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선재길
월정사 선재길 실종된 우기에는 비구름과 햇님이 숨박꼭질하며 비가 술레로 잡혔을 때만 찔금거리며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중산행은 영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다. 7월 둘째 주 일요일은 오대산 월정사 선재길로 산행이 있는 날이다. 우주산행 준비를 단단히 하면서도 우중산행의 불편함을 이미 충분히 경험하였기에 비가 오지 않기를 학수고대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신새벽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오랫만에 산행.. 마음은 이미 두둥실 풍선처럼 떠 올라 월정사 선재길에 있었다. 신호등에서 비둘기 한 쌍을 만났다. 신새벽부터 먹이사냥에 나선 그들의 부지런함에 놀라면서도 자랑질은 잊지 않는다. "월정사 선재길간다"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 봤다. 비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에는 아침햇살은 자취도 없지만, 애써 무시하고 월정사 선재길 산행버스가 있는 사당동으로 갔다. 한 달만에 산우님들을 만나 안부인사를 주고 받으며 산행 버스에 올라섰다. 이른아침 안개가 자욱한 농가의 풍경이 창문너머로 다가온다. '농자천하지대본'이 몇 백년 전 경제인 듯 싶지만, 불과 반 세기 전 일인지라 지금도 도심을 벗어나면 들녁에는 모내기를 끝낸 벼들이 제법 자라나 존개가치를 확인하려한다. 애처러운 그들을 바라보며 내 인생의 황금기였던 어린시절을 떠 올린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산허리를 감싸도는 연기처럼 허연 새털구름, 산정상을 향해 용트림하는 잿빛 비구름, 구비구비 이어진 초록빛 나무들 사이에 스며드는 구름들의 묘기대행진을 보느라니 어느사이 월정사 선재길 산행버스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월정사 일주문을 지나 간이주차장에 도착했다. 월정사 건너편에는 비구니들의 도량처 지장암이 있다 한적하고 암담한 암자에는'지옥에서 중생을 구세'하였다는 지장보살에 삶의 구도가 스며있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불교 무식자인 나는 지장보살에게 질문해 본다. 지옥에서 중생을 구세하였듯이 현세에서 중생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인가? 차도를 건너 아치형으로 만들어 운치를 더 해준 월정사 선재길로 들어선다. '천년 옛길 선재길" 이름이 너무도 근사하지 않는가! 천년이나 된 옛길을 걷다니 '농자천하지대자본' 시대가 끝난 이래 나라 안에 이런 길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난생처음 이 길을 왔지만 없어지기전에 왔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7월에 숲은 울창하다. 나무들이 초록빛 잎사귀를 내밀고 깊고 넓게 그림자를 만들어 선재길에 동행하고 있다. 그들의 예쁜짓에 만면에 웃음꽃은 저절로 펴지고. 일본 강점기의 수탈은 오대산도 피해 갈 수 없었다고 회사거리는 말을 하고 있다. 오대산 나무들이 벌목되고 모여져 일본인들 입맛에 맞게 재단하는 회사가 있던 자리를 지나가며 목재를 주재료로 쓰는 일식집들이 떠 오른다. "괘씸한 것들 같으니라고 감히"
무성한 잡풀속 개망초가 밭을 꾸리고 점점히 피어있다. 번식력과 생명력에서는 둘 째 가라면 서러워 할 그들을 보며 왜 난 개망초가 꽃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 할 수가 없었다. 향기가 없어서 일까? 개망초 밭을 지나가니 스프링쿨러까지 설치한 규모가 제법 큰 배추밭이 나왔다. 나무 그림자도 없는 배추밭을 지나가며 재빨리 그림자 짙은 숲속으로 들어 갔다. 1960년 대 말 화전민 이주정책에 따라 360여 가구의 화전민이 이주하였던 화전민 터전를 만났다. 천년 옛길 선재길에도 화전민이 살었구나 화전민의 척박한 생활은 선재길 화전민도 다름 없었을까? 아...괜한 생각을 선재길 초입부터 만난 계곡 물소리는 때론 자상하게 때론 깊이있게 때론 위엄을 갖추고 우리와 동행을 한다. 오대천의 맑고 깊고 위엄있는 물소리를 어떻게 필설로 다 풀어 낼 수 있겠는가? 깊은 물소리는 선재길 숲속을 흥건히 적시고도 남아 내 영혼까지 흥건해진다. 그들의 맑은 물은 도심에 지치고 찌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해 주고 ,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거침없이 전진한다. 우렁차고 위엄있는 그들의 전진가 물소리에 무한한 애정을 보내며 귀기울인다. 마치 시루에 시루번을 붙인 것처럼 산허리에 나무로 만든 나무데크길이 우리에 안내를 자청했다. 신이나서 빠른 걸음으로 섶다리를 향하고. 계곡에 물이 흐르는 걸로 보아서는 분명 오르막길인데 경사가 완만하여 탄탄대로가 따로없어 기어이 북미,남미,아프리카,유럽,네팔,러시아까지 세계유람을 즐기시는 이글 님께 이야기를 건넨다. "탄탄대로라서 넘넘 좋아요" 희노애락이 언제나 존재하는 인생길 선택했다면, 과연 나는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살 것인가? 어쩌면 불교의 순례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선재길에서 화염경의 모범생 선재동자처럼은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바람이 없어도 삼복더위에 덥다는 것을 못 느끼며 가볍게 동피골 오대산장이 있는 숲속에서 산우님들과 오손도손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번뇌의 길' 이라 쓰인 나무팻말 붙은 바위계단을 올라가니 상원사가 있다.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 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주제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살면 되니까.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에는 답이 안 나왔다. 전나무들이 병정처럼 가지런히 서서 월정사를 지키고 있다. 숲속에서 다람쥐들이 나와 부산하게 돌아다닌다 사찰 아래 성황각이라 상당히 특이 했지만 2019.7.14 NaMu
숲속에 있는 고속도로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나무데크길을 가볍게 걸으니 저만치에서
섶다리가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산우님들은 마치 고향마을에라도 온 것처럼
나무와 소나무가지로 만들어 푹신푹신한 섶다리를 지나 다시 울창한 숲길로 들어갔다.
"탄탄대로가 뭐 좋은가요? 희노애락이 없잖아요"
그래도 난 탄탄대로가 좋다고 우기자
"탄탄대로가 좋으면, 수녀나 스님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수녀나 스님의 고독을 감당 할 수가 없어 수녀나 스님은 될 수 없다는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을 하자.
"희노애락이 없으면 무슨 재미 인가요? 인생은 히노애락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 번이나 다녀오신 이글 님의 조언에 문득 깨달음이 왔다.
그리고 다시 선재길로 들어가 계곡이면 있음직한 계곡과 계곡을 이어주는 흔들다리를 지나 상원사 입구에 도착했다. 총 9km라고 했지만 너무도 쉽게 끝나서 마치 십리쯤 걸은 것 같았다.
첫 관문에는 나를 시험하는 문구가 내 마음을 사로 잡는다. '나는 누구인가'
두렵다는 생각이 왜 들었을까?
'나는 누구인가....'
억불정책을 고수했던 조선에서도 세조는 상원사와 인연이 깊은지 세조와의 전설이 많다. 조카를 죽이고 왕에 올라 지은 죄가 많은 세조가 마음을 다스리는 데 끝판왕인 종교를 나 몰라나 할 수 있겠는가?
상원사에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풀리지 않는 고차원의 숙제를 안고 다시 산행버스를 타고 월정사로 내려 와 전나무 숲길로 갔다.
바닥에 떨어진 꼬깔꼰을 마음씨 착한 미진 대장님이 주어서
다람쥐에게 내밀자 재빨리 받아가지고 도망간다. "어머나" 소리가 숲속을 울리고.
사진으로만 보던 다람쥐가 월정사 숲속에 많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성황각이 보인다. 성황각 안에는 참배를 하는 참배객도 있었다.
따로 또 같이를 인정하는 불교계를 존경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