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산행기

북설악 새이령

NaMuRang 2019. 6. 12. 09:32

전시행정과 위로

무성한 나뭇잎이 병풍처럼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고 넓은 창문 너머로는 초등학교 운동장이 펼쳐져 있다.

책가방을 맨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종종 걸음질 치며 교문을 빠져나간다.마치 병아리들처럼.

텅빈 운동장에 축구공을 날리며 아이들이 달려다닌다.

한참을 축구공과 운동하던 아이들도 가고, 다시 텅빈 운동장.
석양빛이 운동장에 잠길 때까지 자리에서 떠나지 못한다.
숲속에 나의 집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집은 아니고 숲속에 보기에도 그럴듯한 건물이 있다.


이름은 "중앙도서관" 이지만 동네 중앙에 있는 것은 아니고 동네 외각 숲속에 있는

나의 영혼에 안식처였던 시립도서관. 한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갔지만, 바쁜 일상은 차츰 발길을 멀리하게 했다.
물론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새로 생긴 도서관이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생각이 나곤 한다.
장미정원도 잘 있겠지....

마치 두고온 애인을 만나러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랫만에 중앙도서관을 간다.


도서관이 생기고 얼마있다 도서관 가는 길목에는 장미정원이 조성이 되었다.

장미정원을 보고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우리나라 전시행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금에 장미정원.
처음 몇 년간은 정열에 화신 흙장미꽃밭, 순백의 여신 백장미꽃밭, 청순한 새댁같은 분홍장미꽃밭,

색감이 예쁜 살구빛의 주홍장미꽃밭,
나도 장미라고 해맑게 웃던 찔레꽃이 서로 어울어져 장미정원을 향기천국으로 이끌었다.

작년까지도 이정도로 심각하지 않았는데


잡초만 무성한 장미정원을 바라보며 왜 그렇게 화가 났는 지 모르겠다. 꿈이 깨어진 허망함이 교차되면서.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도서관으로 갔다.
운동장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도 황폐화된 장미정원의 풍경이 뇌리에서 떠나질않는다.
아....위로를 받고싶다.
신록이 우거진 한적한 숲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북설악 새이령 숲속에 비밀

6월 둘 째주 일요일은 새이령으로 정기산행이 있는 날이다.
하지만, 비바람이 강하게 불고 지역에 따라서는 우박도 내린다는

일기중계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일기예보에 은근히 심란해지려고 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유야 어떻든 산행을 하겠다는 각오만큼은 실로 대단했다.
우중산행에 필요한 우의, 우산을 꼼꼼히 챙겨 배낭에 넣으며
혹시나 싶어 강원도 지역 일기예보를 다시 한번 클릭한다.
이른아침 드넓은 하늘에 두툼하게 내려앉은 비구름에 눈치를
보며 새이령산행 버스가 기다리는 군자역으로 갔다.
한 달만에 만나는 산우님들과 반갑게 안부인사를 주고 받으며 산행버스에 올라갔다.
산허리를 펑펑 뚫은 터널을 산행버스는 거침없이 달려간다. 산부자동네 강원도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한때는 "인제가면 언제 오냐"고 한탄 했던 오지마을 인제 가까이 오자
황태구이를 파는 음식점들이 차 창문 너머로 지나간다.
용대삼거리를 지나 특별하게 꾸며져있지 않아 자칫 지나치기 쉽상인

박달나무쉼터 주차장에 새이령산행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하늘부터 보게된다. 비구름이 금방이라도 일을 저지를 것같이

심히 위태로워 나도 모르게 들머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대리 박달나무쉼터가 오늘 새이령산행 들머리다.


숲길에 들어서니 시원한 계곡물이 먼저 우리를 반긴다.
하얀포말을 일으키며 줄기차게 흐르는 계곡물에 놓인 천연징검다리 바윗돌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건너편 숲속으로 들어갔다.


언더길에서 새하얀 찔래꽃을 만났다. 어쩐지 향긋한 꽃내음이
진동하여 어디서 나는 걸까 호기심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바로 너네들였구나.

나만 아는 것도 아닌데 찔레꽃이 있다고 산우님들께 자랑질을 한다.

마치 소중히 간직한 보석을 보여주는 것 처럼..
찔레꽃 꽃내음에 마음 한자락을 적시며 발걸음도 가볍게 산행은 계속되고.
다시 계곡물에 있는 천연징검다리 바윗돌을 만나 계곡물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나뭇잎를 세차게 흔들고 지나가던 바람이 잠시 내곁에 와서 머문다.
가슴 가득 그들을 맞으면서 오늘 산행에 동반자이기를 얼마나 희망했던지

바위틈에서 물이 주르륵 떨어지는 약수터가 보인다.

약수터에는 스텐대접이 약수물을 받으며 우리를 기다린다.
 21세기 약수물은 조롱바가지 대신에 양옆이 찌그러진 스텐대접에 마시는 거라며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한다.


가슴이 얼얼하게 시원한 약수물을 마시고 비탈진 언덕길을 따라 작은새이령(해발570m)에 도착했다.

들머리 박달나무쉼터가 해발 400m에서 시작했으니 작은새이령까지 170m 올라 온것에 불과했다.
가볍게 올라왔다 생각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고한다.

커다란 나무둥치에 삼각형으로 지은 지붕안에 자그마한 상이 있고 상 위에는 사기그릇이 있다.

삼각 지붕위에는 나라안에서 산행 온 산악회 리본들이 빨래줄에 빨래처럼 가지런히 매달려있어

마치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하고 간 것같은 분위기도 풍긴다.


작은새이령에서 잠시 발길이 멈춘 우리들은 다시 산행은 계속되고

보라빛 붓꽃이 산우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너도나도
붓꽃을 보며 예쁘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깊은 산중에 보라빛 붓꽃.
돌보는 이 없어도 외로움을 묵묵히 견디며
고운빛으로 승화한 그들의 자태에 눈맞춤을 멈출 수가 없다.

 

설악산답게 울창한 수풀림이 도심에 지친 심신에 피로를
풀어주고 있어 산행하기를 잘 했다고 나도 모르게 시인한다.
계곡물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한다.
때론 저음의 그윽한 첼로협주곡을, 때론 속삭이듯 달콤한 바이올린의 선율로,

때론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피아노 소나타로
그들은 산행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줄곧 우리와 동행하며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그들의 연주에 귀기울이며 마장터에 갔다.
마장터에는 통나무 집 한채가 있어 어쩌면 여기가 포토존이
아닌가 싶어 우리들은 담장도 없는 집에 무턱대고 들어갔더니
나이가 지긋이드신 어르신께서 " 출입금지"라고 말씀하시며 말들의 휴식처 마장터는

어르신이 살고 계시는 통나무 집터에서 반경 10km라는 새로운 정보도 가르쳐주신다.
임기웅변에 있어 둘 째가라면 서운해하시는 산우님들은 오해없이 말씀을 잘 드려

이야기가 잘 통한 우리들은 통나무집 주인어른과 같이 풀이 수북한 마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주인어른의 지리산 시 낭송을 듣는 행운까지 덤으로 챙겼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 새이령으로 산행길에 나선다.
산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어느 산이나 있는 깔닥고개다.
될 수있음 힘들지 않게 올라가려고 가볍게 할 수있다고 자신감을 마구마구 쏟아 붓는다.
숨이 턱에 찰려는 순간 하늘이 보이고 새이령(650m)고개에 올라섰다.


짚신을 신던 시절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의 물자교류 루트였던 새이령길은 북설악에 있다고한다.

새이령에 올라오면서 너덜길 전혀 없는 흙길이라 발길 닿는 곳마다 이루말할 수 없이 부드러웠다.

특히나 비가 다녀가면서 먼지까지 사라져  최적의 산행환경을 조성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개가 숲속에 가득하다. 마치 비밀의 정원 한 장면 같기도하고.


산행을 하면서 안개도 여러 번 만났지만 안개는 언제나 적막감과 고즈녁함

그리움 그리고 약간에 두려움이 전부였다.
하지만, 북설악 새이령에서 만난 안개는 꽃처럼 피어 신비롭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숲속 가득한 안개가 아름다워 감탄사가 연신터졌다.

왜 안개가 아름답기만 했을까?

2019.6.9

NaMu

애필로그

<새이령 계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