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uRang 책읽기
'중국행 화물선' -무라카미 하루키-
NaMuRang
2007. 1. 29. 23:08
전혀 친해지고 싶지 않은 나라 일본. 그렇지만 일본문화는 우리생활에 알게 모르게 깊숙히 침투하여 글로벌이라는 이름아래 동화되어 가는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몇년전부터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있는 작가라는 입소문을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중단편 들을 여러편 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였던 작품은 '중국행 화물선'으로 27페이지 짜리 짧은 단편였지만 작가의 편협하지 않은 세계관이 담겨있었다. 3사람의 중국인과의 인연을 간결하게 서술한 중국행 화물선. 처음 중국인을 만난건 중학교 시험을 보기위해 중국인학교에 갔을 때 일이다. 마흔살쯤 되보이는 중국인교사감독관은 일본인 초등학생들에게 시험 보기 전 10분 가량을 할애하여 주의사항을 이야기한다. '중국과 일본은 이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이웃끼리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마치 아무리 좋은 친구사이도 서로 이해 할수 있는 점이 있고 이해할수 없는 점이 있듯이 두나라도 비슷한 점이 있고 그렇지 않은 점이 있다 하더라도 서로 먼저 존중한다면 반드시 좋은 사이가 될수 있다고했다' 일본인 초등학교 수험생이 지켜야할 존중이란 중국인 학생들이 사용하는 책상에 상처를 내거나 낙서를 하지말고 의자에 껌을 붙이지 않은 일과 함께 책상속에 들어있던 중국인 학생 실내화가 그대로 있는 것 등이다. 마지막으로 한쪽다리가 불편하여 벚나무 지팡이를 짚은 중국인교사감독관은 "얼굴을 들고 가슴을 펴고 자존심을 가지라"고 겪려해준다. 작가는 지금도 그말을 잊지 않고 있다고 기억한다. 두번째 중국인과의 만남은 대학에 입학하던 열아홉살때였다. 난방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조그만한 창고에서 책을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아르바이트 중국인여대생였다. 과묵하고 열성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는 그녀와 처음에는 대화가 없었지만 2주가 지나 우연한 실수로 당황해하는 그녀를 위해 뜨거운 커피를 주며 위로하는 과정에서 가볍게 말문이 트였다. 중국인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중국이나 홍콩에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고 학교조차 일본인 학교를 다녀 중국어는 거의 못하지만 영어에는 자신이 있는 그녀는 도쿄 사립여자대학에 다니며 장래 희망은 통역관이다. 3주간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날 그녀와 같이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와 피자를먹고 디스코 테크장에 가서 2시간 가량 춤을 추었다. 디스코 테크장에서 가져 온 종이성냥 뒤편에 그녀의 전화번호를 적고 그녀가 사는 고마고메역으로 가는 전철을 태워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사는 고마고메와 반대방향의 전철을 태워 주웠다는 사실을 알아채는데는 전철이 지나가고 나서도 15분 후였다. 그녀보다 먼저 고마고메역에 와서 기다리자 웃어야할지 화를 내야 할지 망설이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만났다. 전철 잘 못 태워 준걸 몰랐다고 사과하자 그녀는 전철 잘못 태워준게 착각이라는 걸 알았지만 처음부터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고 여기는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고 눈물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힘없이 이야기한다. 그녀가 말한 장소가 일본인지 어쩐지는 알수 없지만 아무튼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큰 맘먹고 이야기를 꺼냈다. "나 자신도 가끔은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나 자신이 어떤사람이라는 걸 설명하지 못할 뿐더러 나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며 무엇을 찾고 있는지 잘 알수 없을때가 있어 내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하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세심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두려워지기도하고 나 자신밖에 생각못하는 고집스런 모습으로 전혀 생각지도 못 한일로 남에게 상처를 준다는거다" 그녀와 헤어지며 전철을 태워 줄때도 뭔가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저질렀나 보다고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열아홉살 젊은이는 누구나가 한번쯤 진지하게 해보는 고민을 작가는 펼쳐보이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아니 어쩌면... 열아홉살의 올해 대학 신입생 딸을 둔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세심하게 나를 들여다 본다는 것은 두려운일이다. 그녀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지만 두번째 실수를 깨달은건 그녀와 헤어진지 9시간 지난 뒤였다. 빈 담배갑과 함께 그녀의 전화번호부가 적혀있는 종이성냥갑까지 벌이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말었던 것이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녀의 전화번호부를 알아 보았지만 대학 학생과조차 그녀의 전화번호부를 알수가 없어 그 이후로는 그녀를 두번 다시 만날수가 없었다. 세번째 중국인은 스물여덟 되던 해 싸늘한 12월 오후 어느날 유리벽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방금 산 소설책을 뒤지고 있을때 내 이름을 부르며 한 사내가 탁자앞에 섰다. 전혀 생소한 얼굴였지만 나와 비슷한 나이에 생김새나 옷차림등 모든면에서 조금씩 닮았다고 느껴지는 남자였다. 맞은편에 앉은 그와 일상적인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고교동창 중국인이란걸 알았다. 백과사전 외판원인 그는 중국인 가정만 목록을 만들어 중국인들에게 백과사전 파는 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고했다. 가정환경도 나쁘지 않았고 성적도 역시 분명 좋았고 여자애들 한테도 인기가 있던 고교시절 중국인 친구가 백과사전 파는 세일즈맨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몇년후가 될지 모르지만 여유가 생기면 백과사전을 사게 팜플렛 하나 부탁하자 중국인 고교동창은 몇년후에는 중국인 가정을 대충 돌아 일거리가 줄어들테니 백과사전 팔지 어떨지 모르지만 팜플렛은 보내 주겠다며 선거 포스터에 있는 얼굴처럼 입가에 미소를 지은채 일어섰다. 서른살 나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손에 있는 것이 제로인 도시생활을 하면서 '처음부터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였어' 하던 중국인 여대생 말을 문득 떠올린다. 도쿄 거리에서 중국을 생각한다. '사기'로부터 '중국의 붉은 별'까지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지만 나만의 중국에 머문다. 때론 택시 안, 치과, 은행창구등 도쿄거리에서 중국을 방랑한다. 영원히 이어질줄 알었던 지루한 애돌레슨스(Adolescence:청년기)도 어느지점에서 잦아 소멸되듯 우리가 품었던 꿈도 언젠가는 아슴푸레 잊혀져간다. 하지만 명타자가 내야 수비를 두려워 하지 않듯이 항구 돌층계에 걸터앉아 공허한 수평선 위에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중국행 화물선'을 기다린다. 어린이에서 사춘기로 건너가는 시기에서 만났던 중국 감독관선생님. 대학 신입생때 아르바이트하면서 만났던 중국인여대생. 20대 후반에 만났던 중국인 고교동창은 대도시 평범한 일상의 우리네 모습인 것이다. 가끔은 나도 생각한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이방인같이 외따로 떨어진 느낌은 소외감으로 허덕이기도하지만 절대고독은 자아를 성찰할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때론 즐길만하다. 영원할 것 같던 애돌레슨스(Adolescence:청년기)도 소멸되지만 작가는 기다린다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 중국행 화물선을. 나 또한 기다린다. 언젠가 드러낼지 모르는 나의 찬란한 꿈을....! 1949년 일본 태생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중 단편들을 속에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표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머뭇거리는 낯설음과 타인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의사 표현보다는 경청하는 자세등이다. 어쩌면 작가자신의 일상적인 습관인듯 한데 그 모습이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친근감이 들긴 하지만 가까이 하기엔 왠지 정이가지않는 일본인 작가일 뿐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숲)를 읽지 않고는 그를 뭐라 이야기하기에는 속단에 가깝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그의 정신세계와 다시 한번 만나 볼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다. 07.1.26 NaMu