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영아 일시 보호소를 다녀와서
가을바람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져내리는 담쟁이덩굴잎을
열 두어살 먹은 소녀가 달려가 잡는다.
빨갛게 물이든 담쟁이덩굴잎이 소녀 마음처럼 예쁘기만한데
속절없다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담쟁이덩쿨집 교회앞마당에는 예배를 마친 소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주홍빛으로 빨갛게 물들어버린 담쟁이덩굴잎을 잡기도하고 소곤거리는 그들을 보며
쟤네들이 가을의 깊은 뜻을 알기나 할려나 하는 의심도 해봤다.
이제는 도로변에 소복히 쌓여가는 낙엽이 깊어가는 가을이라고 몸짓하는
10월 4째주일날 서울영아 일시 보호소로 봉사활동을 갔다.
가운을 갈아 입자마자 예약이라도 한 것처럼 재빨리 3층 다람쥐방으로 올라가서
승헌이가 있는지 아이부터 찾았다.
침대 난간을 붙잡고서서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는 승헌이를 번쩍 안아 침대에서 꺼내
걸음마부터 시켜본다.
한 달전과 다름없이 걸음마는 전혀 늘지 않았다.
언제쯤이면 혼자 걸을 수 있을까하고 부질없는 조바심을 쳐보며
아이와 침대 서너바퀴 도는 걸음마 연습을 끝냈다.
승헌이를 안고 아기들을 가만히 보니 우리가 봉사활동 갔을 때는
아기들이 우유 먹는 시간이라는 것 조차 잊어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도 우유를 먹으면서 자는 아기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며
지금 승헌이만 안고 있을때가 아니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면서 우유를 먹는 습관이 들은 아기들.
강현이도 자면서 우유를 먹고 있었지만 우유 먹는 속도가 너무 느려
우유병 끝을 톡톡 쳐주자 깜짝 놀란듯 습관적으로 우유병 젖꼭지를 빤다.
여전히 느림보거북이가 보면 '형님'하고 손 내밀정도로 우유병 젖꼭지를 빨다 자다를
하던 강현이가 눈을 번쩍드고 쳐다본다.
눈이 머루알처럼 예쁘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아이를 안고 등을 톡톡 가볍게 쳐주자 크윽하고 트림을 한다.
트림도 했겠다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정량의 반정도 남아 있는 우유병 젖꼭지를
아이 입에다 넣어주자 먹기 싫다는 소리는 못하고 팔 다리를 사방팔방으로 흔들어대며
몸부림을 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 입에서 우유병 젖꼭지를 떼지 않자 기어이 울음보를 터트린다.
우유를 먹기 싫다고 우는 강현이.
방구까지 뻥 뀌면서 놀기는 잘하는데 우유는 먹으려들지 않는다.
눈도 예쁘지만 끼가 다분하여 손으로 가슴만 건들려도 까르르 웃는다.
물론 수다쟁이처럼 눈 마주치며 옹알이도 어쩜 그리 잘하던지.
2011년5월19일생 이 세상에 태어난지 불과 다섯 달 되었지만 타고난 유전자는
간난쟁이때부터 그 효과가 대단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강현이를 안고 침대 난간을 붙잡고 서 있는 승헌이한테로 갔다.
승헌아..."엄마"라고 해봐
돌쟁이는 엄마라고 할 것 같은데 딸아이 키운지가 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딸아이 한테 물어 봐야겠다고 농담은 했지만 눈까지 사시라서 눈맞춤조차 제데로 하지 못하고
침대 난간을 붙잡고 서있는 승헌이가 가슴이 절이토록 안타깝다.
좋은 가정의 양부모를 만날 수 있기를 나도 모르게 저절로 기도 제목이 떠오른다.
연신 웃음꽃을 피우는 강현이를 침대에 눕히자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으~앙하고 울음보를 터트린다.
손이 가슴에 닿기만해도 까르르 웃으며 시종일관 싱글벙글 오락프로그램 진행하는
개그맨같던 강현이도 인간의 숨결이 그리운가보다.
아기를 포근히 감싸 안으며 화답하니 세상일에 부대끼며 거칠어진 내 마음에도
사랑이 잉태되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2011년2월20일생 푸름이가 '엄마'라고 했다고 봉사활동 친구가 좋아라한다.
어쩌다 우연히 나왔던 실수(?)라 하더라도 그보다 더 좋은 사건은 없기에
푸름이를 유심히 바라보자 아이도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는다.
천사가 따로 있겠는가^^
아기들 목욕을 끝내고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여전히 침대 난간을 붙잡고 서 있는 승헌이한테 가서 잘 있어하고 아이 손을 잡아주며
서운해하면서도 다음달 왔을때는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 입양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기대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2011.10.23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