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성 그리고 궁남지
의자왕 다시보기
효심이 깊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여 '해동증자'라고 불렸으며 아버지 무왕의 과업을 이어받아
신라성 40개를 함락시키며 승승장구 했던 왕이 몰락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나 콤모두스 황제 정도로 치부하여 사치와 향략을 일 삼아 왕조가 무너졌다는 전설만 남긴 채.
삼국의 분란을 우리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세를 끌어들여 국토의 반을 당나라에게 넘겨주었던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저질렀던 사건에 분노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의자왕의 몰락은
진한 아쉬움으로 회환이 됩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E.H.카는 이야기 합니다.
백제 사비시대 부여를 여행하기 전에 가장 먼저 의자왕이 떠 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어느 만큼이 진실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백제문화단지에서 일본을 보다.
마른 장마에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하더라도 여행에 대한 열정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잠자고 있던 백제도 지자제 경제 활성화에 힘 입어 다시 태어나는 부여로
지구촌 여행방에서 여행을 떠 났습니다.
700년 백제 문물을 한눈에 볼 수 있게 17년 동안 공들여 조성했다고 하는 백제문화단지가 있는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주차장에 지구촌 여행버스가 도착을 했습니다.
친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비궁으로 가기위해 정양문을 향합니다.
정양문 용마루 끝에 얹어진 치미가 창경궁이나 경복궁에서 보았던 치미와는 상당히 달라
내눈을 사로 잡습니다. 매의 부리같이 날카롭게 생긴 치미가 사진으로만 보았던 교토의 헤이안 신궁 치미와 흡사하여 이국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일본의 궁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특히나 백제 사찰을 재현 해 놓은 능사의 5층목탑 상층부에 있는 황금빛 상륜은 예사 사찰에서 보았던 석탑하고는 전혀 달라 이국적인 풍경이기는 매 한가지 입니다.
능사의 5층목탑 역시 일본에 있는 호류사 5층목탑과 흡사하다고 하니 과연 백제 문화가 일본의
아스카 문화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어 일본 36년의 식민지가 주객전도 같이 새삼스럽게 괴씸하기만 했습니다.
여전히 이색적인 용마루 치미에서 애써 눈길을 거두며 사비궁 안으로 들어 갑니다.
물론 지금처럼 작지는 않았겠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미니어쳐 사비궁궐안에서 700년
백제 향수에 젖어봅니다. 왠지 정복 당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는 것은 마지막 왕조가 숨쉬던
기운이 남아서 일까요.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합니다. 백제 영웅 계백 장군의 군관 주택을 비롯하여, 귀족들의 사택,
건축가 아비지, 의박사 왕위능타, 오경박사 단양, 악사 미미 그리고 도미설화의 주인공 도미 집까지
백제를 대표하는 17명의 거주지를 통해 백제인들의 일상을 소상하게 볼 수 있는 생활문화마을과,
백제 탄생을 알렸던 한성시대 도읍지를 재현 해 놓은 위례성, 그리고 사비시대 고분까지
3코스 체혐형으로 일정을 잡는다면 3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갈 길이 바뻐 1코스 단축형으로 일정을 잡아 사비성문을 나서니 자그마하게 조성된
인공 연못에서 연꽃들이 화사하게 미소지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소산성에 어린 망국의 한
백제 사비시대를 피부로 실감 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부소산성 인듯 합니다.
주차장 아스팔트 지열을 피해 나즈막한 언덕 숲속으로 들어서니 울창한 나무들이 무수히 많은
나뭇잎 팔랑거리며 찜통 더위의 열기를 식혀주고 있습니다.
천 오백년 전 축성 되었던 산성이 때론 허물어지고 때론 온전하게 견디어 낸 기와담장길을 따라
가면서 여러가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충신였던 성층과 흥수의 직언을 의자왕이
귀 담아 들었다면 신출귀물 계백장군도 신라와의 전투에서 백전백승 했겠지만,
국운이 쇠하다보면 의기충천했던 왕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되나 봅니다.
의자왕이 직접 당나라에 항복을 한 것이 아니라는 역사학자들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어보지만
결과는 의자왕과 태자 대신들 장병들과 백성 1만 2000명이 당나라에 포로로 압송 되었다고 합니다.
백마강 물이 훤히 보이는 낭떨어지 가파른 바위가 그 유명한 낙화암이라고 합니다.
낙화암 위에 우뚝 서 있는 팔각정자 백화정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의자왕 당시 사비성 인구 비례 3천명 궁녀가 있다는 것은 낭설에 불과 하겠지만,
어쩌면...남은 자의 설움을 죽음으로 자리매김해야하는 망국의 한이 절절하기에 우리는
대를 이어 낙화암이 화제가 되는가봅니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저 멀리 백마강 물결을 가르며 유람선은 유유히 떠 가는데...
연꽃 체험은 궁남지에서
서동왕자의 러브스토리가 설화라 하더라도 서동요 만큼은 우리나라 최초의 향가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합니다.
서동 왕자 무왕 재위 35년(634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었던 인공정원 궁남지에는
연꽃이 한창 입니다.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연못에 연꽃이 피어 있을거라 상상을 했었는 데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놀라울 뿐입니다.
그야말로 구리시 토평리에 있는 코스모스 꽃밭처럼 연꽃밭 사이를 걸으면서
손으로 직접 연꽃을 만저 볼 수 있다는게 너무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난생 처음 내 얼굴보다 커다른 연꽃 속에 폭 파묻혀 연꽃 향내음을 마음껏 들이 킵니다. 꿀벌처럼
연못 위에 있는 구름다리를 건너 온 행락객들은 포룡정을 잔치집으로 탈 바꿈 시키고 있는 것을
건너 편 버드나무 아래에서 한가롭게 바라보았습니다.
삼국의 맹주로 그 위세를 떨쳤던 무왕이 거대한 인공 정원 궁남지를 만들며 국고를 낭비하여
백제가 망하는데 일조를 했다는 역사학자들의 주장도 있지만 후세 시비성 부여에 사는 백제인들은
그로 인해 가계에 보탬이 되고 있으니 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궁남지 연꽃축제는 7월 13일부터 7월 20일까지 있다고 합니다.
2014.7.13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