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수필방
그리움에 샘물
NaMuRang
2008. 7. 21. 14:45
그리움에 샘물 갈매기란 태풍은 비와 함께 거센 바람을 몰고 왔다. 밤새토록 창문을 두드리며 제범 위엄을 가장 했지만 두렵지 않았던 까닭은 내가 좋아하는 여름날에 있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황톳길 시작로에는 자그마한 돌이 마치 냇가에 송사리떼마냥 군데군데 모여 있기도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있기도했다. 때론 소똥이 커다란 빈대떡마냥 척하니 신작로 한가운데 붙어있다. 장마비가 오는 여름날에는 지우산을 쓰고 검정고무신에 들어 간 빗물 찌걱찌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황토빛 먼지 가라앉은 신작로 길을 하염없이 걷다보면 멀리에서도 흑백나무 담장이 보인다. 언제나 이름을 불러주며 반기던 소사아저씨가 교무실 앞 창문에 매달려 있는 학교종을 자그마한 쇠망치로 '땡 땡 땡'치는 종소리가 학교 밖 담장 너머로 들린다. 재빨리 학교 뒷편 우물가에 가서 우물 물 길어 올려 황토빛 흙탕물 발 등위로 삐죽삐죽 보이는 검정고무신 위에 휙 끼얹고는 교실로 뛰어간다. 4학년 2반 학급도 두개 밖에 없다. 남자들만 있던 4학년 1반. 그리고 여자들만 있던 4학년 2반. 곱상하게 생기셨던 처녀선생님. 4학년 학기 초에 엄마가 저 세상에 가셔 서울에서 할머니가 계신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천방지축 철부지였던 나는 처녀선생님이 마치 내 엄마라도 되는 것 처럼 땡강도 잘 내고 어리광도 많이 부렸다. 심성이 유난히 고왔던 처녀선생님은 나 뿐만 아니고 반 친구들 누구나 다 예뻐하셨던 모양이다. 훗날 친구들이 그 선생님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으니까.... 서울로 가는 기차는 시간을 맞춰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대청마루에서도 보이던 고향집. 난 그때도 그 기차를 타고 서울로는 전혀 오고 싶지 않았다. 고향집에서 산다는게 꿈같은 나날엿으니까.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학기 초 천방지축 강아지에게 목걸이 매달듯 아버지 손을 잡고 서울행 기차를 타야만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향집에 내려갔다. 몇 년만에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났을때 그 기쁨이란! 그날밤 우리는 우리대장 친구집 완두콩밭 서리를 하여 우리집 가마솥에 쪄 먹으며 내 고향집 귀향을 한껏 즐겼다. 가끔 생각나던 4학년 선생님 소식을 친구한테 물어 봤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렴풋이 아프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그렇게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에 허망함이란.... 갸름한 얼굴에 날씬한 몸매가 초가집 지붕위에 있는 하얀 박꽃을 떠 오르게 하던 최금순선생님. (갑자기 선생님 이름을 쓰자 목이 메인다.) 고향집에서 살은 기간은 2년에 불과하지만 내 생에 걸쳐 그리움에 샘물같이 퍼 내어 지친 내 영혼을 적시곤한다. 너무나 짧은 기간을 고향집에서 보냈기에 많은 추억을 간직 할 수 없다는 것은 마치 좋아하다 만 연인같이 아련한 아쉬움으로 남아야 만했다. 08.7.21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