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한옥마을과 창경궁
남산한옥마을에서 봄을 만나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린 연분홍 벚꽃들은
남산골한옥마을 정문 단청의 알록달록 고운모습을 무색하게 하며 '봄'이라고
활짝 웃음을 터트린다.
그들의 웃음은 아직도 겨울 기운이 감도는 내 가슴에도 봄에 싹을 흩뿌린다.
특별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혼자서 잘 하는 아이처럼 그렇게 봄은 내 곁을 찾아 오고있다.
기특한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자랑 할수 있다면 누구나에게 행복을 전염하겠지만
문제는 나에게 그런 재능(?)이 없다는 거다.
현대 첨단 기계문명의 혜텍은 손으로 일일이 찝어쥐고 시행해봐야 깨닫는 지독한 기계치인
나에게도 골고루 받아 카메라를 손쉽게 장만 할 수 는 있어도
카메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한계효용의 법칙인지라.
아주 우연한 기회에 카메라를 장만했고, 그로부터 2년쯤 지나 아주 우연한 기회에
카메라를 선정해 주셨던 전문적인 사진작가님과 봄이 꽃 피우는 남산골한옥마을과
창경궁에서 출사를 하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초가지붕의 헛간에는 지게가 단잠을 자고 있는 남산골한옥마을.
사리빗자루와 새끼 줄을 꼬아 만들어 마른 잡곡을 담아 두었던 그릇들이
마치 공예품인양 정자의 나무기둥에 매달려있다.
굴렁쇠를 돌리는 아이들의 분주한 발길.
기와지붕을 얹은 돌담길 너머로 봄바람에 휘날리는 청사초롱이 어서오라고 손짓하여 나도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솟을 대문간에 들어서면 남산골 선비들의 육간대청과 장독대 위에 커다란 장독들이
가지런히 엎드려 문안인사를 드리며,
여닫이 문에 바른 티없이 맑은 새하얀 창호지가 거억할 수없는 순결한 우리민족의
영혼이라고 넌지시 펼쳐보이고 자랑을 잊지 않는다.
한양천도가 과연 잘한 일인가를 역사가의 몫이라고 밀어 붙이기에는 낯 뜨거운 일이지만
아무튼 "서울(한양)정도 600년이 되던 1994년 수도 방위사령부 부지에 남산골한옥마을을
조성하면서 600개 품목을 선정하여 지하 15m에 매장하였다"는 타입캡슐은 남산타워가
휜히 보이는 언덕에 있다.
새 천년에 개봉할 예정이라는 타임캡슐 400년 후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오후 햇살이 가득한
정원길을 걸으며 연못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비단잉어를 보았다.
겨우네 꽁꽁 얼어 붙었던 얼음물 속에서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풀리지않는 의문에
무한한 애정이 솟아 올라 나도 모르게 카메라에 손이 간다.
앞서가시던 사진작가로써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청산님(실제로 대학원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셨던)께서 찍지말라고 엄하게 말씀하신다.
무턱대로 찍는게 사진이 아니라는 완고한 지론은 어쩌면....타협하기 힘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셨기때문에 사진작가로써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닌가 싶어 마냥 부럽기만하고.
창경궁의 봄
창경궁의 봄은 청매화와 함께 시작하는 건 아닐까 싶다.
사대부가의 정치였던 조선에서는 매화꽃이 그들의 상징쯤으로 여기는 발칙함을 보이기도 했으니
꽃만큼 시대를 초월하며 존재의 가치를 빛내는 게 또 있을까!
매화중에 가장 매혹적인 향기를 자랑하는 청매화의 향기를 마음껏 들이킨다.
달콤한 꽃향기에 취해 행복열차에 합류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며.
벚꽃들도 흐드러지게 피어 연못가를 연분홍정원으로 수 놓으며 이른 봄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화려한 그들의 모습에 사로잡혀 연못가 다리에는 어른들도 아이들도 떠날줄을 모른다.
식물원 가는 길목에서 진달래를 만났다.
사진을 같이 찍던 사우님께서 어린시절 엄마가 해 오시던 나뭇단 위에 진달래가 꽂혀있었다고 하신다.
-어느 소년의 진달래꽃-
저녁거리 나무 한 짐 머리에 이고 바쁜 걸음 재촉하는 엄마를 만났다. 소년은
나무짐 위에 꽂혀있는 연분홍 진달래꽃잎이 소년의 허기진 배를 달래준다.
황혼의 긴그림자 따라 새싹이 파릇파릇 올라오는 밭두렁길을 엄마의 허리춤 꼭 붙들고 종종걸음치는 소년이여!
엄마의 마음같은 진달래꽃이
오후햇살을 맞으며 연분홍 속살까지 투명하게 변해간다.
여디디 여린 연분홍 꽃잎이 가여워 담뿍 정이가는 진달래.
꽃을 보면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왜 드는 것일까?
꽃처럼.
2014.3.30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