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죄인
언제나 죄인
직화구이 냄비에서 고구마 익는 냄새가 진동한다.
구수하고 달근한 내음에 군침이 고이며
문득 고향집에 계신 아버지 생각난다.
'잘 계신지...혹시나 서울집에 와 계신건아닌지...'
칠순이 넘으신 아버지
아직도 내 기억속에는 아버지랑 같이
내자동 뒷골목의 곱창집이나 하동관에 가서 곰탕을 먹던
40대 중반의 아버지로 각인되어 있건만 세월의 무상함이야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닌가보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아버지께서 봄부터 심고 가꾸웠던
고구마,콩,감,배,밤,쌀,찹쌀 등등을 보내주신다.
특히나 아직도 내가 칼질이 서투른것은 아버지께서 농사를 짓기시작하시면서부터
김장김치를 담아 보내주시기때문이라고 어뚱한 상상을하며
'잘되면 내탓 잘못되면 조상탓'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떠 올리라 싱긋 미소가 머금어진다.
물론 굵기가 한결같이 똑같은 무우채 솜씨하며 홍당무채로 무친 김장김치속이
육척거구에 두꺼비 손으로는 도저히 나 올수 없는 작품이다.
동네에서 손끝 야문 아낙네 품을 사서 김장김치를 하셨을거라는 어렴풋한 짐작은 하지만
김치를 담기위해 십리나 되는 장에가서 굴이나 젓깔 사오는일 마늘까고 파 다듬고
자질구레한 일은 아버지 몫이셨기에 어쩌면 겨우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사는건 아닐런지.
작년 가을에도 아버지께서 고구마를 3박스나 보내 주셨다.
고구마 한켜 놓고 그 위에 신문지 한켜 덥고 또 고구마를 놓고 그렇게
마치 통팥시루떡을 하듯 정성을 들인 고구마 박스를 보면서 죄인같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요사이는 계절과 상관없이 마트에 가면 고구마를 언제든지 살 수있어
영양식으로 다이어트식품으로 애용하는 고구마를 평상시에도 가끔 사다 먹지만,
추수가 시작되는 가을철이되면 아버지께서 보내 주실 고구마를 기다리며
고구마가 진열되어 있는 매대에는 얼씬도 않는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주홍빛 속살이 달콤함에 극치를 보이는 호박고구마,
새하얀 속살이 포실포실해서 알밤인척 하는 밤고구마,
질적하긴 하지만 직화구이 냄비에서 군고구마로 변신했을때
그 맛과 구수한 향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물고구마,
그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로 내 마음을 사로 잡는다.
그들의 미각에 반하여 퇴근후 군고구마 만드는 일 만큼 재미 나는 일도 드물다.
어제는 오랫만에 고구마 박스를 열어 보았는데 고구마들이 유난히 딱딱해 반을 자르자
시꺼멓게 변해버린 고구마 속살이 스펀지처럼 숭숭 구멍이 뚫려있다.
아~ 세상에나...먹을 식구는 적고 먹을 시간도 없어 고구마를 다 썩이고 말었다.
아깝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면서 썩은 고구마를 골라냈다.
아직은 겨울이 한참이나 남었는데 겨울양식 고구마는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썩여버리고 반박스도 채 남아 있지않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평생 입에 달고 사시지만
여전히 자식들을위해 어떤 희생도 치르시는 우리아버지.
후회 뿐인 내 삶에 그런 아버지가 계시다는게 너무도 자랑스럽다는 것을 아버지는 모르시겠지.
2011.1.20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