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영아일시보호소를 다녀와서
보상받은 게으름보다 행복한 활동
몸도 마음도 물 먹은 솜마냥 축 늘어져
긴장에 연속였던 한 주의 피로를 게으름으로 보상받고 싶어한다.
창문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에는 해 맑은 아기들의 모습이 보인다.
제 정신이 들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오늘은...누가 있을 까' 호기심 또한 억누를 수 없어 가볍게 흥분하고 말었다.
한 해를 시작한지가 엊 그제 같은 데 눈 깜짝할새 한 달이 미련없이 훌쩍 날아가던
1월 4째주 일요일날 서울 영아 일시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이 있었다.
일 년동안 수고 하실 팀장님을 위해 악세사리 매장에서 선물 잠깐 고른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약속시간을 맞추려고 조바심을 쳤지만 역부족이다.
이미 봉사활동 친구들이 떠난 자리에 뒤 늦게 나타나 역삼역 출구를 재빨리 나오자
휴일답게 한적한 길거리가 한결 마음에 여유를 찾게한다.
영아원(서울영아일시보호소) 대형 유리정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경비아저씨에게 인사를 해야하는데 어떻게 하지 순간 망설여진다.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고개를 숙였다.
넉넉한 맘씨를 자랑하는 경비아저씨가 "아~ 4050에서 오셨죠!" 웃음지으면서 알아보신다.
얼마나 반갑던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 하고는 발걸음도 가볍게
경비실 옆 가운실로 향했다.
서둘러 임부복같은 분홍색 가운을 갈아입고 3층 다람쥐 방으로 갔다.
잠이 보약이다.
봉사활동 친구들과 아기들은 방바닥에 깔아 놓은 폭신한 스폰치매트 위에 앉아 놀고 있었다.
아기들의 놀이터 스폰치매트 위에 엎어져 마치 개구리처럼 손과 발을 사방팔방으로 휘져으며
혼자 놀고 있는 아기를 얼른 안았다.
깐돌이처럼 귀엽게 생긴 아기가 가쁜하여 어지간히 입이 짧은 아기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보행기에 있는 아기에게 이유식을 끝낸 보모선생은 엄지손톱보다 더 작게 자른 치즈를 아기들 입에 넣어 주라고 봉사활동 친구들에게 준다.
나도 받고 싶어 보모선생을 바라보니 "하윤이는 안 돼" 목이 아프니 보리차나 먹으라고 한다.
아쉬운 마을을 접으며 보리차를 기다렸는 데 정량의 우유가루를 섞지않아 멀건 우유가 들어 있는
우유병을 보모선생은 건낸다. 보리차 보다야 ...영양식이라도 받은 양 아쉬운 마음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왼편으로 아기를 비스듬히 안고 아기 입에 우유병 젖꼭지를 넣었다.
우유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며 아이가 우유를 잘 먹고 있다고 신호를 보낸다.
아기가 가쁜하여 입이 짧은 아기같았는데 의외로 우유를 잘 먹고 있어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우유 먹이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아기 이마에서 땀이 진득하게 베어난다.
쉼 없이 우유 젖꼭지를 빨아대는 아이가 눈을 감었다 떳다하면서 선잠이 들어간다.
영아원 아기들의 특징중에 하나는 잠을 자면서 우유를 먹는 아기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기가 잠 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우유병 젖꼭지는 절대로 아기 입에서 빼지 않았다.
우유병 가들 차 오르던 우유거품이 잦아들어 없어 질때까지.
영아원 봉사활동 햇수로는 5년 만에 우유병에 우유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이기는 처음이다.
나에게도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정석대로라면 아기를 안고 트림을 시켜야 하겠지만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온 몸에 땀이 진득하게 베어 선잠자는 아기를 포근히 감싸 안고
곤히 잠들기를 기다렸다. 주말내내 기침하고 열나고 아펏다는 하윤이가 땀을 뻘뻘흘리며 한숨자고 나면 개운하여 몸살감기쯤 물리칠 수 있을거란 확신은 이미 나도 충분히 경험 해 봤기 때문이다.
언제나 청춘
방배동 성당에서 오신 봉사활동 친구들이 청소기를 가져 와 아기들 침대를 밀었다 끌었다하면서
구석구석 먼지를 잡아내신다. 오랫만에 보는 어르신들이 반갑기는 했지만, 혹시나 하윤이가 깨지 않을까 싶어 좌불안석하며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늘 일방통행인 내 자신은 구제불능이다.
청소기 미는 작업이 끝나고 걸레질까지 정성스럽게 하시면서 즐거워하시는 봉사활동 어르신들을
보면서 청춘이 다른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 달에 한 번 스치는 인연였지만 지금처럼
건강하셔서 오랫동안 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마도 모르시겠지.
언제나 청춘은 어르신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나이가 비교적 젊은 트윈클님은 평일에도 영아원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 아기 보는데는 프로다.
저만치에서 아픈 아기를 보시느라 격리되어 계신 회장님께서 하얀머리 휘날리며 자신도 청춘이라고 어설픈 몸짓을 하신다. 거목처럼 우람한 체구로.
보모선생이 저녁을 먹고오면 아기들은 목욕을 해야한다.
소아과에 근무하여 아기들과의 인연이 남다른 아마도그럴껄님께서 보모선생을 도와 목욕하는 아기들 옷 벗기고 입히는 일에 솔선수범하고 계신다.
하윤이는 아퍼 목욕도 할 수가 없다. 토끼잠을 자듯 한숨자고 난 하윤이는 진땀을 흘리며
내 품안에서 놀고 있다. 몰론 적절한 치료야 하겠지만 영아원 아기들에게 아픔은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아퍼도 혼자 아퍼야 하는 아기들. 하윤이 이마에 얼룩처럼 번져있는 진땀이 내 슬픔처럼 가슴에 스며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품 안에서 떨어지면 울기만하는 정에 굶주린 아기를 잠시 후에 오는 모델아가씨들에게 떠 넘기고 뒤 돌아 서며 아무일도 없었던 처럼 잘 있으라고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다.
봉사활동이 때론 마음이 무겁게 다가 오는 날도 있다.
사방에 짙게 깔려있는 칠흑의 어둠처럼!
2014.1.26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