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Essay
고향마을에 새로 생긴 장항역
NaMuRang
2008. 8. 19. 11:04
1박2일의 휴가는 실로 결혼후 처음으로 갖는 오로지 나만의 위한 시간였다. " 모든 여자의 꿈은 혼자 여행가는 것이다 " 여자 홀로 기다란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은 생각 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매력으로 느껴진다. 바닷가를 혼자 걸어가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는 여자의 모습도 그림처럼 멋지다. 이런 연출을 기대하면서 여자는 혼자서 여행 을 떠나고 싶어한다. 모든 여자의 영원한 꿈은 혼자 여행하는 것이다. -모든 여자의 꿈은 혼자 여행가는 것이다- 김이연 김이연님 말씀처럼 조선팔도 어디에라도 마음은 머물어지지만 마치 태평양에서 생활하던 연어가 자신의고향으로 회귀하듯 몸은 이미 내 고향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내일 모레면 팔순의 아버님께서 소일거리삼아 고향집과 서울집을 오르락내리락하시면서 농사를 짓고계신다. 문득 생각해본다. '벌써 팔순을 바라보시다니... 아직도 내 기억속 아버지는 40대 초반 중년의 중후함만으로 각인되어있는데...'토방에는 멍석대신 비니루 쌀푸대위에 빨아간 햇고추가 해바라기 중이다. 제법 토실토실하고 실한 그들의 모습에는 아버님의 정성이 가득 배어 있는 듯 싶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아버님은 이렇게 빛고운 햇살따라 말려진 태양초로 김장을해서 몇년째 보내주신다. 아버님께서 보내주신 김장김치를 받을때마다 평생 애물단지같은 내 모습이 죄스러울 뿐이다.
얼룩얼룩 노랗게 익어가는 호박과 나즈막한 배나무가 고향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단다. 무수히 많이 열린 배를 아버님은 하나하나 누우렇봉투에 담으셨다. 분명 농사도 아무나 짓는건 아니것 같다.
언덕배기 밭에 있는 단감나무에는 단감들이 이제 막 가을물이 들듯 주홍빛이 언뜻인뜻 비치기시작한다. 해갈이 하는 감이 올해는 감 풍년을 예고하듯 가지 맨 끄트머리까지 빼곡히 숨어있다.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마치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언덕배기밭에는 고추와 고구마잎도 보인다. 고구마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해마다 몇박스씩 보내주시는 고구마를 다이어트식품으로 요긴하게 사용했는데 올 농사를 끝으로 농사를 짓지 않으실거란 아버님 말씀이 있고보면 아버님께서 지으신 고추밭도 고구마밭도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고향마을 아래뜸을 몽땅 없애버리고 만들어진 장항역. 대청마루 나오면 정면으로 보이는게 새로 생긴 장항역이다. 무지하게 시끄러울줄 알었지만 전혀 시끄럽진않다. 시간맞춰 지나가는 기차의 안내 멘트만이 이따금씩 허공에 메아리칠뿐이다. 물론 역사주변에는 그 흔한 구멍가게 슈퍼 하나 없다. 간이역같은 느낌인데 간이역으로써의 정취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생뚱맞게 마을 한 복판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저그런 건물 하나가 들어선 느낌이다. 나 어린 시절에도 있었던 호박잎에 둘려쌓여있는 만재네 소망(화장실)만이 만재를 만난듯 반가울 뿐이다.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햇빛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었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빛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닳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 이정하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중에서
언덕너머 재봉이오빠네밭에 있던 감나무. 동네에서 감나무가 가장 많았던 재봉이오빠네는 우리집 바로 위에 있다. 재봉이오빠네밭 바로 아래가 우리밭였다. 이미 죽어버린 나무지만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가 내 어린시절의 추억을 무덤같이 걸머지고 있는 것 같다. 이미 나는 나뭇잎 하나 걸치지 않은 겨울나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집 수호신같던 큰감나무 옆에 밤나무가 어느새 자라나 쌍둥이처럼 가을을 준비한다. 거목같은 그들에게 집안의 평안을 당부하며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로 간다.
허옇게 시멘트로 덮혀있는 신작로길을 따라 쇠꼬랑에 가자 주인을 잃어버린 순덕이네집이 보인다. 맘이 무쟈게 착하고 예쁘고 공부도 잘했던 순덕이네 집은 기차길 모퉁이에 있었다. 스물두어살때 딱 한번 순덕이를 봤다. 수더분한 시골새악시같던 순덕이는 광주에서 은행인가 학교 선생인가 하는 큰오빠랑 같이 지낸다고했다. 예쁘고 여시같지는 않았지만 수더분하게 변한 그녀가 왠지 보고싶다.
순덕이네 집앞에 있는 우물이다. 우물가에 있는 봉숭아가 왠지 순덕이 모습이라도 되는양 반갑게 눈인사를 건넨다.
순덕이네집 돌아서면 바로 장항선이다. 하지만 이제는 장항선이 군산하고 이어져 한눈에도 경계가 확연히 들어난다. 오른쪽이 새로 생긴 군산과 이어지는 장항선이다.
한때 우리는 이 기차길을 건너 학교도 다니고 기차길이 놀이에 대상이기도했다. 가위 바위 보하여 이긴 사람이 한칸씩 건너가는 놀이를 하면서 지루한 하교길을 메우곤했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장항역이 나온다.
기차길을 건너 모퉁이를 돌아서면 학교가 저만치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이 논두렁을 건너 학교에 다니곤했었다. 여름 장마철에는 물을 퍼내는 물레방아도 있었던 논두렁였지만 이제는 다닐수 조차 없게 비좁다.
물레방아대신 새로 생긴 시멘트 신작로길을 돌고돌고 학교가는 길목에는 햇밤이 제법 모양을 갖추고 떨어져있다. 개발이라는 대명제 아래 산과 들을 차도를 만드는데 서슴없이 내주어 이제는 차도가 그물처럼 엮어져 주객이전도 된것같은 농촌풍경이다. 하지만 여전히 벼는 이삭을 패 벼이삭은 고개를 숙이며 가을준비를하고 밤,대추,감,고추들도 가을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뿌리만 지탱할 땅이 있어도 생명력을 잃지않는 산천초목의 위대함이여! 08.8.16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