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우면산
코로나에 관한 단상
봄이 오는 길목에서 우리를 공포에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코로나19.
마치 하얀 새들이 커다란 고목에 새초롬하게 내려 앉아 봄소식 속삭이던 목련꽃.
서부간선도로 언덕길을 노오랗게 울타리치던 개나리.안양천변을 연분홍꽃구름 터널로 만들었던 벚꽃.
그들이 제아무리 예쁜짓을 하며 봄의 자태를 수놓아도 이상하게 춘래불사춘인지라.
꽃샘바람에 질투의 화살을 맞은 벚꽃이 연분홍 꽃잎을 허공에 휘날리며 그들만에 화려했던
봄을 보내고 있던 순간.'아....봄이 가고 있구나'
나도 모르게 메마른 가슴에 가만히 속삭여봤다.
어느 학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생활환경이 좋은 지역에서 살던
인간들이 총.균.쇠로 면역하고 무장하여 신대륙을 점령하였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류'라는 이름으로 발전은 따로 또 같이를 구현의 모토로 하여 물질과 기계문명를
찬란하게 꽃피우며 초현대 사회를 이룩하였다고 자부하여도 균의 존재는 인간의 의지와
상관 없이 초토화를 부르는 공포의 불씨가 되고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묻지마세요'를 생활철학으로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에게 있어
미래는 언제나처럼 그리움이기에 무단한 기다림으로 그리움을 채우곤한다.
제아무리 코로나가 극성을 부린다하더라도
작년과 마찮가지로 우리동네 시민운동장 울타리에는 무수히
많은 철쭉이 연두빛 어린잎에 쌓여 고개를 살폿이 내밀고 세상구경에 여념이 없다.
농익은 홍시같은 주홍빛으로 때론 진분홍으로 향기도 없는 것이 눈이 부시도록 고운빛깔로
기다림에 지쳐가는 일상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싶다.
일찍이 내 중년을 의미있게 가꾸어주었던 산행이 마냥 그리워진다. 갑자기.
그토록 눈부시던 철쭉도 화무십일홍의 직격탄을 맞아 무참히 허물어져간다.
속수무책인지라 안타까운 시선 거둘 수가 없는 데 계절에 여왕 5월이 무심히 찾아들더라.
어느 날 우연히 덩쿨장미가 예배당 아치형 대문 위를 둥그렇게 붉은 빛으로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붉은 화관이다.
코로나가 교인들조차 몰아내어 고즈녁한 예배당 마당.
덩쿨장미가 있는 대문으로가서 붉은 화관을 쓰고 예배당 대문을 나섰다.
이렇게 좋은 날에 언제까지 기다려야하는거야?
코로나가 정말 밉고 싫다.
너는 도대체 왜 와가주고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거냐고?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허공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마치 불청객 코로나를 한방에 날려버리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쿨장미는 여전히 예배당 대문위를 붉은빛 화관으로 아름답게 수 놓으며
"계절의 여왕 5월에 신부가 되어보라"는 은근한 유혹에 미소를 싱긋 지었다.
"그래 너가 있었구나!"
덥다. 수은주가 30°까지 올라가는게 아무렇지도 않은가보다.
어떡하든 코로나 19를 피하느라 불안불안했던 봄은 갔고,
여름 신고식도 없이 한여름 더위로 기세를 드높이는 6월이다.
제아무리 덥다하더라도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갈망을 멈출 수가 없다.
가보고싶다. 땀을 비오듯 쏟더라도.
코로나와 우면산
마치 금지된장난을 하고 싶은 아이처럼 더이상 참지를 못하고 산행하기로 했다.
6월 둘째 주 일요일은 우면산행이 있는 날이다.
점심 준비없는 산행이니 가볍게 워밍업을 한다는 기분으로 배낭대신 백팩을 챙겼다.
간밤에 내리던 이슬비가 아직은 할일이 남았다고 하늘가득 비구름을 만들어
아침햇살은 그림자조차 보이지않는다.
더운습기를 한아름 품은 대지가 오늘 산행에 무더위를 미리 체험하게하는 이른아침.
산우님들이 기다리는 사당동으로 갔다. 실로 몇 달만에 뵙는 산우님들이 무척이나 반갑다.
코로나 전장터에서 살아 돌아 온 전우처럼.
산우님과 같이 까리타스사회복지관을 지나 오늘 산행을 주관하신 토시리 대장님처럼 우면산을
잘 아는사람만 갈 수있는 들머리로 들어섰다.
습기를 먹금음 더위가 숲길로 들어서니 그나마 주춤한듯하여 깊게 숲의 향기를 들이킨다.
이 얼마만인가 가슴이 웅클해진다.
수풀림으로 뒤덮힌 산길에 개망초가 자기도 꽃이라고 무리지어 피어있다.
꽂은 꽃이로되 꽃같이 보이지 않던 개망초도 수풀속에 피어있는걸보니 개망초도
역시 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든다.
나무들이 울창한 나즈막한 숲길을 쉼없이 걸어간다.
이름하여 둘레길이라고한다.
초록빛 나뭇잎들이 내뿜는 숲속의 정기에 지친 몸도 마음도 흠뻑 적셨다.
왜 그토록 산에 오고 싶어했는지 조금은 알 것같다.
백 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소나무 숲에는 팔각정도 있다.
팔각정에서 산우님들이 정성껏 사오신 간식을 오손도손 나눠먹으며 잠시 휴식시간도 가져본다.
쌉싸름하고 그윽한 솔향기가 은은하게 펴지는 소나무 숲속. 가든파티가 따로 있겠는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염될까봐 알게모르게 움추렸던 몸과 마음을 살짝 풀어 놓았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왜 행복 했을까?
솔향기 깊게 들여마셔 행복을 가슴 가득 충전하며 소나무 숲길을 내려갔다.
초록빛 나뭇잎 위에 허연 국수가닥이 줄줄이 널려있다.
6월은 밤나무꽃이 피는 계절인가보다. 밤나무꽃은 남사스럽게도 나뭇잎을 턱걸치고 꽃을 핀다.
밤꽃향기가 좋다며 갑장 숨은보속 님은 활짝 웃음꽃을 피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일찌기 누군가는 노래했던가 숨은보석 님의 환한 미소가
꽃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 였다.
깊은 밤꽃향의 안내를 받으며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올라간다.
서초동 뒷산이란 사전 인식은 산에서 꼭 있는 갈딱고개를 잊어버리고 스틱를 빼놓은 오류를 범하고 말었다..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스틱이 없어 서성이는데
오늘 처음 뵙는 파크님께서 스틱을 선뜻 빌려주신다..
낯을 많이 가려 인사도 제데로 못했지만, 거리낌없이 스틱을 빌려 주셔서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산우님'이라 이름으로 배려와 우정의 인연을 쌓아 가는건 아닐런지.
한몫 대단히 하는 스틱의 응원에 발맞춰 한번도 쉬지 않고 나무계단 266개를 올라가
오늘의 최종 목적지 소망탑을 모앞에 두고 그림자 짙은 나무그늘에 앉아 후미팀을 기다렸다.
나즈막한 숲길 울창한 나무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나뭇잎들이 만들었던 커다란 파라솔.
가볍게 여름산행하기에는 아니 여름산책하기에는 안성맞춤이 우면산인 것 같다.
우면산의 속살을 훤히 알고 있는 토시리 대장님께서 소망탑 주위에는 돌이 없으니까
소망을 빌 돌맹이를 미리 준비하라고 조언하신다..
탑위에 올려 놓아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넓직한 돌맹이를 주워 들었다.
발걸음도 가볍게 오늘에 최정 목적지 소망탑에 도착했다.
소망탑을 보는 순간 흥분하여 살짝 마음이 떨렸다.
정석대로 탑을 세바퀴 차분하게 돌았다. 소망을 간절히 기원하면서.
"코로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의협심, 정의로운 생각 그런건 거창하다.
다만, 오로지 코로나 없은 세상에서 맘 편하게 돌아다니며 살고 싶다.
2020.6.14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