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 수필방

감자서리

NaMuRang 2007. 7. 11. 22:48

감자서리

오랫만에 재래시장에 갔다.
알록달록 챙이 넓은 모자를 쓰신 
할머니께서 노점에 옥수수, 호박,
감자들을 빨알간 프라스틱 바구니에 
소복히 담아 차례로 늘어 놓으셨다.
노점상을 하신지가 얼마 안되는지
파시는 폼이 영 시원찮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에 더 정감이가
감자를 덥석 집어 들었다.
내가 살던 고향 마을에서는
고구마도 감자 감자도 감자라고해도
우리는 헷갈리지 않고 통했다.
왜냐면 고구마는 늦가을에 캐고
감자는 하지가 지나고 캐기 때문이다.
때론 감자 앞에다 하지를 붙여
'하지감자'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대부분 고향마을 사람들은 감자라고 불렀다.
키가 유난히 크고 큰키 만큼이나
생각이 크고 넓은 우리들의 대장 그녀가
낮에 순례언니가 감자밭에서 풀 매는걸
봤다며 순례언니네 감자밭 서리하자고
쑥덕쑥덕 모의하며 헤어졌다.
야밤을 틈타 커다란 소쿠리를 옆에 다 낀
대장친구와 친구들이 우리집 바깥 마당에 
모여 들었다.
서로가 얼굴 확인 해 볼 겨를도 없이
냅다 순례언니네 감자 밭으로 달음질쳤다.
대장친구따라 감자 밭을 뒤졌지만 
밑이 덜 들어 탱자만한 감자를 보며
괜히 왔다고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였다.
무늬만 감자인 감자들을 주워담으며
감자밭에 남아 있는 발자욱들을 지우라는
대장친구의 용의 주도함에 감탄 한 
친구들은 흙을 살살 문질러 발자욱을 지우는데 
대장친구가 자기네 완투콩밭으로 가잖다.
탱자만한 감자에 실망하던 친구들은
히히거리며 대장친구네 완두콩 밭으로 달려갔다.
예나 지금이나 어둠을 끔찍히 무서워하는 나는
귀신이 뒷 덜미라도 잡아 챌 것같아
두려움에 떨며 대장친구 곁에 바싹 붙어
손에 닿는대로 완두콩 꼬투리를 따냈다.
대장친구가 옆구리 뚝!치며 
손으로 만져 봐 여문 것만 따라고 속삭인다.
무서워죽을 것 같은데 익은 완두콩 꼬투리를
찾아낼 재간이 나에게는 없었다.
대장친구의 지청구를 먹으면서도(핀잔을 들으면서도) 
친구곁에 바싹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대장친구가 귀신보다야 훨 좋으니까.....
커다란 가마솥에 감자와 완두콩을 몽땅 넣고
솔가지에 불을 붙였다.
마루에 둘러앉아 감자와 완두콩을 까 먹으며
행복의 나라로 여행을 떠났던 내 어린시절.
눈만 뜨면 보건소로 달려간다며 푸념을 
한지가 벌써 스물하고도 다섯해가 되는 대장친구.
2년이 지나도록 전화 한 통화 없이
서로가 숨가쁘게 살아가지만
언제 만나도 언니같고 엄마같이 
날 챙기는 진실한 내 친구가 있기에
난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물을 전혀 넣지 않아도 감자가 익는 요술냄비에
어제 재래시장에서 산 감자를 넣고 
군감자를 만들어 사무실에 가져갔다.
뜨근한 군감자를 집어 든 부장님께서는
어린시절 모기불에 감자를 구어 먹으셨다며
특유에 쑥스런 미소를 지으신다.
어쩌면.... 쑥스런 미소 속에 
남다른 추억이 있는 건 아닐런지?
07.7.11
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