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Essay
간송미술관과 길상사
NaMuRang
2009. 10. 28. 09:39
간송미술관과 길상사 언제라고 꼭 집어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동네 예배당 담장이덩쿨은 가을이 왔다고 예배당에 울긋불긋 가을옷을 입혀놓았다. 해마다 그들은 가을이 되면 잊지도 않고 예배당을 찾아 와 유럽의 어느 유서깊은 고성쯤으로 변신시키며 예배당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아침마다 출근길 마음은 바쁘지만 여전히 눈길은 그들곁에서 떨어지지가 않는 것은 이쯤에서 나도 가을나들이를 해 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때문이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낮게 드리워진 잿빛구름때문에 파아란 가을하늘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10월 세째주일날 낡은 디카를 친구삼아 가을나들이에 나서본다. 심술쟁이구름사이로 이따금씩 비치는 가을햇살에 화사하게 미소를 짓는 샛노란소국이 도로변 화단에 가득하다. 그들의 고혹한 향기는 평상시 존재조차 모호한 꿀벌들을 불러들인다. 노오란 소국위에서 윙윙거리는 꿀벌들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이리저리 춤을 추듯 날아다니는 꿀벌을 내 고물 디카에 잡아 내기란 쉽지가 않다. 마치 잉태하지 못하는 내 사랑처럼...!
도로변 화단에는 노오란 소국만 있는게 아니다. 윤기가 반질반질나는 연초록빛 이파리가 풍성하여 더욱더 귀하게 여겨지는 옥잠화는 백합과 식물답게 하얀나팔모양에 향기가 얼마나 달콤하던지 마치 달콤한 아이스크림같다. 하지만 발칙하게도 꿀벌만한 왕파리만이 옥잠화꽃밭에 어수선하게 날라다니는게 아닌가. 어쩌면 제철이 지나버린 옥잠화이기에 꿀벌들은 이미 그들을 잊어버린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아무리 생각해도 왕파리는 괘씸하기만했다.
일년에 두번 춘추에 문을 여는 간송미술관.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에 가면 '도석인물화 특별전'을 10월18일부터 11월1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다.
일년만에 다시 찾아 온 간송미술관 도교와 불교를 소재로 한 그림의 도석화는 조선시대 오복(장수, 부, 건강, 편안함, 덕)을 담고 있다고하여 사대부들이 즐겨 소장하였다고한다. 단원김홍도(1745~1806년)의 달마가 갈대를 타고 졸면서 바다를 건너는 '좌수도해' 동방삭이 신선이 자신의 얼굴만한 분홍빛 복숭아를 두손을 받쳐들고 흐믓해하는 '낭원투도'(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 당나라 신선 장과가 나귀를 거꾸로 타고 몇가닥 남지 않은 허연수염에 만면 미소를 머금은 채 책을 들고 있는 '과로도기'와 노자가 함곡관에 나서다 '노자출관'에서 소를 타고 있던 노자가 무척이나 인상적였다. 오원장승업(1843~1897년)의 '삼인문년'(세사람의 나이를 묻다)에서는 표정이 제각각인 세사람의 신선과 섬세한 붓터지가 단연 돋보였으며 사슴이 선경을 수업하다의 '녹수선경'은 책상 앞에 공부하라고 모셔다 놓은 사슴. 연꽃잎에 타고 거친 파도를 심란한 눈길로 흘끗처다보는 신선이 무척이나 인상적였던 심사성(1707 ~1769년)의'승련부해'와 도사가 지팡이로 장난을 쳐 머리만 용으로 변한 용 또한 심란한 눈초리였던 김희겸(1710 ~ 1783년)의'도사농장'을 보면서 그들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표정은 요사이 우리네 삶에 깊숙이 스며들은 에니메이션을 보는 듯했다. 특히나 혜원신윤복(1758~?)의'문종심사'와'노상탁발''표모봉욕' '주유청강''납량만홍'은 당시의 풍속도를 고스란히 볼 수가 있어 타임머쉰을 타고 조선시대로 되 돌아간듯한 값진 경험였다.
정조의 총애로 한국적 도석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는 단원김홍도의 작품이 가장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건 겸재정선(1676~1756년)의 작품들이다. 우람한 나무들이 병정처럼 서 있는 절 앞에 소를 타고 온 선비와 그들을 황급히 맞아들이는 승려들의 '사문탈사' 를 한참이나 넋놓고 바라보다 간성미술관을 나와 길상사로 향했다.
길상사 문 안에 소담스럽게 매달려있던 주홍빛홍시가 내 눈을 사로잡는다. 역시 길상사에도 가을이 무르익는 구는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 고물 디카에 시선을 맞췄다.
사찰이라기 보다는 대갓집 잔치마당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건 활짝 문이 열려있던 극락전때문만은 아니였다. 의자나 책상도 없이 대청마루같던 도서관에는 방문객들이 빙 둘려앉아 담소중이였고, 차를 마시는 찻집에서는 수녀님 두분이 다정히 마주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불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며 열려있는 공간였던 길상사.
가을물이 흠뻑들어버린 길상사였지만 그 어디에도 내 마음을 부릴수가 없어 서성였던건 어쩌면 나는 마음이 통하는 인간의 숨소리가 더 듣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09.10.25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