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행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소식에 검단산행 배낭을 매다
거무스름하게 아스팔트로 뒤 덥힌 도심의 풍경에 익숙해지다보면
계절이 주는 오묘한 조화를 잊어버리기가 싶다.솔직히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지도 한참이나 되었지만 내 일이 아닌것처럼 차일피일
미루다 드디어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검단산행을 가기위해 배낭을 챙겼다.
가을 향기 물신 풍기던 보라빛 쑥부쟁이와 밤송이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경기도 하남시 창우동)뒷길을 따라 나무들이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서자
뾰족한 가시로 중무장하고 알밤을 보호하던 밤송이들도 이제는 숲길에 흩어져
입을 크게 벌리고 가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풍요로운 가을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숲속을 올라가는 데 보라빛 쑥부쟁이가 가을향기 물신 풍긴다.
그들의 고혹한 향내에 취하다보면 고단한 삶에 찌든 내 마음도 희석시켜주는 신비의 묘약인듯 하여
오랫동안 가슴에 간직되는 꽃이기도하다.
쑥부쟁이가 솔솔 풍기는 향내를 가슴속 깊이 들여마시기도 하고 숲속길에 흩어져있는 밤송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숲길을 올라가자 저만치 묘지 앞에서 산우님들이 쉬고 계시는 모습이 보인다.
'서유견문'작가이자 근대 개혁의 선구자로 알려진 유길준(1854~1914)님의 묘지가 있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묘지 구석구석을 뽀송뽀송하게 비쳐주고 있다.
암울했던 식민지시대 지식인으로써 그의 남다른 나라사랑이 한 세기후에도 검단산을 찾아오는
산행꾼들에게 이정표를 삼을 수 있으니 나도 모르게 발길이 돌계단으로 올라서고 말었다.
나무잎사이로 언듯언듯 강이 보이기 시작하자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단숨에 보고 말거라'는 조바심을 달래기는 무척이나 힘이들다.
소나무 사이로 팔당대교가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
팔당 대교 아래로 흐르는 블루 사파이어빛 물줄기와 파아란 하늘이 환상적인 조화에
좀더 욕심을 부리며 줌을 당기자 미사리 조정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직사각형의 조정경기장은 마치 수영장인듯 아련하다.
그들과 잠시 눈맞춤만하고 산행은 계속 되었고,
정상으로 올라 갈수록 가을빛은 완연하다.
햇살이 곱게 스며들어 빨갛게 피어난 꽃잎같은 단풍잎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마치 자신의 책임처럼 언제나 후미 산우님들을 챙겨주시는 만년 후미대장 한무님께서도
"벌써 단풍나무에 물이 들었네요...산에 오면 평상시 지나치고 생각조차 못하는 것을볼 수가 있어유!"
아직도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남아 있는 그의 목소리에서 '산사랑'의 지극한 마음을 느낄수
가 있었다.
눈이 시리도록 고운 단풍잎은 마당쇠같은 싸나이 가슴에도 잊었던 감성을 불러오는
힘이 있는가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뭇잎에도 가을햇살은 곱게 부서지고 있다.
초록빛나뭇잎이 어느사이 노르스름하게 변하여 갈색으로 점점이 점을 찍으며 가을옷을 갈아 입은 그들의 황혼은 그 어떤 글로도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화려함이기에 누구나가 보고싶어 하는건
아닐런지
젊은이들이여...화려한 황혼을 위하여 앞으로 전진^^
백제 한성시대 제단을 쌓아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신성한 산
검단산(黔丹山)이름 그대로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낸 신성한 산이라고 하는데
백제 한성시대(기원전18년~서기457년)에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숭산이라고한다.
검단산(657m)정상이 눈앞에 있다.
팔당대교와 함께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뚜럿하게 보인다.
날씨가 화창하긴 했다하더라도 가시거리가 좋지않아 손에 잡힐듯 선명하게 잡히지는 못했지만
강과 어울어진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져있는 풍경은 과연 제단을 쌓고 왕이 제사를 모실만한 산이란
생각이 저절로 들게한다.
과히 힘들지않게 산행을 즐길수 있는 검단산이기에 강이 보고 싶은 어느날 가을날 산행이라면 추천해보고 싶다.
특히나 하산길에 군살 하나 없이 미끈하던 낙엽송 숲의 낙엽송들이 주홍빛으로 가을옷 갈아
입었을 때의 그 장관이란...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의 늪에 빠져든다.
2012.10.7
NaMu
에필로그:구리 한강 시민공원에서 '코스모스 축제장' 행사가 있다고 하여 산행 후에 잠시 들렸다.
차량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있어 코스모스 축제장에 갔을 때는 이미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없었다.
'석양빛에 물들은 코스모스'라는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보았지만 각본대로 움직여지지는 않았고
희미한 햇살 여운에 사진 한 장 건져 올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