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산행기

발왕산행

NaMuRang 2016. 1. 13. 10:30

올겨울 슈퍼엘리뇨가 왔다고 한다.
저만치서 슈퍼엘리뇨 눈치만 살피던 강추위가
소한이 되자 재빨리 찾아 와 기승을 부린다.
날이 갈 수록 기온은 영하로 뚝뚝 떨어진다.
"우째 이런일이...."
겨울한파는 당연지사라 할지라도 산행을 코앞에
두고 추워지는 날씨가 야속한것 또한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추위가 고문인 나같은 사람에게는 목화솜이불 덮고
침대에 파묻혀 스마트폰으로 영화 다운 받아서 보거나

인터넷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 이보다 더 좋은 휴식은 없을 텐데
굳이 배낭을 챙기며 산행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나 자신에게 의문을 던져 본다.
병신년 새해 둘째 주 일요일은 발왕산으로 정기산행이 있는 날이다.
겨울산행의 필수품 아이젠과 스팻치를 챙기면서 가벼운 설레임과 민폐를 끼치지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교차한다.
짙은 어둠이 가시지않아 더춥게 느껴지는 신새벽 발왕산행 버스가 있는 사당동으로 갔다.
서 너달만에 뵙는 산우님들께서 반갑게 맞이하여 주신다.
산우님들과 인사를 주고 받으며 집안행사때 만나는 가족같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어두운 한강물속으로 네온사인 불빛이 서로 엉클어져 비치고있다.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문득 떠 오른다.
하지만 21세기 서울 밤하늘에 별들은 자취조차 희미하여 도심의 속살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는

처절한 불빛만이 어둠에 한강물을 지키고 있을 뿐이라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면서

차창너머로 네온불빛의 한강물을 응시했다.
아침햇살이 없어 스잔한 농가의 풍경들이 차창너머로 가까이 다가왔다 멀어진다.

굴뚝과 아침짓는 연기가 사라진 농가의 모습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내 어린시절과

어찌그리 흡사한지
아침짓는 연기내음에 흠뻑 취해보고싶다는 희망사항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발왕산행 버스는 강원도 평창군으로 달려간다.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용산 주차장에 발왕산행 버스가 도착했다.
잿빛구름과 숨밖곡질하던 햇님이 제정신을 차리고 우리를 맞이한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속빈강정처럼 세차게 불어제키는 찬바람을 이기지못해 춥다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든다.
산행을 하다보면 찬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질거라 애써 위로하며 곧은골길을 따라 들머리로 향했다.

들머리 입구에 있는 친절한 발왕산행 안내판에 잠시 머물르며 윗곧은길을 따라 산길을 올라간다.
아스라이 먼 산봉우리에는 오늘 최종 목적지 드래곤피크가 보인다.

들머리 초입부터 경사진 언덕길였지만 전국 각지에서 모인 등산객들로 인해

출근길 러시아워를 방불케하는 정체현상은 산행을 과히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어 

사람이 많아서 덕 볼때도 있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찬바람이 칼바람으로 변신을 거듭해 무섭게 불어대며 바람소리 또한 매몰차다.

마치 시베리아 벌판을 횡단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누가 찬바람이 산행을 하다보면 시원하다고 했어  취소닷!

칼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가볍게 들머리 용산에서 1km까지 왔다는 친절한 안내 표시판을 지나쳤다.

비탈진 산 중턱 낙엽밭에는 눈이 얼다녹다를 계속하면서 굵은 소금을 골고루 뿌려 놓았다.

마치 김장을 하기 위해 배추를 절구듯 얼음결정체가 낙엽들을 절구고 있었다.

제법 가파른 산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 가도가도 능선은 나타나지 않는다.

잔설이 언듯언듯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새하얀 눈이 덮혀있는 인적이 드믄 눈밭을 만났다.

인적이 스치지 않아 백지처럼 새하얀 눈밭에 손편지를 쓰라고 스틱이 펜을 자처하며 부추긴다.

할 말은 많지만 잠시 망설여본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눈이 소복이 쌓여있는 깔닥고개 앞에서 총대장님이 아이젠을 신으라고 조언하신다.

아이젠을 신자 갑자기 발거움이 더욱더 느려진다.

한 발 한 발 내 딛는 것이 힘에 겨웠지만 고갯마루에 상고대가 어서오라고 손짓하고 있어

마음은 이미 고갯마루에 가 있었다.

겨울나무에 피는 서리꽃 상고대.

눈과 칼바람의 합작품 상고대는 고난의 상징이다.

나무결 사이사이에 피어난 상고대의 아름다움에 반해 산우님께서 감탄사를 연방 날리신다.

특히나 주목이 많은 발왕산이고 보니 주목에 피어난 상고대의 신비스런 모습은

우리들의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고 있었다.

발왕산 상고대

나뭇결 사이사이 곱게 피어난 서리꽃이여

고난을 잉태하여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구려.

내 잊지 않으리 고난의 흔적들을.

 

칼바람이 무서워 조끼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쓴 내 모습이 산적마누라 같다고

산우님께서 말씀하신다.

산적마누라도 상고대의 아름다움에 반해 기념 사진을 찍는 호기도 부려본다.


상고대 곱게 피어있는 눈밭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볍게 점심식사를 하고

발왕상 정상으로 향한다.

발왕산은 정상이라고 해야 여느 산과는 다르게 산길에 발왕산 정상 1458m라는

나무표시판이 전부이다.

발왕의 전설에 나오는 발왕처럼 산 정상은 지극히 초라하지만 스키의 매카라고 하는

용평리조트가  있는 것 또한 발왕산이다.

 

발왕산에서 올해 처음 눈을 보았다.

도심에서 눈이라는게 그저 불편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눈오는 날이 싫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산속에서의 눈이란 동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어린시절로 돌아가 천진난만한 영혼을 되찾는 기회가 되기도한다.

포근한 침대속에 파묻혀 내가 선호하는 영화나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 평화의 안식처라고

인식했던 지친일상에서 산행을 해야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산길 풍차마을 선자령이 그림처럼 펼쳐저 손을 뻗히면 잡힐듯 한눈에 들어온다.

이국적인 풍경은 마치 남의 집에 온듯 낯설었지만 대자연을 정복하는 인간의

지혜만큼은 경외 대상이다.

2016.1.10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