

"어쩌면 좋니 너를.... 여전하구나"

얄팍한 바람막이 점퍼 2개를 겹쳐 입고 배낭을 둘러메고 산행 버스가 기다리는 사당동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서니 가로등이 대낮 인양 환하게 불 밝히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산행 자랑질을 할까 순간 생각했지만,

간밤을 지새우며 거리를 지킨 그들의 고단한 노고가

가상하여 묵묵히 지하철 역으로 갔습니다.

 

잿빛 구름으로 가득한 이른 아침 썰렁하기까지 한 강변도로는

서울의 또 다른 민낯을 여과 없이 보이며 연휴라고 합니다.

아파트 숲과 빌딩 숲이 차창 밖으로 차츰 멀어지면서,

가끔은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풍요로운 가을이 왔다고

손짓하는 황금들녘이 차창 너머로 가까이 왔다 사라집니다.

언제 보아도 향수병 3기 환자를 지극하는 아침나절 농가 풍경에

깊은 한숨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습니다.

재빠르게 달려가는 화진포 해파랑길 산행 버스가 백두대간과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용대리를 지나갑니다.

나뭇잎이 곱게 물드는 가을이라고요?

푸른빛으로 여전한 나뭇잎들이 아직은 아니라고 자그마한

손을 흔들며 안녕을 고하고 있어 실망을 금 할 수가 없었지만,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는 급한 성격은 아무도 못 말린다고 자성하니 싱긋 미소가 나왔습니다.

강원도 고성 어찌 보면 북한이 마주 보이는 남한의 끝자락에

있는 화진포이기에 산행 버스가 끝없이 달리기를 멈추지 못합니다.

산넘어 산 그리고 가을 하늘이 내려와 앉은 파아란 수평선을 고스란히 선보이던

화진포 해파랑 49코스 산행 버스가 부지런히 달려 강원도 고성군 해파랑길 갓길에 도착합니다.

 

건너편 나무계단에는 해파랑길이란 친절한 안내 표시판이

우리를 기다리며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

오늘 산행의 종착역인 응봉도 1.5km라고 가볍게 안내를 하며

산림욕장도 있으니 마음껏 산림욕도 하라고 넌지시 귀띔을 하고 있습니다.

동네 뒷산보다 짧은 산행코스에 산림욕장까지 그리고 이른 아침 서울 하늘에서

보았던 두툼한 잿빛 구름은 간 곳이 없고 눈부신 가을 햇살이 살며시 내려앉은 해파랑길

들머리 나무계단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습니다.

 

저벅저벅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소나무 숲이 해파랑길 49코스 산행을

즐기는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언던길 한편에는 하얀색 페인트칠이 가을 햇살에 더욱더 빛나는 이름하여

화진포 해맞이 다리가 공중에 떠서 해맞이를 하라고 유혹하지만

요사이는 지자체마다 만드는 게 허공에 떠있는 흔들 다리라 모른 척하고 소나무 숲 속으로 스며듭니다.

가파른 언덕길이 턱 버티고 우리들을 위협합니다.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일렬종대로 서서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올라가면 힘들지 않을 거라고 우리를 응원하고 있어

그들은 예쁜 짓에 한눈이 팔려 가픈숨 몰아쉬며 깔딱 고개 산행은 계속됩니다.

아침에 입었던 2개의 점퍼도 벗어 배낭에 집어넣고 더위로

지쳐가는 몸을 찬바람이 이따금씩 찾아와 식혀줍니다.

아.... 이 맛에 산행을 하는 거야.

평상시에는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했었는데 이렇게 찬바람을 즐길 수 있다니.

능선이 코앞이지만 가파른 언덕길이 끝나지 않아 더위와 찬바람과의

유희를 몸소 체험하며 소나무 산림욕보다 더 큰 힐링을 얻었습니다.

소나무 능선길에는 서 너개 혹은 대 여섯 개 돌들을 쌓아놓은 돌탑들이 즐비하게 있어

무슨 사연들이 얼마나 많기에 이렇듯 자그마한 돌탑들이 많은지

호기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자그마한 돌탑들이 우리를 따라 산행을 계속 할때까지.

돌탑 사이로 다람쥐가 풍성한 꼬리를 흔들며 지나갑니다.

혹시나 돌탑을 건지려 누군가의 희망이 부서지는 것은 아닌까 조바심을 치면서도

다람쥐의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에는 웃음꽃이 저절로 터집니다.

해풍이 심한 해변가인데도 아람들이 소나무들이 유난히 많아 그윽한 솔향기에 취해

도심에 지친 몸과 마음을 깔끔하게 치료를 받으며 오늘에 도착지 응봉에 올라갔습니다.

해발 122m. 해발이라고 하기에도 쑥스럽지만 응봉에는 신세계가 있었습니다.

저너머로 화진포 호수가 에메날드빛으로 둥그스름하게 둘레 16km 원을 그리며

왼쪽을 지키는가 하면 호숫가 주변 오른쪽에는 소나무 숲이 있고

그 옆으로는 백사장 그리고 가을 하늘을 비춰 파아랗게 빛나는 사파이어 빛 동해바다 화진포 해수욕장.

분명 이것은 대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최상의 보석 잔치라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처음에는 

찬찬히 들여다보니 화진포 해수욕장 너머로는 금강산 비로봉도 있으니

매를 닮아 용봉이라고 했다는 용봉은 크기는 작지만 알토란처럼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어 생각하면 할수록 소중 산이란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용봉 바로 아래에는 커다란 돌탑 두 개가 쌍둥이처럼 용봉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어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나무계단을 내려가자 커다란 노송나무들이 두툼하게 솔잎까지 깔아 놓고

산림욕을 즐기라며 부추깁니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는 거북 등껍질 같은 나무껍질을 벗어던지고 매끈매끈한 민 살을 보이고 있어

고개를 높이 쳐들고 왜 그런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샛 빨간색으로 얼굴을 색칠해야 하는 데 빨간 얼굴을

본 적이 없어 어떻게 칠해야 할지 색연필을 잡은 손이 망설여집니다.

이른바 방공 세대입니다.

공산당은 빨갱이고 북한은 공산당이라 빨갱이라는

단순 논리의 포스터는 일 년에도 몇 차례씩 공모전이 있었습니다.

방공 세대가 초등학교(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하지만, 빨간 얼굴을 한 사람들이 공산당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노래와 함께 텔레비전에서 생중계되는

이산가족의 피눈물도 내 일인 양 눈물 줄줄 흘리며 보았습니다.

누구를 위한 이념였나를 뼈저리게 느끼며 누군가는 그 이념을 바탕으로 호의호식하며

잘 살다 갔고 지금도 자손만대로 잘 살아가는

권력의 대마왕 블랙코미디의 주인공 김일성 별장입니다.

김일성이 1948년부터 1950년까지 휴양지로 사용했던 김일성 별장 앞에 서니

단군이래 희생양은 언제나 민초였다는 깨달음이 새삼스럽습니다.

화진포 해수욕장 주변에는 이기붕 별장, 이승만 별장 등 근현대사를 장식하는

인물들의 별장도 있어 경치가 으뜸였던 것만 분명합니다.

비구름이 몰려오더니 한 방울 두 방울 가을비가 내릴 조짐을 보입니다.

 

빗방울이 주르륵 차 창문에 흘러내립니다. 눈물처럼.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에 하이라이트 송지호 해수욕장 오호리항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우산을 쓰고 서낭 바위가 있는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아늑하게 움푹 들어간 바윗돌 위에 대자연이 조각해 놓은

바위 두 개가 위태롭게 붙어있습니다.

금방이라도 태풍이 오면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듯 하지만

성낭 바위 옆에는 성황당이 있기에 꿈쩍도 않고 잘도 버티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갯바위들이 모래사장처럼 바닷가를 쫘악 덮고 있는 성낭 바위 앞 바닷가.

가을비 우산 속에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저 지는 파도를

빌딩 숲과 아파트 숲에 사는 우리가 평생 몇 번이나 보겠는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오늘이 내일인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갯바위에 서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그리고 밀려왔다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가을비 우산 속에

주르륵 톡톡 가을비가 우산에 흘러내리며

가을바람을 탄다.

갯바위를 차고 드는 세찬 파도에

외로움을 실려 보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져버린 외로움이여!

2022년 10월 9일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